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전남 해남의 한 태양광 사업자는 발전소를 완공하고도 1년 넘게 전력을 팔지 못했다. 송전선로가 포화상태였기 때문이다. 같은 시기 서울의 한 데이터센터는 추가 전력 공급을 요청했지만, 계통 제약으로 거절당했다. 전력이 남는 지역과 부족한 지역이 동시에 존재하는 '불균형의 역설'이 우리 전력시스템의 현실이다.
전북의 재생에너지 전력자립도는 27%에 달하지만 서울은 0.1%에 불과하다. 수도권에는 데이터센터가 몰리고, 호남에는 태양광이 집중돼 있다. 현재 재생에너지 접속대기 용량은 9GW를 넘고, 신규 송전선로 건설은 주민 반대로 10년 이상이 소요된다. 정부가 2038년까지 재생에너지 115.5GW 확대를 목표로 하지만, 송전망 제약이 발목을 잡을 수 있다. 송전망 확충은 필수지만 단기간에 해결이 어렵기에, 병행할 보완책이 필요하다.
그 대안 중 하나로 주목받는 것이 '지자체 재생에너지 할당제'다. 각 지역이 일정 수준의 재생에너지 생산 또는 소비 책임을 지는 제도로, 단순히 재생에너지를 늘리려는 정책이 아니라 지역 간 전력 불균형을 완화하고 계통 부담을 줄이는 현실적 접근이다.
해외에서도 유사한 정책이 효과를 보이고 있다. 독일은 2022년 '풍력에너지 입지 의무화법'을 제정해 모든 주정부에 풍력발전 입지 지정 의무를 부과했다. 2032년까지 베를린 같은 도시주는 주 면적의 0.5%, 그 외 주는 약 2%를 지정해야 한다. 목표를 초과 달성하면 다른 주에 양도할 수 있지만, 미달성 시엔 기존의 까다로운 이격거리 규제가 무효화된다. 실제로 법 시행 후 2023년 신규 승인된 육상풍력은 전년 대비 74% 늘었다.
중국은 공급 중심에서 소비 중심으로 전환했다. 재생에너지 출력 제한이 2018년 100TWh를 넘어서자, 각 성에 재생에너지 소비 의무 비중을 할당했다. 2025년까지 전국 평균 약 33%(수력 제외 18%)를 목표로, 베이징 21.7%, 상하이 31%, 윈난성 70% 등으로 차등 적용했다. 각 성 인민정부는 재생에너지 발전 확대나 전력거래를 통해 목표를 이행하고, 초과 달성분은 인증서 형태로 거래할 수 있다. 이는 지역 간 책임을 분명히 하면서도 이행의 유연성을 확보한 사례다.
우리나라에서도 이 제도가 도입된다면 여러 긍정적 효과를 기대할 수 있다. 첫째, 지역에서 생산한 전력을 지역 내에서 소비하면 송전손실이 줄고, 대규모 송배전망 투자 부담이 완화된다. 둘째, 지자체가 재생에너지를 '남의 일'이 아닌 '우리 일'로 인식하게 된다. 한 지자체 관계자는 “지역에 재생에너지 목표가 없으니 주민이 반대하면 추진하지 않는다”고 말했지만, 할당제가 도입되면 이러한 소극행정도 개선될 수 있다. 셋째, 지자체별 할당량이 정해지면 지역별 설치 규모를 사전에 예측할 수 있어, 한국전력이 선제적으로 송배전망을 구축할 명확한 근거를 갖게 된다. 넷째, 장기적으로 전력손실 감소와 계통투자 절감은 전기요금 안정화에도 기여할 수 있다.
물론 한계도 있다. 서울 등 도시는 입지 여건이 제한적이다. 하지만 지자체 간 거래 메커니즘을 도입하면 일정 부분 보완이 가능하다. 의무량을 채우지 못한 지자체가 초과 달성한 지자체로부터 '크레딧'을 구매하는 방식으로, 결과적으로 재정이 지방으로 이전되는 균형발전 효과도 기대할 수 있다.
송전망 확충, 분산에너지 활성화, 전력시장 개선은 모두 함께 추진돼야 한다. 그 중에서도 지자체 재생에너지 할당제는 지역이 주도적으로 에너지 전환에 참여하고, 생산과 소비의 균형을 맞춰가는 의미 있는 대안이다. 모든 지역이 에너지 생산과 소비의 책임을 함께 지는 것, 그것이 지속가능한 에너지 시스템으로 가는 첫걸음이 될 것이다.
권필석 녹색에너지전략연구소 소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