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울산저널]이종호 기자= 26일 울산교육연구정보원 박상진홀에서 '회복적 정의와 학교공동체의 만남'을 주제로 노옥희재단 정책연구포럼이 열렸다. 포럼은 울산저널, 정책과비전포럼의 교육 분야 화목 토론과 함께하고 있다.
주제 발표에 나선 이재영 평화교육훈련원(KOPI) 원장은 "처벌을 강화하는 것이 과연 학교폭력으로 이어지는 행동양식이나 사고를 실제로 제어하거나 예방할 수 있는가에 대해서는 좀 더 깊이 생각해볼 필요가 있다"면서 "마치 사형제도가 있는 나라가 그렇지 않은 나라에 비해 범죄율이 결코 낮지 않다는 비교처럼 처벌과 범죄가 갖는 복잡한 상관관계를 심도 있게 생각해 볼 필요가 있다"가 운을 뗐다.
가해자를 처벌함으로써 정의를 이루고 처벌을 강화해 폭력을 없앨 수 있다는 엄벌주의(중벌주의)와 지금의 학교폭력 처리 방식은 당사자에게 대결적 구도를 조장하고 학교와 지역사회에 불안 요소를 키워가는 결과를 초래하기 쉽다는 지적이다.
이재영 원장은 '잘못을 하면 벌을 받는다'는 상식화된 '응보적 정의'와 다른, 피해자의 피해가 회복되는 것에 초점을 맞춘 '회복적 정의'를 대안으로 제시했다. "잘못에 책임을 묻되 그 결말이 단순히 또 다른 고통의 부과로 끝나는 것이 아니라 관계의 회복과 사회공동체로 회복되는 것을 기대하면서 목적을 추구하는 방식"으로 관점을 바꾸자는 제안이다.
회복적 정의 운동은 1974년 캐나다의 작은 마을 엘마이라에서 청소년 범죄의 사법적 처벌의 한계를 지적한 두 명의 보호관찰관에 의해 시작됐다. 뉴질랜드는 1989년 소년법을 개정해 가족자율협의회를 법제화했다. UN은 '회복적 정의 프로그램 핸드북'을 발간했다.
우리나라에서 2019년부터 시작된 회복적 경찰 활동과 2010년부터 실시하고 있는 가정법원 소년부의 화해권고제도 등은 회복적 정의를 사법의 틀에서 적용하려는 시도들이다.
회복적 정의라는 관점을 학교 교육에 적용한 것이 회복적 생활교육이다. 이재영 원장은 "학교 현장에서 벌어지는 갈등 상황을 통제와 처벌이 필요한 순간이 아니라 교육의 기회로 보는 발상의 전환이 필요하다"며 "고질적인 학교폭력 문제에 효율적이고 교육적으로 접근하기 위해서는 회복적 생활교육을 하루빨리 일반화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이 원장은 "학교에서 생기는 많은 갈등과 분쟁이 학교폭력으로 신고되고 전문조사관의 조사와 심의 절차에 따라 처리되는 현실에서 매우 위험하고 피해가 큰 사건 말고는 학교공동체 회복위원회 같은 대화 모임을 통해서 먼저 문제해결을 시도하도록 해야 한다"며 "학교 구성원 중에서 조정위원을 선발하고 그 조정위원들이 전문 조정 훈련을 받아 대화 모임과 같은 조정을 실제로 진행할 수 있다면 학교의 문제를 구태여 외부로 돌리는 부담스러운 선택을 하지 않아도 될 것"이라고 말했다.
잘못된 행동을 한 학생에게 부득이 징계 절차를 진행하더라도 처벌 이후 교실로 복귀하기 전에 담임교사, 교감, 학생부장 등이 참가하는 대화 서클을 경험하게 하고, 학교폭력 예방교육을 활용해 회복적 정의의 가치와 회복적 학급 운영 방법을 교육하는 방안도 제시했다.
가해자 중심의 문제해결 관점을 바꿔 피해자와 피해자의 회복에 초점을 맞출 때 무엇보다 필요한 것은 '회복적 질문'이다. 이재영 원장은 "사안 조사와 같은 사실조사의 육하원칙보다 회복적 성찰문 같은 자료를 활용해 문제행동이 야기한 피해와 영향에 대해 생각하도록 돕고, 자발적 책임을 통해 문제를 직접적이고 실질적으로 풀어가는 책임성을 가르칠 필요가 있다"고 했다.
