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6) 수출 ‘마중물’로 변신하는 퇴역 함정들…장보고함에 이어 이천함도 대기

2025-12-05

209급 1번함인 장보고함은 해군 잠수함의 맏형격이다. 1200t급 잠수함인 장보고함은 함정번호 ‘SS-061’을 부여받은 후 1992년부터 지금까지 지구 둘레 15바퀴가 넘는 약 34만2000마일(약 63만3000㎞)을 항해한 후 지난 11월 19일 마지막 항해를 했고, 이달 말 퇴역한다. 해군이 운용하는 209급 잠수함 9척은 올해부터 10년여에 걸쳐 순차적으로 모두 퇴역을 할 예정이다.

군함은 다른 무기체계와 달리 사람처럼 고유 이름을 가지고 있다. 군함은 진수-취역-배치-퇴역 등의 과정을 거친다. 입대-훈련-배치-퇴역의 수순을 밟는 직업군인의 삶과 비슷하다.

군함도 직업군인처럼 전역한다. 노후화되거나 구형이어서 전역한 군함은 예비역 함정과 퇴역 함정으로 나뉜다. 예비역 함정은 해군의 작전·전술 수행이 가능한 군함으로 해군 8전투훈련단이 관리하고 유사시 재취역할 수도 있다. 작전·전술 수행이 어려운 군함은 퇴역 함정으로 분류돼 우방국에 양도되거나 지방자치단체의 함상공원 전시물로 활용된다. 현재 11개 지자체가 퇴역함정 15척을 대여해 함상공원 등으로 활용하고 있다. 노후화가 심한 함정은 포사격 또는 유도탄 발사 훈련의 표적함으로 쓰인 후 바닷속에 수장된다.

장보고함은 폴란드에 무상 양도될 것으로 보인다. 정부는 폴란드 차세대 잠수함 사업인 ‘오르카 프로젝트’ 수주 경쟁에 뛰어들면서 폴란드의 수중 전력 공백을 메워줄 즉시 전력으로 중고 잠수함 1척(장보고함)을 제공하기로 결정했다. 폴란드는 장보고함을 통해 옛 소련의 킬로급 잠수함에서 서방 잠수함 기술 표준으로의 승무원 훈련 체계도 재편할 수 있게 된다. 폴란드는 1985년 옛 소련에서 도입한 노후 잠수함 1척을 운용 중이다.

국방부는 “우리나라 퇴역 잠수함 양도는 폴란드와의 관계, 방산 수출에 대한 영향성 등을 고려해 적절하게 조치할 것”이라면서 오르카 잠수함 사업의 수주 탈락에도 불구하고 장보고함을 예정대로 폴란드에 제공할 것임을 시사했다. 대신 장보고함의 창정비 비용 수백억원은 폴란드가 부담하게 될 것으로 알려졌다. 당초 한국 정부는 잠수함 사업을 수주할 경우 창정비를 무상으로 해줄 계획이었다.

한국은 잠수함 수주에 실패했지만, 방위산업의 유럽 내 전진기지 역할을 하고 있는 폴란드와의 국방·방산 협력관계를 더욱 강화할 필요가 있다고 판단했다. 폴란드는 2022년 이후 ‘K-2 전차’, ‘K-9 자주포’, ‘FA-50 경공격기’, ‘천무 다연장로켓’ 등 220억달러에 이르는 한국산 무기체계를 도입하고 있다. 앞으로도 200억달러가 넘는 추가물량 계약이 기다리고 있다.

장보고함이 폴란드 해군에 양도되면 함명이 폴란드 명칭으로 바뀌게 된다. 대신 ‘장보고’라는 이름은 향후 한국 해군이 건조하게 될 핵추진잠수함의 명칭으로 부활할 것으로 보인다.

장보고함의 탑재 무장 시스템의 경우는 폴란드와의 협의를 통해 양도 조건을 협의할 것으로 보인다. 일각에서는 장보고함은 국내 건조가 아니라 독일 하데베(HDW)사에서 직접 건조한 잠수함이어서 해외 양도할 경우 원천 기술의 지적 재산권 문제가 불거질 가능성을 제기하기도 한다. 해군은 장보고함이 한국군 잠수함 1번함이라는 상징성을 들어 내심 진해 해군기지에 전시하고 싶어하지만, 그 처분에 대해 정부 결정에 따라야 할 것으로 보인다.

