GTX-B·C노선 착공식, ‘선거용 쇼’였나

2025-05-08

얼마 전 수도권 광역급행철도(GTX)를 처음 타봤다. 경기도 파주시 운정중앙역에서 서울역을 잇는 GTX-A노선 북쪽 구간이었다. 과연 빠르긴 빨랐다. 전광판에 나타난 최고 속도는 시속 177㎞를 찍었다. 운정중앙역을 출발해 서울역까지 네 정거장(33.7㎞)을 가는 데 22분이 걸렸다. 서울 지하철이라면 대략 11개 정거장을 이동하는 시간과 비슷했다.

배차 간격도 괜찮은 편이었다. 안내판을 보니 출퇴근 시간대는 6분 간격, 낮 시간대는 8~10분 간격으로 운행 중이었다. 기자가 탑승한 낮 시간대는 승객이 별로 없어 여유롭게 앉아갔다. 단점도 없진 않았다. 빠르게 달리는 구간에선 열차의 진동이 상당히 심했다. 민감한 승객이라면 다소 불쾌감을 느낄 수도 있어 보였다. 요금은 왕복 8900원(평일 교통카드 기준)이었다. 매일 출퇴근하는 직장인이라면 교통비 부담이 만만치는 않을 것이다.

작년 초 “공사 시작” 선언했는데

아직 첫 삽도 못 뜨고 계속 지연

현실성 낮은 공약은 실망만 남겨

아직 부분 개통이란 한계는 있지만 GTX-A노선은 그런대로 순조로운 출발을 보였다. 그런데 GTX 성공을 축하하는 박수를 보내기엔 마음이 편하지 않다. 현재 B노선과 C노선의 공사가 계속 미뤄지고 있어서다. 이대로 가면 정부가 약속했던 개통 시점(B노선 2030년, C노선 2028년)을 맞추는 건 매우 어려워 보인다. 그나마 B노선은 지난 3월 말 민자 구간 착공신고서를 제출하면서 조만간 공사 개시가 가능할 것이란 전망이 나온다. 반면 100% 민간 자본으로 건설하는 C노선은 언제쯤 공사를 시작할 수 있을지 기약이 없는 상황이다.

대형 공사가 원래 계획보다 늦어지는 건 흔히 있는 일이다. 하지만 GTX는 그저 그러려니 하고 넘어가기엔 곤란한 사정이 있다. 정부가 성대한 착공 기념식을 열고 공사 개시를 선언했던 기억이 생생하게 남아 있기 때문이다. 국정 최고 책임자인 대통령이 직접 ‘민생 토론회’를 주재하면서 지역 주민들에게 약속했다. 불과 1년여 전에 있었던 일이다. 정부가 공개적으로 약속을 못 지키게 됐는데도 누구 하나 책임지는 사람이 보이지 않는다.

지난해 1월 25일 경기도 의정부시청에서 열린 GTX-C노선 착공 행사를 되짚어 보자. 당시 윤석열 대통령이 직접 연단에 올라 기념사를 했다. 그는 “고되고 힘들었던 아침저녁 출퇴근길이 시원하게 개통될 GTX와 함께 완전히 해결될 것”이라고 장담했다. 이날 행사에는 박상우 국토교통부 장관, 오세훈 서울시장, 김동연 경기지사 등이 참석했다. 박 장관은 “국민께 약속드린 시기에 차질없이 개통하겠다”고 말했다.

GTX-B노선의 착공 행사는 지난해 3월 7일 인천 송도에서 열렸다. 22대 국회의원 총선(지난해 4월 10일)을 한 달 정도 남겨둔 시점이었다. 이날도 윤 대통령이 직접 참석해 기념사를 했다. 그는 “오늘은 인천 교통의 혁명이 시작되는 날”이라고 선언했다. 이때도 박 장관은 “2030년에 차질 없이 개통하겠다”고 거들었다. 인제 와서 돌아보면 당시 대통령과 장관이 도대체 무슨 근거로 그렇게 큰소리를 쳤는지 모르겠다. 결국 총선을 앞두고 ‘선거용 쇼’에 불과했던 건 아닌지 의심스럽다.

다음 달 3일 대선을 앞두고 GTX가 다시 선거용 이슈로 관심을 끌고 있다. 이번에도 유력 대선후보들은 ‘장밋빛 전망’을 내세워 유권자들에게 표를 달라고 호소하는 모습이다.

이재명 더불어민주당 대선후보는 지난달 25일 페이스북에 올린 글에서 GTX를 이용해 수도권 주요 거점을 빠르게 연결하는 이른바 ‘1시간 경제권’ 구상을 제시했다. 그러면서 “GTX-A·B·C노선은 지연되지 않게 추진하고 수도권 외곽과 강원도까지 연장도 적극 지원해 GTX 소외지역을 줄일 것”이라고 적었다.

김문수 국민의힘 대선후보는 지난달 21일 교통 공약 발표에서 “전국 5대 광역권 GTX망 구축을 대통령 임기 내 확정 추진하겠다”고 약속했다. 그는 “GTX는 내가 (경기지사 시절) 처음 설계하고 추진한 국가 교통혁신 프로젝트”라며 ‘GTX 원조’를 자처하기도 했다.

이 후보나, 김 후보나 말은 다 좋은 말이다. 문제는 실현 가능성이다. 정부가 착공식까지 열었던 GTX 공사 일정도 이미 1년 넘게 늦어지는 상황임을 가벼이 여겨선 안 된다. 여기서 새로운 노선을 추가하겠다거나, 기존에 계획한 노선을 더 멀리 연장하겠다는 말을 곧이곧대로 믿기 어렵다. 수조원짜리 대형 사업이 대선 후보의 말 몇 마디로 쉽게 이뤄질 리가 없다. 후보들은 공약이 헛된 약속에 그치지 않도록 구체적인 근거를 함께 제시해 주길 바란다. 이번에도 선거용 쇼를 하는 것이라면 선거가 끝난 뒤 국민에게 더욱 큰 실망을 안겨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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