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딥페이크_엄벌하라, 세상을 바꾸는 것은 ‘우리’”…다시 거리로 나선 여성들

2024-09-23

딥페이크 성착취물 사건에 분노한 시민들이 거리로 나오고 있다. ‘인격살인’에 해당하는 중범죄가 전국의 학교·군대·가정을 파고들도록 내버려둔 책임을 정부와 정치권에 묻는 목소리다. 2016년 ‘페미니즘 리부트(reboot·재시동)’의 계기가 된 강남역에서는 지난달 30일부터 매주 집회가 열리고 있다. 2018년 6차례 시위를 이어가며 다수의 인파가 운집했던 서울 종로구 혜화역에서도 지난 21일 검은 옷을 입은 시민 5000여명(주최 측 추산)이 모였다. 사회관계망서비스(SNS)에서는 ‘#딥페이크_엄벌하라’ 해시태그 운동이 이어졌다. 다시 거리로 나선 여성들에게 그 이유를 물었다.

“나는 세상을 바꾸는 것은 ‘우리’라는 믿음으로 거리에 나왔다”

“몇 년 전 강남역 근처를 지나다가 우연히 강남역 살인사건 추모 집회를 보게 됐어요. 그때 ‘아직도 이 자리를 지키는 사람들이 있구나’ ‘계속 목소리를 내야 잊히지 않는다’는 생각을 했습니다.”

대학생 조혜원씨(24)는 “많은 여성들이 거리에서 목소리를 내야 딥페이크 범죄도 심각성이 잊히지 않을 것”라고 매주 집회에 참여하는 이유를 설명했다. 그는 주위로부터 ‘SNS 프로필 사진을 비공개하라’는 조언을 들으며 드는 의문을 지울 수 없었다고 했다. “왜 여성과 피해자가 숨어야 하나.” 조씨는 피해를 당할 수 있다는 이유로 더 조심하라는 사회에 이의를 제기하기 위해 거리에서 더 많이, 더 크게 소리친다고 했다.

그는 “많은 여성이 거리로 나선 이유는 ‘우리를 더 이상 능욕할 수 없다’는 것을 보여주고, 국가·사법부·경찰의 방치를 더는 참지 않겠다는 목소리를 내기 위한 것”이라며 “세상을 바꾸는 것은 ‘우리’라는 믿음으로 거리에 나왔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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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 딥페이크 성폭력 규탄 집회에 참여한 강모씨(28)는 과거 ‘진주 편의점 폭행사건’의 피해자와 연대하는 여성들을 보며 기회가 된다면 그 연대에 동참할 것이라 다짐해왔다. 진주 편의점 폭행사건은 지난해 11월 한 20대 남성이 경남 진주의 한 편의점에서 일하던 20대 여성을 ‘머리가 짧으니 페미니스트’라는 이유로 무차별 폭행한 사건이다. 강씨는 “피해자를 위로하기 위해 삭발하는 페미니스트들을 보며 여성혐오 범죄에 연대할 힘을 얻었다”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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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때의 다짐으로 딥페이크 성폭력의 피해자들과 연대했다. 강씨는 딥페이크 성범죄가 이뤄진 텔레그램 대화방에 잠입해 직접 증거를 수집했다. 그는 그곳에서 매순간 수많은 딥페이크 성착취물이 제작·유포되는 걸 목격했다고 했다. 딥페이크 성범죄 문제가 지적된 건 어제오늘의 일이 아니었지만 정치권은 제 때 제대로 된 대책을 내놓지 못했고, 가해자들은 익명성에 숨어 피해자를 조롱하고 2차 가해를 했다. 강씨는 “여성들의 분노와 연대가 피해자들에게는 위로의 메시지로, 가해자에게는 ‘너희가 붙잡힐 때까지 우리가 연대하겠다’는 메시지로 전해졌으면 한다”고 했다.

“피해자인 아이들에게 너희 잘못이 아니라고, 우리가 함께 할 테니 같이 세상을 바꾸자고 말하고 싶어요.”

두 아이를 둔 학부모 함송화씨(48)는 “아이들이 앞으로 살아갈 세상을 바꾸기 위해 거리로 나섰다”고 했다. 함씨는 초등학생 딸이 학교에서 딥페이크 성범죄에 대해 배웠다는 이야기를 듣고 “아이에게서 이런 말을 들어야 하는 사회가 너무나 끔찍했다”며 “성인이 될 때까지 안전하게 키울 수 있을지 걱정된다”고 했다.

함씨는 거리에 나설 때마다 “이번 만큼은 문제를 해결해야 한다”는 각오를 되새긴다고 했다. 그는 “정부·정치권이 해결책은커녕 기술이 발전해 자연스럽게 벌어진 일처럼 이야기해 여성들이 분노하는 것”이라며 “n번방 사태 때 일부를 제외하고 솜방망이 처벌에 그쳤기 때문에 문제가 반복되고 있다”고 했다.

그는 “시위에서 ‘서로 놓지 말자’고 말하는 여성들에게 힘을 얻었다”며 “아직은 행동에 나서지 못한 여성들에게 용기를 북돋아주고 싶다”고 말했다.

▼ 이예슬 기자 brightpearl@khan.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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