209급 잠수함 2번함인 이천함도 2년 안에 퇴역할 예정이다. 이천함 역시 장보고함처럼 한국과 잠수함 2척을 공동개발하기로 한 남미 국가에 양도될 예정이다.

무상양도→신규발주

함정의 해외 양도는 후속 군수지원과 경제 교류 활성화, 해당국과의 유대관계 강화 등 효과를 거두면서 방위산업의 마중물 역할을 하고 있다. 무상 양도됐던 퇴역 군함들은 해당 함정의 유지·보수·운영(MRO) 사업으로 이어지고, 나중에는 신규 발주로 이어지는 사례가 많아지고 있다.

남북 대치 상황에서 성능이 검증된 한국 퇴역 함정은 전 세계적으로 인기가 높다. 최근에는 K-9 자주포, K-2 전차 등을 구매하려는 국가에서 절충교역 조건으로 퇴역 초계함의 무상 제공을 요청하는 경우도 있었다. 절충교역은 해외 무기·장비 도입 시 계약 상대방으로부터 기술이전이나 부품 제작 수출 등 반대급부를 받는 교역 방식이다. 한국 해군의 장보고함 무상 양도도 폴란드의 오르카 프로젝트 협상 과정에서 절충교역 차원에서 나온 제안이었다. 한국은 장보고함을 폴란드 해군의 ‘가교 전력’(구형 잠수함을 신형 잠수함으로 대체하는 과정에서 활용하는 전력)으로 제시하는 한편 퇴역 예정인 울산급 호위함 제공도 함께 논의했던 것으로 전해졌다.

한국이 퇴역 함정을 다른 나라에 양도하기 시작한 것은 1993년부터다. 이후 필리핀, 방글라데시, 동티모르, 가나, 이집트, 콜롬비아, 페루, 캄보디아, 카자흐스탄, 베트남 등 10여개국에 40척이 넘는 함정을 양도했다.

페루는 함정의 무상 양도가 신규 발주로 이어진 대표적 케이스다. 페루 해군은 2022년 한국이 양도한 초계함인 ‘기세함’을 몰고 하와이 림팩훈련에 참가하기도 했다. 페루 초대 해군 참모총장 이름을 딴 기세함은 페루 해군이 1000t급 초계함(PCC)인 순천함을 개량한 함정이다. 페루는 2024년 HD현대와 다목적 호위함 등 군함 4척에 대한 현지 건조 계약을 체결했다. 페루는 또 FA-50 한국형 경공격기 20~24대 도입이 유력한 국가로 남미 국가 중 ‘큰손’으로 꼽힌다.

퇴역 함정이 가장 많이 건너간 국가는 필리핀이다. 퇴역한 제비급 고속정 12척, 참수리급 중형 고속정 8척, 물개급 군수지원정 1척, 포항급 초계함 1척이 필리핀에 양도됐다. 제비급 고속정 12척은 1척당 100달러에 공여됐다. 필리핀은 12척 중 10척은 연안 경비정으로 운용했고, 2척은 예비부품용으로 사용했다. 현재는 2척만이 남았고, 이 배들도 조만간 퇴역할 예정이다. 참수리급 중형 고속정도 1995년부터 2006년까지 세 차례에 걸쳐 1척당 100달러씩 무상 공여로 필리핀 해군에 양도됐다.

콜롬비아에는 초계함인 안양함이 건너갔다. 이후 콜롬비아에는 해성 대함 미사일 판매가 이뤄졌고, 한국 정부는 향후 FA-50 공격기 수출도 기대하고 있다.

무상 공여가 항상 효과를 거두는 것은 아니다. 방글라데시는 울산급 수출형 함정 1척을 구매하는 조건으로 참수리급 중형 고속정 4척을 양도받았으나, 이후 중국 방산물자를 주로 구입하고 있다. 카자흐스탄과 가나 등도 함정의 무상 공여가 큰 효과를 거두지 못한 국가들이다.

Menu

Kollo 를 통해 내 지역 속보, 범죄 뉴스, 비즈니스 뉴스, 스포츠 업데이트 및 한국 헤드라인을 휴대폰으로 직접 확인할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