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즘 경기장, 전쟁터 같다” 팬 폭력, 미국 스포츠 현장 일상화… “폭력은 감정 폭발이자 집단 심리의 산물”

2025-10-15

가을철 미국 스포츠 시즌은 팬들에게 최고 시간이다. 미국프로풋볼(NFL)은 절정으로 향하고, 미국프로야구(MLB) 포스트시즌은 극적 긴장감을 더한다. 미국프로농구(NBA)와 북미아이스하키리그(NHL)도 막을 올린다. CNN은 15일 “이 뜨거운 열정 뒤에는 점점 익숙해진 또 다른 장면이 있다”며 “경기장 스탠드에서 벌어지는 팬들의 폭력과 혼란”이라고 비판했다.

CNN 보도에 따르면, 미국 주요 경기장에서는 주말마다 관중석 난투극이 끊이지 않는다. 휴대전화 영상은 순식간에 온라인에 퍼진다. ‘팬 폭력’은 이제 거의 다반사가 됐다.

토머스는 NFL 워싱턴 커맨더스의 열성 팬이다. 4년 전부터 그는 매 경기 자신의 전담 경호원을 고용해 동행한다. 키 2m에 몸무게 140㎏이 넘는 경호원이다. 토머스는 CNN에 “미친 일처럼 들리겠지만, 보험 같은 것”이라며 “항상 누군가는 다른 사람의 즐거움을 방해하려 든다. 이기지 못한 팀의 팬들 중 다른 사람의 기분을 망치려는 사람이 꼭 있다”고 말했다.

지난 9월 토머스는 자신의 홈팀이 뉴욕 자이언츠를 이긴 뒤 경기장을 나서다가 팬들 간의 폭행 장면을 목격했다. 워싱턴 유니폼을 입은 두 명이 파란색 자이언츠 셔츠를 입은 팬에게 주먹을 퍼붓고 있었다. 그가 촬영한 영상 속엔 주먹이 얼굴을 때리는 소리가 그대로 담겼다. 토머스는 “왜 싸움이 났는지조차 모르겠다”며 “그런데 이제는 그런 싸움이 놀랍지도 않다”고 전했다.

수년간 축구 훌리건들과 어울리며 그들의 폭력적 심리를 기록한 영국 작가 빌 버퍼드는 영국과 유럽 각지의 경기장을 따라다니며 경찰과 팬들이 뒤엉켜 싸우는 장면을 직접 목격했다. 어떤 팬은 경찰의 눈을 물어뜯는 장면까지 있었다고 회상했다. 버퍼드는 “경기장 군중은 인간 문명의 위대한 드라마 중 하나. 대본 없는 고도의 연극”이라며 “큰 군중은 상상할 수 없는 힘과 파괴력을 지녔다. 군중이 ‘우리’라는 감각을 느끼는 순간, 멈추기 힘들어진다”고 강조했다. 버퍼드는 폭력이 단순한 분노의 표출이 아니라, 정체성과 소속의 심리적 변화에서 비롯된다고 분석한다. 그는 “자신의 팀에 대한 충성심에서 일종의 민족주의가 생겨난다”며 “그리고 그것이 폭력으로 이어지기도 한다”고 덧붙였다.

NFL 신시내티 벵골스 팬 조이 크롬웰은 최근 잭슨빌 재규어스와의 경기를 보러 갔다가 뜻밖의 일을 겪었다. 3쿼터가 끝날 무렵, 두 줄 뒤에서 싸움이 벌어졌고, 싸우던 팬 중 한 명이 그의 무릎 위로 넘어졌다. 그는 “아내는 너무 무서워서 바로 도망쳤다. 먼저 밖으로 나가겠다고 했다”며 “누가 일어나서 시야를 가렸다는 사소한 이유로 싸움이 시작됐다. 이게 싸울 일인가 싶었는데, 어느새 진짜 난투가 돼 있었다”고 회상했다.

버퍼드는 팬 폭력의 순간을 “잠깐의 도약”이라고 표현했다. 그는 “폭력을 허락하는 순간은 다이빙대에서 뛰어내리는 것과 같이 규칙이 사라지는 공간으로 몸을 던지게 된다”며 “그 순간엔 ‘이건 하면 안 되는 일’이란 걸 알면서도 묘한 해방감이 따라오고 한 번 그 선을 넘으면 다시 돌아올 수 없다”고 말했다.

폭력적 팬 문화가 단순히 술이나 흥분 때문만은 아닐 수 있다. 버퍼드는 “우리는 필드 위에서 상대를 압도하고 고통을 주는 것을 ‘강함’으로 찬양하며 그게 관중석에서도 전염된다”며 “모욕을 참는 건 약함처럼 느껴지고, 결국 자존심이 폭력을 부르는 꼴”이라고 비판했다. 팬 폭력은 시대를 초월한 사회 현상이며 관중석은 선수들의 경기만큼이나 인간의 감정이 폭발하는 또 다른 무대다. 버퍼드는 “스포츠 관중은 문명화된 사회 속에 숨어 있는 원초적 본능을 드러낸다”며 “이것을 단순한 사건으로만 볼 것이 아니라, 인간 감정의 집단적 구조로 이해해야 한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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