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30명의 사망자가 나온 경북 산불의 피해가 커진 원인 중 하나로 불에 잘 타는 소나무 비율이 높다는 지적이 제기되는 가운데, 미국 로스앤젤레스(LA)에선 야자수가 산불 피해를 키운 원인 중 하나로 지목되고 있다.
워싱턴포스트(WP)는 30일(현지시간) 지난 1월 최소 29명의 사망자를 내고, 1만6000채가 넘는 건물이 불탄 최악의 LA 산불 이후로 현지에서 화재에 취약한 야자수 대신 다른 수종을 심자는 주장이 나오고 있다고 보도했다.
현재 LA에는 약 10만그루의 야자수가 있는데, 캘리포니아 지역 기온 상승과 갈수록 심각해지는 산불 피해 때문에 많은 주민들이 야자수가 미래에 적합하지 않다고 생각하고 있다고 WP는 전했다.
캘리포니아는 미국 및 세계의 다른 지역보다 빠르게 기온이 상승하고 있는 반면, 야자수는 그늘을 거의 제공하지 않는 데다 불을 더 크게 키우는 ‘불쏘시개’ 역할을 한다.
야자수의 기다란 줄기는 ‘연료 사다리’ 역할을 하며 불꽃이 높이 타고 올라갈 수 있도록 하며, 푸른 잎 아래에 쌓이는 마른 잎사귀는 불을 더 크게 키우는 역할을 한다고 WP는 지적했다. 또한 키가 큰 야자수에 불이 붙으면 소방관들이 불을 끄기 어렵고, 높은 곳에서 불타는 잎이 불씨를 더 멀리 퍼뜨릴 수 있다고 전했다.


야자수가 길쭉하게 키만 커지고 그늘을 거의 만들지 않는다는 점도 지적됐다. WP는 “LA 지역의 ‘그늘 불평등’도 문제가 된다”며 “부유한 동네는 크고 푸른 나무가 햇빛을 차단하는 반면, 가난한 동네는 나무가 부족하고 열을 흡수하는 포장도로가 많다”고 전했다.
야자수는 따사로운 햇살이 가득한 LA를 상징하는 나무로 자리 잡았지만, 실은 LA 토착종이 아니다. 대부분 초원과 관목으로 가득했던 이곳에 18세기 스페인 선교사들이 대추야자를 도입했다. 이후 서부로 이주한 사람들이 부채꼴 야자수를 심었다. 19세기 후반 토지 개발업자들이 남부 캘리포니아를 ‘햇살 가득한 땅’으로 홍보해 판매하는 데도 야자수의 이미지가 한몫했다.
대공황도 야자수를 LA의 상징으로 만드는 데 일조했다. LA시는 실업자에게 일자리를 마련하기 위해 수천 그루의 야자수를 심었다. 1932년 LA 올림픽을 앞두고 미화 캠페인의 일환이기도 했다.
최근 새로 심는 나무 가운데 야자수 비율은 줄고 있다. 2019년 LA시가 더위를 막기 위해 9만그루의 나무를 심는 캠페인을 펼쳤을 때, 이 중 대부분은 야자수가 아닌 종이었다.
서던 캘리포니아 대학교수이자 조경가인 에스더 마굴리스는 “20~30년 전보다 야자수 식재가 확실히 줄었다”며 화재가 빈번한 지역의 야자수를 베어내야 한다고 조언했다.
하지만 일각에선 화재 탓을 야자수로 돌리는 것은 지나치다는 비판도 나온다. 나무 심기 운동을 하는 트리피플의 수목의학자 브라이언 베하르는 “도시에서 야자수를 완전히 없애야 한다는 의견에 동의하지 않는다”며 최근 산불 피해가 커진 주요 원인은 강풍과 밀집된 건물이라고 지적했다.
LA 지역 야자수 개체수는 최근 몇 년 동안 바구미와 곰팡이성 질병 피해로 꾸준히 줄고 있다. WP는 더 많이 적극적으로 심지 않는다면 야자수가 LA의 ‘스카이라인’에서 사라질 수도 있다고 전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