베니스의 법정: 정의인가, 복수인가
2025년의 한국 정치는 마치 고열에 시달리는 환자와 같다. 온몸이 들끓고, 의식은 혼미하다. 다양한 학문적 진단을 해 보지만, 합리적 처방도, 정상적 치료도 불가능한 상태에 가까운 환자에 가깝다. 감정이 이성을 압도하고, 반쪽짜리 결정이 절차를 대신하며, 정치는 자기연민과 적대의 구덩이에 빠져 있다. 정치의 언어는 독해졌고, 합의와 설득의 절차는 무시된 채 헌법구절로만 남았으며, 권력은 폭주의 수단으로 변질되었다. 탄핵과 계엄, 언어폭력과 다수결 독재는 환자가 앓고 있는 증상이다. 지금 필요한 것은 협박, 독선적 의결, 보복과 공포의 언어가 아니라, 평상심을 찾은 절차와 정상화의 정치라고 처방을 이야기 하면 "당신이나 하세요" 로 답한다. 이처럼 열에 들뜬 한국 정치의 풍경을 보며, 누군가는 셰익스피어의 『베니스의 상인』을 떠올릴지도 모른다.
셰익스피어의 『베니스의 상인』
셰익스피어의 『베니스의 상인』은 단순한 법정극이 아니다. 이 작품에서 유대인 상인 샤일록은 기독교 상인 안토니오에게 금전 대가로 '심장에서 1파운드의 살을 떼어내는' 계약을 체결한다. 샤일록이 이를 요구할 때 그는 단지 계약의 조항, 즉 법적 정의만을 들이댄다. 베니스의 법정도 처음에는 그 요구를 무시하지 못한다. 계약은 법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관객은 알고 있다. 그 정의는 진정한 정의가 아니라, 자녀를 빼앗기고 멸시받은 자가 품은 복수의 결정체라는 것을. 결국 정의는 외형을 갖춘 복수였고, 복수는 자비 없는 법의 이름 아래 스스로를 파괴했다. 샤일록은 법정에서 이긴 듯 보였지만, 그가 자비를 내놓지 못했을 때, 베니스는 그에게 신앙을 버릴 것을 강요하고, 재산도 몰수한다. 법은 그를 도왔지만, 공동체는 결국 그를 배척했다.
이 장면은 단순한 정의와 불의의 대결이 아니라, 법의 한계와 감정의 균열, 공동체 윤리가 작동하는 다층적 풍경을 보여준다. 베니스의 법정은 단지 법의 심판대가 아니라, 인간의 감정과 공동체 윤리, 그리고 권력의 작동방식을 드러내는 문학적 상징이다. 세익스피어 사후 출판된 14권의 희극 중 하나로 사회의 악습과 비참한 현실을 고발한 시대극이다.
한국 정치의 현실
2025년의 한국 정치도 그와 다르지 않다. 정치적 대립은 '법적 정의'의 이름으로 포장된 복수의 연속이다. 2024년 6월 22대 국회가 구성되고 난 후 다수의 힘을 빌려 절차를 지배하고, 갈라진 민심은 각자 정의의 이름으로 폭주한다. 의회 권력은 민주주의의 상징이었으나, 지금은 다수의 독점이 만들어낸 새로운 형태의 폭력으로 전락하고 있다. 소수 의견은 묵살되고, 토론은 아예 발붙이지 못한지 오래 되었고, 정당한 이견조차 반역으로 간주된다. 쇼펜하우어가 '무조건 이기는 논쟁'에서 주장한 받아들일 수 없는 2분법적 정의다. 이것은 치밀하게 준비된 프레이밍 기법 중 하나다. 이른바 다수의 이름으로 진행되고 있는 의정의 독점은 샤일록의 법대로와 다를 바 없다. '절차적 정당성'이 사라진 법치는 정의의 형식을 빌린 처절한 보복과 재갈물림일 일 뿐이다.
그러나 보수세력은 갈팡질팡하며 무능하다. 원죄에 대한 사과와 책임을 놓고 황금시간을 허비한다. 새로운 시작을 외치지만, 그 안에는 처절한 반성과 진정으로 공동체를 설득하려는 언어가 없다. 계엄과 법치, 그리고 자유대한민국 복원과 1인지배의 자유수호를 외치면서도 그 어떤 사회적 통합의 청사진도 내놓지 못한다. 말은 공허하고, 국민은 분노하거나 외면한다. 절차의 민주화를 외치지만 스스로 그 원칙을 무너뜨리고 대통령 후보결정을 좌지우지 한다. 법과 자유지킴은 구호로만 존재할 수 없다. 보수가 외면 받고 있는 이유일 것이다.
정치의 말은 날로 저열해졌다. 언론과 SNS는 독한 말의 시장이 되었고, 국회는 그 복제장소가 되었다. '탄핵', '사형', '감옥', '응징', '내란세력척결'—이 단어들은 더 이상 법률적 용어가 아니라, 감정적 무기다. 말이 언어로서의 품격을 잃자, 정치도 품위를 잃었다. 앞으로 대통령 선거와 관계없이 다수를 쥔 민주당이 국회를 지배하는 동안 우리가 감내해야 할 부분이다.
<하편>에서 계속

*필자 최연혁 교수는 = 스웨덴 예테보리대의 정부의 질 연구소에서 부패 해소를 위한 정부의 역할에 관한 연구를 진행했다. 스톡홀름 싱크탱크인 스칸디나비아 정책연구소 소장을 맡고 있다. 매년 알메랄렌 정치박람회에서 스톡홀름 포럼을 개최해 선진정치의 조건에 대해 함께 고민하고 그 결과를 널리 설파해 왔다. 한국외대 스웨덴어과를 졸업하고 동대학원에서 정치학 석사 학위를 받은 후 스웨덴으로 건너가 예테보리대에서 정치학 박사 학위를 받고 런던정경대에서 박사후과정을 거쳤다. 이후 스웨덴 쇠데르턴대에서 18년간 정치학과 교수로 재직했으며 버클리대 사회조사연구소 객원연구원, 하와이 동서연구소 초빙연구원, 남아공 스텔렌보쉬대와 에스토니아 타르투대, 폴란드 아담미키에비취대에서 객원교수로 일했다. 현재 스웨덴 린네대학 정치학 교수로 강의와 연구 활동을 이어가고 있다. 저서로 '우리가 만나야 할 미래' '좋은 국가는 어떻게 만들어지는가' '민주주의의가 왜 좋을까' '알메달렌, 축제의 정치를 만나다' '스웨덴 패러독스' 등이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