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내외적 경기 둔화로 요즘같이 심란할 때면 2017년 히말라야가 그리워진다.
추위를 피하느라 겉옷을 겹겹이 껴입고 침낭 속에는 보온물통 1L에 뜨거운 물까지 넣어서 발밑에 재워두었다. 칼바람만 막았을 뿐이지 추위 때문에 침낭 속에서 끙끙거리다가 화장실에 가기 위해 한밤중 둔해진 몸뚱어리를 조심스레 일으킨다.
이곳은 히말라야 안나푸르나 베이스캠프(ABC) 트레킹. 전 세계 트레커의 버킷리스트 1순위 장소이자 트레커의 성지이자 트레킹 천국이다. 이번 일정 중 제일 높은 고도 4130m에 위치한 ABC lodge. ABC lodge는 코앞에서 장엄한 일출을 볼 수 있기에 인기가 제일 좋은 곳이다. 여기에 도착하기 위해 하루에 6~7시간을 4일간 걸어왔다.
잠자는 다른 일행에 방해되지 않게 아내와 나는 침낭을 벗어나 조심스럽게 침실 문을 열었지만 약간의 삐그덕 소리는 어쩔 수 없다. 문을 여니 칠흑같이 깜깜한 밤, 그러나 하늘에서는 금방이라도 쏟아질 것 같은 별들의 향연이 펼쳐졌다. 이제껏 본 것 중 가장 많은 별들. 선명하고 눈부신, 형언할 수 없는 황홀한 감동이 느껴진다. 별들과 만년설의 조화. 거기에 구름이 지나갈 때마다 만년설이 보였다 안보였다 하고 모든 장면은 전혀 다른, 매 순간이 새로운 느낌이다. 환상적인 장면에 우리 부부는 입이 절로 벌어지고 눈은 휘둥그레. 심장이 요동치는 듯한 감동이 느껴진다. 그렇게 그 자리에서 파노라마 서라운드 뷰를 시간 가는 줄 모르고 감상하는 사이 어느덧 일출 시간이 되어 사람들이 몰려들기 시작하고 일출 광경을 좋은 장소에서 보려는 듯 전 세계에서 몰려든 트레커들이 분주히 움직인다.
왼쪽의 안나푸르나 남봉에서 시작하여 우측의 안나푸르나 주봉(8091m) 쪽으로 서서히 설산의 봉우리가 황금빛으로 물들기 시작한다. 이번엔 만년설의 흰색과 황금빛 노란색의 절묘한 조화다. 타르초(오색의 사각천에 부처의 가르침과 경전의 지혜를 새긴 다음 ‘바람과 함께 온 세상에 널리 퍼져라’라는 의미를 가지도록 가로로 줄줄이 걸어놓은 것)와 전 세계의 트레커 행렬. 만년설 위에 비친 황금빛 일출 아래 트레커들이 걸어가는 모습은 마치 순례자들이 천국을 향해 걸어가는 듯하다. 히말라야 트레킹을 하면서 수없이 듣는 나마스테(Namaste)와 비스따리(Bistari). 나마스테는 평범한 인사처럼 보이나 ‘내 안의 신이 당신의 신에게 경배합니다’라는 의미로 상대방과 그의 세계에 대한 존중이고, 비스따리는 ‘천천히’라는 뜻이다. 히말라야는 ‘비스따리, 비스따리’하면서 걸음도 천천히, 모든 것을 비스따리 해야만 고산병도 예방된다. 천천히 여유를 갖고 세상을 바라보면 또 다른 모습이 보이고 내 안의 새로운 나를 맞이하게 된다.
2016년 우리 부부는 부부 동시에 대한민국 100대 명산을 완등했다. 2017년 TMB 알프스 트레킹과 그 외 이탈리아 돌로미테 트레킹, 뉴질랜드 밀포드 트레킹, 캐나다 로키 트레킹 등등 세계 여러 곳곳을 등산과 트레킹하면서 벅찬 감동을 느껴봤지만, 2017년 히말라야 안나푸르나 베이스캠프(ABC) 4130m에서 밤하늘의 별빛과 황금빛 일출을 보며 숨막힐 정도로 가슴 뛰는 감동을 느꼈고, 과거의 내 영혼과 작별하고 한층 더 성숙한 새로운 영혼으로 태어난 계기가 되었다.
미국 시인 마야 안젤루가 한 말이 생각난다. “인생은 숨을 쉰 횟수가 아니라 숨막힐 정도로 벅찬 순간을 얼마나 많이 가졌는가로 평가된다.”
숨막힐 정도로 벅찬 순간을 또다시 그리워하며......
2024.1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