윤석열 정부, 본인부담금 부과 기준 개편 추진
‘과다 이용 방지’ 취지···시민단체 “철회해야”
대통령실 ‘시민사회 만나 주장 들어보라’ 지시

대통령실에서 지난 정부가 추진했던 의료급여 정률제 개편과 관련해 시민사회의 의견을 다시 한 번 청취하고 개편안을 검토하라는 지시를 내린 것으로 알려졌다. 이재명 정부에서 구체적인 복지 현안에 처음으로 ‘원포인트 지시’를 한 것인데, 윤석열 정부에서 후퇴했던 ‘약자 복지’ 정책을 바로잡겠다는 의지로 보인다.
국회 및 정부 관계자 취재 결과, 최근 보건복지부 국실장급의 대통령실 업무보고에서 이 같은 지시가 있던 것으로 19일 확인됐다. 문진영 대통령실 사회수석은 복지부 실장급에게 ‘의료급여 정률제 개편에 줄곧 반대의견을 내온 시민단체들을 만나서 주장을 자세하게 들어보라’고 한 것으로 전해졌다. 문 수석은 시민단체에도 직접 연락해 복지부와 만나서 소통했으면 좋겠다는 취지를 전달했다고 한다.
정부는 지난해 7월부터 의료급여 제도 개편을 추진해왔다. 현재 의료급여 수급자들은 의원(1차)에선 1000원, 병원(2차)에선 1500원, 상급종합병원(3차)에선 2000원 등 정해진 액수(정액제)의 진료비를 낸다. 정부는 외래 본인부담금을 의료비 이용에 비례해 내도록 해 과다 의료이용을 막겠다는 취지로 개편안을 추진했다. 오는 10월 시행예정인 ‘의료급여 시행령 일부개정령안’은 외래 본인부담금을 진료비의 4∼8%로 바꾸는 내용 등이 담겼다.
참여연대, 시민건강연구소 등 보건의료 관련 시민단체들은 “빈곤층 의료비를 10배 이상 올릴 수 있는 정책”이라고 비판했다. 정성식 시민건강연구소 연구원은 ”정부가 건당 2만원의 본인부담 상한선을 둔다고 했으나, 의원급을 기준으로 상한선 ‘이하’ 진료비 구간에서 환자 부담은 최대 20배 늘어날 수 있다“고 지적했다. 정부가 과다지출된 의료비 환급 시기를 6개월에서 3~4개월로 앞당기겠다고 했으나, 정 연구원은 “진료 받는 시점에서 수급자들이 겪게 될 어려움이 달라지진 않는다”고 말했다.
복지부는 일명 ‘병원 쇼핑’ 등 의료 과다이용을 방지하기 위해서 제도 개편을 추진한다고 설명해왔다. 그 배경에는 재정당국이 의료급여 개편을 강하게 요구해왔던 사실도 확인됐다. 복지부 관계자는 “정률제 개편을 전제로 해서 관련 보장성 예산도 (예산안에) 들어갔는데, (정률제 개편을) 안 하면 그 예산도 집행을 못하게 돼 어려운 점이 있다”고 말했다. 국회 관계자는 “기획재정부가 비용절감 및 경영 효율화 의제로 ‘의료급여 개편’을 조건으로 걸면서 예산안을 승인해준 것으로 보인다”고 말했다. 복지부가 시민단체의 거센 비판을 받으면서도 제도 개편을 강행했던 데는 이 같은 배경이 작용했을 것으로 추정된다.
대통령실의 개편안 요구에 따라 정부와 시민단체의 대화가 조만간 이뤄질 것으로 예상된다. 전은경 참여연대 팀장은 “대통령실 요청도 있는 만큼, 공식적인 만남 자리를 어떻게 마련하면 좋을지에 대해서 관련 시민단체들이 모여서 조만간 논의하기로 했다”고 말했다. 정성철 빈곤연대 활동가는 “정률제 자체가 의료급여 수급권자들의 병원 문턱을 높이는 것이기 때문에, ‘철회’가 아니면 의미가 없다”며 “정부와 제대로 된 사회적 논의를 할 수 있는 자리가 마련됐으면 좋겠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