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즈한국] 글로벌 콘텐츠 시장은 한마디로 ‘쩐의 전쟁’이다. 높아진 제작 단가에 업계는 제작 편수부터 줄였고 자금난을 겪는 곳도 늘었다. 드라마, 영화 등 국내 콘텐츠가 해외 시장에 대응하고 지배력을 확대하기 위해서는 대규모 자금 투입이 필수로 꼽힌다. 국무총리실 산하 위원회가 지난 3월 발표한 ‘미디어·콘텐츠 산업융합 발전방안’에서 1조 원대 ‘K-콘텐츠·미디어 전략펀드’의 신설을 필두로 대규모 정책자금 공급을 강조한 것도 이 때문이다. 하지만 펀드 출자 일정이 예정보다 늦어지고 올해 목표에 못 미치면서 현실성 문제가 부각되고 있다.
#지연에 지연, 자펀드 결성 내년 넘긴다
올 3월 발표에 따르면 ‘K-콘텐츠·미디어 전략펀드’는 4월 중 모펀드 위탁운용사를 선정하고 6월 내 모펀드를 결성할 예정이었다. 이 전략펀드는 제작비 급증, IP 확보 경쟁 심화 등으로 업계가 위기를 맞은 상황에서 새롭게 조성되는 펀드다. 국무총리 직속 자문기구인 미디어 콘텐츠 산업융합 발전위원회(융발위)의 중장기 계획의 일환으로 추진된다. 중소·벤처기업 투자로 한정된 모태펀드와 달리, 운용상 투자 제한이 없어 지식재산권(IP) 기반 대형 콘텐츠에 집중 투자할 수 있다.
올해 6000억 원(모펀드 2000억 원+민간자금 4000억 원) 조성을 시작으로 2028년까지 총 1조 200억 원을 확보하는 게 목표다. 모펀드에는 전략펀드를 공동 주재하는 과학기술정보통신부(350억 원)와 문화체육관광부(450억 원)가 출자하고 나머지 1200억 원은 민간 콘텐츠 기업에서 끌어오는 계획이다.
하지만 모펀드 위탁운용사가 지난 4월 최종 선정된 이후 대부분의 일정이 늦어지면서 올해 민간자금을 포함한 6000억 원 규모 조성은 어려울 것으로 보인다. 관계부처에 따르면 현재 모펀드 결성 및 운용계획 수립 마무리 절차가 진행 중이다. 상반기 안에 모펀드를 결성하는 당초 계획은 물론, 지난달 초 기관 업무협약 발표 시 공개한 일정보다 지연됐다. 모펀드 결성이 끝나야 시작되는 자펀드 출자도 함께 일정이 밀려 다음 달 공고부터 시작해 내년 상반기 추진될 전망이다.
앞서 지난달 2일 문체부와 과기정통부는 전략펀드 조성 및 협력사업을 위한 업무협약을 체결했다. 한국산업은행과 중소기업은행 등 정책금융기관, CJ ENM, KBS, 중앙그룹 컨소시엄(SLL), KT, SK브로드밴드, LG유플러스 등 콘텐츠·미디어 6개 기업과 한국성장금융투자운용 등 총 11개 기관이 참여한다.
문체부 관계자는 “협약식 체결 이후 이사회 의결 등 기업 내부 절차에 생각보다 시간이 더 소요되고 있다. 자펀드 운용사 선정 공고는 올해 진행이 될 것”이라며 “각 자펀드 결성은 내년 상반기에 추진 예정”이라고 설명했다.
#‘융발위’ 흐지부지, 유인책 없는데 5년 계획 성공할까
콘텐츠 업계의 자금줄을 자처한 정책자금 공급이 지연되면서 융발위의 5년 장기 구상이 현실화될 수 있을지 우려하는 목소리가 커지는 모습이다. 융발위는 과기정통부와 문체부, 방송통신위원회를 아우르는 미디어 컨트롤타워 역할을 위해 지난해 4월 출범했으나, 올 3월 발전방안 발표 이후 활동이 사실상 멈췄다. 방통위의 파행 운영과 정치적 논쟁 등으로 실행에 옮겨진 융발위 계획은 극소수다.
투자의 수혜자가 명확하지 않은 자금이 목표한 만큼 모일지 의문을 갖는 시각도 있다. 황근 선문대학교 미디어커뮤니케이션학부 교수는 “전략펀드 조성에 참여하는 기업들이 자발적으로 참여할 이유가 없다. 통신사는 콘텐츠 투자에 적극적이지 않다. 은행의 경우 자사의 다른 비즈니스에 비해 큰 규모가 아니고 정부 정책이 있으니 따라가는 것이지만 근본적으로 사업적인 유인은 크지 않다”며 “영국의 BBC나 독일의 공영방송이 넷플릭스와 같이 스튜디오를 운영할 수 있는 건 단발성 투자가 아닌 지분 공유 등을 포함하기 때문”이라고 지적했다.
권오상 미디어미래연구소 소장은 “민간의 몫인 자금 마련을 정부가 나서서 대신 해주는 것인데 동기부여가 없는 문제다. 이익이 된다면 애초에 민간이 알아서 하겠지만 그럴 수 있는 상황이 아닌 것”이라며 “기금 등은 정확한 목적을 세워 확보하고 사업 계획도 구체적으로 만들어야 한다. 방발기금(방송통신발전기금), 정진기금(정보통신발전기금)에서도 제작 지원은 되고 있다. 사업계획에 대한 치밀한 고민이 필요하다”고 짚었다.
최근 각 부처들이 경쟁적으로 정책펀드를 조성하고 나서면서 공적자금의 중복 지원 문제도 대두되고 있다. 국회예산정책처는 보고서를 통해 정책펀드가 민간 자금을 매칭하는 등 운용 과정이 복잡하고 운용기간도 장기적이라는 점에서 제대로 된 성과를 평가하기 어렵다는 점을 지적하기도 했다.
황 교수는 “확보한 자금을 운용할 때도 형식에 그치기 십상”이라며 “콘텐츠 사업은 성공률을 보장하기 어렵다. 될 곳에 모아줘야 하는데 펀드 자금을 개별 작품이나 프로그램 건당 지원하는 식으로는 정책 효과도 내기 어렵다”고 강조했다.
문체부 관계자는 “해당 전략 펀드 계획은 정부가 먼저 모펀드 자금을 만들고 모펀드에서 자펀드에 출자해 투자금을 모으는 절차다. 모펀드는 확보했고 자펀드 자금 결성은 아직 본격화하지 않은 시점으로, 투자 자금을 모으는 데 차질이 있는 상황은 아니다”라고 전했다.
강은경 기자
gong@bizhankook.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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