쓰레기산에서 선별장에서…플라스틱을 만지고 들이쉬는 여성들

2025-07-13

10년이면 강산도 변한다. 인도네시아 그레식 지역도 그랬다. 그레식의 응기픽(Ngipik) 쓰레기 선별장 옆 얕은 구덩이는 10년 만에 커다란 쓰레기산으로 변했다. 주변 지역에서 매일 200t이 넘는 쓰레기가 이 선별장으로 들어오지만 선별장에서 하루 동안 처리 가능한 쓰레기는 20t 남짓이다. 처리되지 못한 쓰레기 90%는 선별장 옆 구덩이에 버려진다. 쌓인 쓰레기는 건물 7층 높이, 축구장 5개 넓이의 산이 됐고 지금도 매일 커지고 있다.

인도네시아는 쓰레기를 분리 배출하지 않는다. 음식물, 종이, 유리, 페트병, 비닐, 농사 부산물이 뒤섞인 채 버려진다. 절반 가까이는 가정이나 마을에서 태워지고, 약 10%만 지역선별장으로 보내진다. 서로 엉겨 붙어 부패한 쓰레기들은 결국 지역 선별장에서도 소각 혹은 매립된다. 감당할 수 없을 만큼 거대한 양의 쓰레기들을 다루는 노동 현장에 여성들이 있다. 노동환경건강연구소, 인도네시아 환경단체 에코톤(ECOTON)과 함께 인도네시아 그레식 지역에서 쓰레기 선별 노동에 종사하는 여성들을 만났다.

찔리고, 베이고, 연기를 마신다

폐기물 수거·분류 노동자들이 일하는 현장은 시끄럽고, 냄새나고, 뜨거웠다. 무엇보다 위험했다.

지난 4월 24일, 응기픽 선별장 옆 쓰레기산에는 쓰레기를 실은 트럭이 쉴새 없이 오르내렸다. 산꼭대기에 도착한 트럭들은 썩은 과일부터 플라스틱 의자까지 다양한 물건이 뒤섞인 쓰레기를 쏟아냈다. 새로 도착한 쓰레기 주변으로 포물룽(pemulung·쓰레기 수거 노동자)들이 몰려들었다. 포물룽들은 쇠꼬챙이로 봉투를 찢고 손으로 페트병과 종이쓰레기를 골라냈다. 어깨에 메고 온 나무바구니에 쓰레기를 담았다. 포물룽 무리가 훑고간 자리는 포크레인이 쓰레기를 다져 ‘땅’으로 만들었다. 포크레인이 움직일 때마다 땅이 흔들렸다. 산 한편에서는 검은 연기가 피어올랐다. 선별장 관리자는 “쓰레기산에 수용할 수 있는 용량도 한정돼 있기 때문에 일부는 태운다”고 설명했다.

이 쓰레기산을 9년동안 오르내렸다는 유윤(48)은 쓰레기를 뒤져 페트병을 찾아낸 뒤 포대에 모은다. 굴착기 소음, 썩어가는 쓰레기 악취, 플라스틱을 태우는 연기 속에서 하루 열 시간씩 쓰레기를 나르는 중노동이다. 날카로운 쓰레기에 찔리기도 십상이다. 고무장화와 천장갑이 유일한 보호장비다.

산 아래 선별장 노동자들도 역시 사정이 크게 다르지 않다. 트럭이 쓰레기를 쏟아내면 남성들이 바구니로 퍼서 컨베이어 벨트로 옮겼다. 직접 손으로 만지며 쓰레기를 분류하는 건 여성들 몫이다. 컨베이어 벨트를 따라 선 여성들이 고무장갑이나 천장갑을 끼고 종이상자나 페트병을 같은 큰 쓰레기를 집어냈다. 나머지 컨베이어벨트 위 쓰레기는 파쇄됐다. 파쇄기에서는 플라스틱 가루가 공중에 날렸다. 마스크를 쓰고 일하는 사람은 없었다.

이곳에서 일하는 트리(58)는 나무꼬치나 못, 생선 뼈 등에 찔리는 일이 잦다고 설명했다. “쓰레기에 찔리고 나면 일주일씩 열이 나 누워있기도 한다”고 했다. 기자가 만난 5명의 여성 노동자 중 4명은 유리, 생선 뼈, 못, 장미 가시를 집다가 다친 적이 있다고 말했다. 쇠꼬챙이로 쓰레기를 뒤진 뒤 페트병만 골라내는 유윤만 다친 적이 없다고 했다.

