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에디터 프리즘] 로봇 심판이 만든 ‘공정 야구’

2024-09-20

2024 프로야구 KBO리그가 한가위 연휴 기간에 꿈의 1000만 관중을 돌파했다. 1982년 프로야구 출범 이후 43년 만에 나온 대기록이다. 중앙SUNDAY는 발 빠르게 연휴 직전 두 전직 프로야구단 단장(정민철·류선규)의 대담을 준비했다. (중앙SUNDAY 9월 14~15일자 20면) 두 전문가는 ‘2030 여성 팬의 야구장 접수’ ‘먹거리·볼거리·놀거리 풍부한 야구장 문화’ ‘10개 구단 전력 평준화’ 등을 한 시즌 1000만 관중 돌파의 요인으로 꼽았다.

과감한 ABS 도입, 판정시비 삭제

프로야구 천만 관중 이끈 원동력

두 사람은 또 ABS(Automatic Ball-Strike System·자동볼판정시스템)에 주목했다. KBO는 올 시즌부터 전 세계 최초로 ABS를 프로야구 1군 경기에 도입했다. ABS는 스트라이크·볼 판정을 심판이 아닌 기계가 하는 것이다. 1루와 3루, 외야 중앙에 설치된 카메라 3대가 타자별 스트라이크 존을 설정하고, 투수 공 궤적을 추적해 실시간으로 위치 값을 전송하면 컴퓨터가 볼·스트라이크 판정을 내린다. 그 결과를 주심이 이어폰으로 전달받아 수신호와 콜로 선수들에게 알린다.

SK 와이번스와 SSG 랜더스 구단을 이끌었던 류선규 전 단장은 “시스템이 아직 불안정한 점도 있지만 ABS 도입의 긍정적인 면이 크다고 생각한다. 시청자와 관중이 볼 판정 때문에 스트레스를 받지 않고 편안하게 경기에 집중할 수 있게 됐다”고 말했다.

야구에서 주심의 역할과 권한은 절대적이다. 양 팀 합쳐 300개 안팎의 투구에 대해 스트라이크·볼을 판정하는데, 그건 어떤 이유에서도 번복될 수 없다. 심판은 오랜 경험과 소신을 바탕으로 판정을 내린다. 프로야구 선수들이 해외 전지훈련을 하는 동안 심판들도 동계훈련을 한다. 하지만 심판도 인간인지라 오류를 범할 수 있고, 약간은 주관적인 판정 기준을 갖고 있기도 하다. 포수는 공이 스트라이크 존을 살짝 벗어나면 손목을 꺾어 스트라이크처럼 보이게 하는데 이 ‘프레이밍’ 동작에 속거나 속아주는 심판도 있었다.

이렇다 보니 야구장에서는 주심의 콜에 민감하게 반응하고, 팀이 지면 심판 탓을 하는 일이 잦았다. 심지어 “KBO A총재와 연관된 B구단이 심판 덕을 본다”는 루머가 나돌기도 했다.

한화 이글스와 일본 요미우리 자이언츠에서 투수로 활약한 정민철 전 한화 단장은 “ABS 도입은 우리 사회의 화두가 된 ‘공정’과도 맞아 떨어진다”고 말했다. 예를 들어 레전드급 투수와 막 2군에서 올라온 신인 타자가 맞붙으면 아무래도 주심의 콜이 투수 쪽으로 기울게 되는데 ‘로봇 심판’은 그럴 일이 없다는 것이다. 올 시즌 프로야구에서 타고투저(타자 강세, 투수 약세) 현상이 두드러진 것도 타자들이 주심의 성향 생각할 것 없이 ABS 존만 의식하고 타격을 하기 때문이라는 분석이 있다, 전국 고교 대회에서도 ABS를 시행하고 있는데 고교 지도자들도 환영하는 분위기다.

물론 불만의 목소리도 있다. “도저히 칠 수 없는 볼을 스트라이크로 판정한다” “구장마다 ABS 존이 조금씩 다른 것 같다”는 문제 제기부터 “사람이 기계에 종속되는 것 같다”는 감성적 볼멘소리도 있다.

중요한 건 ‘모든 조건은 모든 선수에게 똑같이 적용된다’는 사실이다. 그것 하나만으로도 야구팬은 불필요한 감정소모 없이 편안하게 경기를 즐길 수 있다. 그게 1000만 관중을 만든 공정의 힘이다. 부족한 시스템은 보완하면 된다.

AI 전문가인 이준기 연세대 정보대학원 교수는 “AI는 툴(도구)일 뿐이다. 그걸 잘 사용하는 사람이 초전문가다”라고 말했다. AI도 로봇도 사람의 편리를 위해 사람이 만든 것이다. 그런 점에서 ABS를 과감하게 도입하고 밀어붙인 ‘선출’(선수출신) 허구연 KBO 총재의 결단과 뚝심은 박수 받을 만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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