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 노래 그 사연] ‘신 유흥 중심지’서 사랑을 외치다

2024-12-22

작곡가 남국인이 10월10일 향년 82세로 별세했다. 남국인은 부인 정은이와 함께 많은 명곡을 남긴 부부 음악가였다. 특히 두 사람이 남긴 ‘님과 함께’ 같은 히트곡은 이촌향도의 꿈같은 한국 현대사의 변곡점을 잘 담아냈다.

1980년대 들어 정은이·남국인 부부는 한국 트로트사에서 전환점이 되는 두 곡을 만들어 가수 주현미를 통해 발표했는데 바로 ‘비 내리는 영동교’(1985)와 ‘신사동 그 사람’(1988)이다.

‘비 내리는 영동교’는 떠나간 남자를 잊지 못해 비 내리는 밤 울며 걷는 여성의 미련을 담은 노래다. 이 곡은 무엇보다 ‘영동교’라는 배경이 의미 있다. 현재 서울 성수동과 청담동을 잇는 영동대교는 과거 영동교로 불렸다. 그런데 왜 하필 1985년에 한 여자가 영동교를 비 오는 밤에 걸었을까.

오늘날 부의 상징인 서울 강남 일대는 1980년대 초반에야 본격적으로 개발에 들어갔다. 당시 경제의 중심은 종로·명동·영등포 등이었다. 영동교·영동사거리 등의 명칭은 영등포의 동쪽이라는 뜻이었다.

강남 개발이 이뤄지면서 현대식 건물에 가장 먼저 들어선 것이 바로 유흥가였다. 강남구 신사동 일대엔 고가의 룸살롱과 러브호텔이 우후죽순 생겨났다. 1982년 야간 통행금지까지 해제되자 사람들은 너도나도 유흥가에 들락거렸고 불륜이라는 단어가 공공연히 회자됐다. 한마디로 1980년대의 강남은 그야말로 새로운 유흥의 중심지였고 ‘비 내리는 영동교’는 이러한 분위기를 담은 정통 트로트였다.

정은이·남국인 부부는 노래의 인기에 힘입어 강남의 유흥가 분위기를 주제로 한 노래 ‘신사동 그 사람’을 만들었는데 이 노래 또한 빅히트했다.

노래는 “희미한 불빛 사이로 마주치는 그 눈빛 피할 수 없어. 나도 몰래 사랑을 느끼며 만났던 그 사람”으로 시작한다. 성인나이트클럽의 야릇한 분위기를 연출한 이 곡은 유흥가에서 벌어진 중년 남녀의 짧은 만남을 밝게 묘사한 것으로 가요사에서 트로트가 슬프고, 어두운 이미지를 벗어던지는 데 일조한 노래로 기록된다.

이 시기 강남에서 태어나 청소년 시절을 보내며 신흥 유흥가 뒷골목 분위기를 몸으로 체득하며 성장한 인물이 가수 싸이다. 그는 강남나이트클럽에서 만나는 남녀를 주제로 ‘강남스타일’을 만들어 세계적인 스타가 됐다. ‘강남스타일’은 ‘비 내리는 영동교’ ‘신사동 그 사람’에게 상당 부분 빚을 지고 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박성건 대중음악평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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