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00만명 넘은 고령 근로자, 재평가 움직임

2025-05-19

시니어 인력, 노동시장 비중 갈수록 커져

숙련도·임금·낮은 복지비용 등 장점 부각

기업들 시니어 채용 인식 바뀌기 시작

고물가와 경제 불확실성 속에서 더 많은 고령자들이 은퇴 대신 노동 시장에 남거나 복귀하면서 기업들의 시니어 구직자에 대한 인식에도 변화가 나타나고 있다.

지금까지는 시니어들이 일자리를 구할 때 나이에 대한 부정적인 인식이 걸림돌로 작용해왔지만 최근 고령 인력의 숙련도와 임금상의 이점을 주목하는 기업들이 점차 늘고 있다.

은퇴를 미루고 재취업을 하는 시니어가 늘어난 가장 큰 이유는 경제적인 필요와 은퇴 이후의 무료함 때문이다.

지난해 연금보험 전문 보험사 '앨리언즈 라이프'가 시니어를 대상으로 실시한 조사에 따르면, 응답자의 63%가 은퇴 후에도 수입 보충을 위해 파트타임 근무를 계속할 의향이 있다고 답했다. 15%는 완전한 은퇴를 아예 고려하지 않는다고 밝혔다.

사회보장 연금 지급에 대한 불안감도 고령층의 노동시장 복귀를 자극하는 요소로 작용하고 있다. 금융정보회사 모트리풀이 지난해 10월 2000명의 은퇴자를 대상으로 실시한 설문조사에서는 절반가량이 추가 수입을 위해 은퇴를 포기할 의향이 있다고 답했다. 설문조사는 사회보장국(SSA)이 2025년 생계비 조정 인상률(COLA)을 2.5%로 발표한 직후에 진행됐는데 2.5%는 최근 몇 년간 가장 낮은 인상폭이었기 때문에 응답에 영향을 주었을 것으로 보인다.

모틀리풀 조사에서 은퇴자의 54%는 최근 COLA 인상이 충분하지 않다고 답했다. 이에 따라 주거비와 식료품비, 의료비 등을 충당하기 위해 다시 일을 해야 하는 경우가 늘고 있다.

시니어 인구의 급증도 중요한 요인이다. 연방 노동통계국에 따르면 65세 이상 근로자는 2023년 기준 약 1120만명에 이른다. 1980년대 중반에 비해 거의 4배가 늘었다. 이 추세는 2033년까지 계속돼 1480만명까지 늘 것으로 예상된다. 이전에는 중요한 노동인구로 생각하지 않았던 70세 이상에서도 남성의 노동시장 참여율이 크게 증가해 지난해 10월 기준 315만명에 달했다.

오랫동안 고령 근로자들은 기술 적응력 부족이나 빠른 은퇴 가능성을 우려해 채용 시장에서 불리한 평가를 받아왔다. 글로벌 인재 솔루션 기업인 '맨파워그룹'의 고령 근로자 채용 통계에 따르면 2022년 미국 기업 가운데 은퇴한 근로자 재채용 의사가 있는 곳은 19%에 그쳤다.

그러나 시니어 인력이 노동 시장에서 차지하는 비중이 커지면서 상황은 크게 달라질 수 있다.

전문가들은 앞으로 3~5년 사이에 의료와 교육, 행정, 고객 서비스 분야에서 시니어 채용이 증가할 것으로 내다본다. 이들 직군은 경험과 안정성이 중요한 만큼 시니어들이 강점을 보일 수 있다.

고령자들은 또 메디케어에 가입할 수 있기 때문에 기업 입장에서는 건강보험 비용이 주는 것도 이전에 생각하지 못했던 이점이다. 또한 고령 근로자들은 젊은 직원들보다 은퇴연금 불입 기간이 길어 회사의 추가 복지나 보조금 요구가 상대적으로 낮다. 또 교육훈련비가 적고 장기적으로 승진과 대우를 요구하는 압력도 적어 기업 입장에서는 인건비 대비 효율이 높다.