또 "대부분 학교의 문제가 외부로 확대되고 복잡해지는 데는 어떤 과정과 내용으로 문제해결이 진행될지에 대한 상이 없기 때문인 경우가 많다"면서 "학교와 학부모 사이에 학내 갈등 문제를 어떻게 대화로 풀 것인지 설명하고 동의하는 과정이 필요하다"고 덧붙였다.
교육부 산하에 학교분쟁해결센터를 독립된 기관으로 운영하는 호주나 지역에 뿌리를 두고 학교폭력 문제와 소년 사건을 지원하는 미국과 캐나다의 회복적정의센터처럼 회복적 정의 운동을 심도 있고 전문적으로 진행할 기관들이 세워져야 한다는 제안도 했다.
황상수 울산교육청 민주시민교육과 장학사는 학교폭력 신고 의무나 즉시 분리, 긴급조치 같은 법률 조항은 피해 학생을 보호한다는 이유로 제정됐지만 사안 발생 초기에 학생들 사이의 대화를 단절하게 하는 주요 원인이 되고 있다고 지적했다.
학교폭력대책심의위원회 운영에 대해서도 "상황과 맥락을 이해하지 않는 심의는 또 다른 분쟁을 일으키거나 심의 후 갈등이 여전히 유지되는 원인이 된다"고 진단했다.
김경익 장학사는 "학생 간 사소한 갈등을 학교폭력으로 신고하고, 교육공동체의 갈등을 행정적, 법적으로 처리하는 데 대한 사회적 우려가 커지고 있다"면서 울산교육청의 교육공동체 회복지원단과 회복적 학교 만들기 사례를 소개했다.
울산교육청 교육공동체 회복지원단은 연구분과 44명, 회복적 생활교육 분과 53명, 갈등 조정 분과 69명으로 구성돼 있다. 전현직 교원으로 구성된 회복적 생활교육 분과는 강사단을 꾸려 찾아가는 회복적 생활교육을 실시하고 있다. 20개 학교를 대상으로 회복적 학교 만들기 사업도 하고 있다.
갈등 조정 분과는 갈등 상황별로 신고와 조정을 동시에 안내해 고의적 은폐나 미대응, 2차 피해를 방지하고, 피해자가 신고를 원하면 사안을 접수한 뒤 대화 모임을 안내한다. 갈등 발생 전 예방과 조정 중, 조정 후 회복적 생활교육, 회복 프로그램도 운영한다.
교육공동체 회복지원단에 따르면 회복적 생활교육은 "갈등의 순간을 교육적 기회로 삼아 당사자들의 자발적 책임과 공동체 구성원 모두의 노력으로 피해가 온전히 회복되도록 접근하는 관점과 방식"이다.
지원단은 "무슨 일이 있었나요?"(상황 이해), "이번 일이 자신과 다른 사람에게 어떤 영향(피해)을 주었나요?"(영향 파악), "어떻게 하면 그 영향(피해)이 회복되고, 앞으로 자신이 할 수 있는 일은 무엇인가요?"(자발적 책임), "주변 사람들이 어떻게 도와주면 좋을까요?"(공동체 참여), "이번 일을 통해 배우거나 느낀 것은 무엇인가요?"(성장의 기회)라는 질문 카드를 만들어 배포하고 있다.
학교폭력 사안이 많은 28개교를 지정해 교육공동체 관계회복지구도 운영한다. 지난해 관계회복지구 운영 학교는 학교폭력이 전년 대비 30% 감소했다.
방어진고등학교 정여원 학생은 전교생을 대상으로 실시한 학교폭력 사안 처리와 예방에 대한 의견 조사 결과를 발표했다. 정여원 학생은 학교폭력에 대한 학생들의 인식이 대부분 처벌 중심 해결에 머물러 있고, 회복적 생활교육의 필요성에 대한 인식도 부족하다며 회복적 생활교육을 실질적으로 실행하기 위해서는 형식적 차원을 넘어서서 학생들의 인식을 제고하는 것이 필수라고 강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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