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지난 1일 경기 김포시의 미얀마 음식점에서 만난 이주노동자 아웅(가명·29)은 검은색 스마트폰을 탁상 위에 올려놨다. 최근 한국에서 돌연사한 친동생 뚜야(가명·24)의 휴대전화였다. 아웅이 오른손 검지로 휴대전화 액정에 ‘Z’ 모양의 패턴을 그렸다. 하지만 액정에는 ‘Phone locked. Try again in 240s(휴대전화가 잠겼습니다. 240초 후에 다시 시도하세요)’라는 문구만 덩그러니 나타날 뿐이었다.
미얀마 양곤 출신 뚜야는 지난해 6월 비전문취업 비자(E-9)로 한국에 입국했다. 뇌졸중으로 거동이 어려운 부모님의 병원비를 보태기 위해 한국행 비행기에 몸을 실었다. 김포시의 한 공장에 취직한 뚜야는 지난달 18일 야간 근무를 마친 뒤 극심한 두통을 호소하다가 병원에 가던 중 사망했다. 입국 전후 건강검진을 받은 그는 별다른 지병이 없었다.
아웅은 산업재해를 의심했다. 그는 “죽기 전 동생한테서 ‘맡은 일이 너무 힘들어서 이번 달까지만 일하고 관둘 것’이라는 전화가 여러 번 왔다”고 말했다. 하지만 물증은 없었다. 병원이 밝힌 사인은 ‘미상’, 범죄 혐의가 없다는 경찰 판단에 부검도 이뤄지지 않았다. 유품인 휴대전화가 유일한 실마리였지만, 사설 포렌식 업체에 문의해보니 잠금 해제 비용으로 630만원을 불렀다. 도저히 감당할 수 없는 금액을 듣고 아웅은 해제를 포기했다.

한국인이라고 사정이 다르진 않다. 구글 안드로이드나 애플의 운영체제 보안과 개인정보보호 정책 등이 강화되면서 제조사 서비스센터에선 휴대전화 패턴이나 비밀번호를 해제할 수 없기 때문이다. 세상을 떠난 가족의 흔적을 조금이라도 찾고 싶은 유족은 사설 포렌식 업체의 문을 두드린다.
한 사설 포렌식 업체가 개설한 카페에는 지난 6월 ‘돌아가신 가족 핸드폰 잠금 해제 방법 있을까요?’라는 제목의 게시글이 올라왔다. 게시자는 “오늘 가족이 돌아가셨는데 핸드폰 연락처로 부고 문자를 보내려고 보니 패턴으로 잠겨 있다. 이곳저곳 알아보니 사설 업체밖에 답이 없는 것 같아 묻는다”고 적었다. 김태균 포렌식닷컴 대표는 “1년에 약 60건 정도 패턴 잠금 해제 의뢰를 받는 것 같다. 의뢰인의 80%는 유족”이라고 말했다.
기자가 사설 포렌식 업체 5곳에 문의해보니 패턴 잠금 해제 비용으로 적게는 400만원부터 많게는 800만원까지 불렀다. 한 업체는 최신 기종인 삼성전자 갤럭시S25울트라를 사용한다고 하자 “불가능하다”고 답했다. 반면 출시가 5년 이상 된 휴대전화의 경우에는 “15만원이면 충분하다”고 했다. 김 대표는 “최신 스마트폰에 깔린 운영 체제는 보안이 매우 강력하다. 그에 맞는 장비를 갖춰야 하고 해제 난도도 만만치 않기 때문에 비용이 차이가 난다”고 설명했다.
대형 참사 때는 전화번호만 예외적 제공
휴대전화 잠금 문제가 공론화 되는 순간은 주로 대형 참사가 발생할 때다. 12·29 제주항공 여객기 참사 당시 유가족 대표단은 희생자의 카카오톡 등 소셜네트워크서비스(SNS) 계정에 등록된 지인 정보를 공개해달라고 정부에 요구했다. 부고 소식을 알리는 등 장례 절차를 진행하기 위해서였다.
당시 과학기술정보통신부는 원칙적으로 유족이라고 해도 회원 정보를 제공할 순 없다고 유가족에게 설명했다. 회원 아이디 및 비밀번호 등 계정 정보는 일신전속적(법률에서 특정한 자에게만 귀속하며 타인에게는 양도되지 않는 속성) 정보에 해당하기 때문이다.

하지만 정부는 개인정보위 법령 해석 검토와 삼성전자, 카카오, 애플 등 협의를 거쳐 예외적으로 유가족에게 지인의 전화번호만 제공하기로 결정했다. 10·29 이태원 참사 당시도 희생자 부모가 아들이 생전 소유한 아이폰의 잠금을 풀어달라고 애플을 상대로 소송을 제기했다가 취하한 바 있다.
최근 국회는 관련 문제 해결에 착수했다. “입법 공백 상태에서 정부와 기업의 선의에만 기대는 것은 한계가 있다”(유동수 더불어민주당 의원)면서다. 지난 4월 유 의원은 생전에 이용자가 계정대리인을 지정하고, 사망 또는 실종 시 계정대리인이 정해진 범위 내에서 이용자의 계정에 접근할 수 있게 허용하는 정보통신망 이용촉진법 개정안을 대표발의했다.
황석진 동국대 국제정보보호대학원 교수는 “잊힐 권리 등 고인의 개인정보 자기결정권은 중요하게 논의돼야 한다”면서도 “가족의 갑작스러운 죽음으로 각종 문제에 대처할 수 없는 유족의 현실을 고려해 적절한 범위에서 고인의 정보를 제공하는 방향으로 기술과 법이 개선돼야 한다”고 조언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