지금까지 시니어 채용에 적극적인 곳은 식료품점이나 백화점 등이었지만 최근에는 다양한 기업들이 채용에 나서고 있다. 대표적인 사례로 세계적인 인력 솔루션 기업인 '맨파워그룹 U.S.'는 2020년부터 '성숙한 인력 채용' 프로그램을 시작했다.

대형 약국 체인인 CVS는 은퇴 후 재취업을 원하는 시니어들을 대상으로 유연한 근무시간과 맞춤형 교육 프로그램을 제공해 풍부한 경험을 고객 서비스에 활용하고 있다. 홈디포도 고령 근로자들의 실무 경험과 고객 응대 능력을 높이 평가하고 다양한 직무에 시니어들을 배치하고 있다. 나아가 시니어 직무 교육과 건강 복지 혜택을 강화해 장기 근속을 유도하고 있다. 홈디포는 미국은퇴자협회(AARP)와도 협력 관계를 유지하고 있다.

업무에서 서비스 마인드와 숙련도가 중요한 호텔 체인 매리엇 인터내셔널도 프론트 데스크와 고객 응대, 관리직 등 다양한 분야에서 유연한 근무 조건을 제시하며 시니어 인력 채용에 나섰다. 세무 서비스 회사인 H&R블록은 매년 세금 시즌에 맞춰 고령 근로자를 단기 채용한다.

고령 친화적인 생태계 조성을 목표로 설립된 비영리기관인 '에이지 프렌들리 인스터튜트'는 시니어 채용 기업 증가에 맞춰 2019년부터 50세 이상 직원에 우호적인 기업을 선정하는 시니어 친화 기업 인증 프로그램을 도입하기도 했다.

가치 기반 리더십을 다룬 '리딩 포 임팩(Leading for Impact)'의 저자 제니퍼 쉴케는 "2020년 경제 회복 이후 고령 근로자의 고용이 서서히 증가하는 추세"라며 "앞으로 시장이 커지고 기업들이 확장하는 과정에서 시니어 인력의 중요성이 더욱 부각될 것"이라고 전망했다.

그렇다고 시니어를 직접 타깃으로 삼는 기업은 아직 많지 않다. 하지만 노련함과 신뢰성, 감정지능(EQ) 등 고령 인력 특유의 가치를 알아보는 기업이 조금씩 늘고 있다. 특히 법률같이 압박이 심한 분야에서는 시니어의 침착함과 안정감이 큰 자산이 될 수 있다.

이력서 작성 등 취업 지원기업인 '레주메 나우'의 키스 스펜서 경력전문가는 "시니어들은 재취업 과정에서 나이 차별과 기술 격차, 고스펙 등으로 어려움을 겪고 있다"고 지적했다. 이어 "경력 단절이나 빠른 이직 등 단점 때문에 시니어 채용을 꺼리는 기업들도 현재의 채용 시장에 맞춰 전략을 조정할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조직변화 전략 전문기업인 '커리어 노마드'의 파트리스 윌리엄스-린도 최고경영자(CEO)는 "현재 가장 큰 장애물은 기술이 아니라 나이에 대한 편견"이라며 "이제 그 편견도 은퇴시킬 때"라고 강조했다. 글로벌 경영 컨설팅 기업인 '베인앤컴퍼니'는 2030년까지 전 세계적으로 약 1억5000만 개의 일자리가 55세 이상 근로자에게 돌아갈 것으로 예상했다.

윌리엄스-린도 CEO는 "앞으로 시니어 채용은 단순한 선의의 문제가 아니라 전략적 선택이 될 것"이라고 강조했다. 그는 "시니어들은 신뢰성과 조직에 대한 경험뿐 아니라 메디케어 덕분에 낮은 복지 비용이라는 장점까지 갖췄다. 나이에 대한 오래된 편견을 버리는 기업이 새로운 시대의 승자가 될 것"이라고 전망했다.

안유회 객원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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