장갑도 매일 보급되지 않는다. 근처 위링기나넘(Wringinanom)의 더 작은 선별장에서 일하는 우마미(52)는 매일 부패한 쓰레기를 만지다 척척해진 장갑을 말려두고 퇴근한다.

위링기나넘 선별장에서 일하는 사미아(52)는 “직업에 만족한다”고 말했다. 여성들은 찔리고 베일 때마다 며칠씩 앓으면서도 직장을 그만두고 싶지 않다고 말했다. 현지 환경단체 에코톤(ECOTON)의 대표인 다루 세티오리니 박사는 “쓰레기 선별은 위험하고 유해한 노동이지만 이들에게는 선택지가 많지 않다”며 “가난할수록, 여성일수록 쓰레기에 밀접한 노동에 노출된다”고 설명했다. H&M 재단 연구에 따르면 전 세계 쓰레기 수거 노동자의 54%는 전혀 교육을 받지 못했고, 20%는 기초 수준의 교육만 받았다. 사미아는 초등학교가 마지막 정규 교육이었다고 했다.

쓰레기 선별 노동의 대가는 인도네시아 최저임금에도 미치지 못한다. 여성노동자들이 손에 쥐는 돈은 한 달에 약 160만~200만루피아(약 14만~17만원) 정도다. 이 지역 최저임금(월 217만루피아·18만2000원)보다 낮은 수준이다. 응기픽 선별장에서 일하는 사니(53)는 오전 5시에는 쓰레기산에 올라 페트병을 줍는 ‘부업’을 한 뒤, 오전 7시 또 출근한다. ‘투잡’을 해야 생계가 유지되기 때문이다. 여성들은 같은 일을 하는 남성들보다도 3분의 1가량 적은 소득을 번다.

아직 알지 못하는 위협

해외 연구들은 폐기물 수거 노동자들이 근골격계 질환이나 자상 외에도 감기, 기관지염, B형 간염, 고혈압을 호소했다고 보고했다. 이들은 위장병, 피부병, 신장 및 간 질환, 요통, 화상, 골절 등의 위험에도 노출돼 있다. 폐기물 노동은 특히 여성 노동자들에게 더 유해할 것으로 추정된다. 플라스틱에는 내분비계를 교란하는 환경호르몬계 유해 물질이 많기 때문이다.

국제오염물질추방네트워크(IPEN)는 인도네시아 동부 플라스틱을 태우는 두부 공장 옆에서 자란 닭이 낳은 달걀에서 다이옥신 등 유해성분이 검출됐다고 밝혔다. 베트남 전쟁 때 고엽제가 살포된 베트남 비엔호아 지역 다음으로 많은 다이옥신량이라고 IPEN은 설명했다. SCCPs(단쇄염화파라핀)와 PBDEs(난연제) 등 유기오염물질도 발견됐다. 이 달걀을 한 개만 먹어도 유럽식품안정청 기준의 70배를 초과하는 다이옥신을 섭취하게 된다.

플라스틱을 태우는 공장 주변에서 나온 달걀을 소비자들이 먹을때 얼마나 위험한지는 이렇게 구체적으로 알려졌지만 정작 플라스틱 소각과 부패 단계에 직접 노출돼 일하는 노동자 건강에 어떤 영향을 미치는지는 지금껏 짐작만 되고 있을 뿐이다. 플라스틱의 비스페놀A와 프탈레이트 등 성분이 여성 호르몬 기능을 방해해 암과 호르몬 질환 등 발병률을 높인다는 연구는 꾸준히 발표되고 있다.

노동환경건강연구소는 최근 플라스틱 분진이 날리는 공장에서 젖은 장갑 외 보호구 없이 하루종일 플라스틱을 다루고, 플라스틱을 태우는 연기를 집과 공장에서 들이마시는 여성 노동자들의 건강에 관한 연구에 착수했다. 김보연 노동환경건강연구소 국제사업팀장은 “플라스틱이 폐기물 수거 노동자에게 어떤 영향을 미치는지 과학적으로 증명하고 이들을 보호하기 위한 조치를 마련할 필요가 크다”며 “국내 시민들에게도 플라스틱이 폐기될 때 발생하는 피해를 공유하고 플라스틱 사용, 근본적으로는 생산을 줄이기 위한 노력이 필요하다는 인식을 확산시키는 동력이 되도록 연구를 진행할 것”이라고 말했다.

Menu

Kollo 를 통해 내 지역 속보, 범죄 뉴스, 비즈니스 뉴스, 스포츠 업데이트 및 한국 헤드라인을 휴대폰으로 직접 확인할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