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학야구가 점점 더 설 자리를 잃고 있다. 현장에선 존립이 위태롭다고 아우성친다. 경보음이 울리는데, 관심은 크지 않다. 이대로 무너져도 문제가 없다는 듯하다. 대학야구가 ‘그들만의 리그’로 전락해선 안 되는 이유가 있다면 무엇일까. 이 물음에 대한 해답을 찾아본다.
①‘고교생 홍창기’에게 대학이란 사다리가 없었다면
②그들만의 리그에서도 꿈이 자란다
③기본기와 센스, 지금 대학야구에 필요한 것들
②그들만의 리그에서도 꿈이 자란다
12월28일, 2024년의 마지막 토요일에도 성균관대 야구부 실내 훈련장(수원)에선 ‘딱’하는 타격음이 새어 나왔다. 기말고사를 마치고 방학을 맞은 학생들은 다시 ‘선수 모드’로 전환했다. 곧 4학년이 되는 선수들에게 특히 중요한 겨울이다. 외야수 조영준(22)도 힘차게 방망이를 돌리며 구슬땀을 흘렸다.
조영준은 야구부 주장인 동시에 학업 성적도 우수한 학생이다. 스포츠과학과 학생인 그는 2년 2학기 때 만점(4.5)에 가까운 학점(4.44)을 받았다. 대학 3년간 평균 학점이 3.98이라고 한다. 이연수 성균관대 야구부 감독도 운동과 학업에 두루 열정을 쏟는 그를 기특하게 생각한다.
조영준은 ‘주어진 환경’에서 선수로도, 학생으로도 최선을 다하려고 노력했다. 2년제와 4년제 등 학교마다 차이가 있지만, 조영준을 비롯한 대부분의 대학 선수들은 과거보다 학업의 중요성이 커진 환경에서 프로를 목표로 운동을 한다. 모자란 운동 시간은 이른 오전이든 늦은 밤이든 채워 넣는다.
그는 운동에서도, 학업에서도 저 멀리 앞서가는 프로 선수들과 일반 학생들을 따라잡아야 했다. 일단 시간표에 따라 강의를 듣고, 공강 시간을 활용해 기술 운동 등을 했다. 운동량이 부족하다 보니 야간 운동은 필수였다. 보통 오후 9시까지 웨이트 등 보강 운동을 했다. 이 감독은 “프로에 대한 목표 의식이 분명한 선수들이니까 밤까지 열심히 훈련하는 것”이라고 말했다.
조영준의 일과는 끝나지 않았다. 야간 운동이 끝난 뒤엔 다시 책상에 앉았다. 시험 기간엔 새벽 2~3시까지 공부한 뒤 잠이 들었다. 이런 열정으로 교직도 이수했다.
대학야구를 택한 거의 모든 선수의 최우선 목표는 프로 입단이다. 조영준도 그중 하나다. 그러나 현 시스템이 프로의 꿈을 이루는 데 적합하냐는 다른 문제다. 지난 3년간 누구보다 바삐 지낸 조영준은 “전문 운동선수로 성장하기에 힘든 부분이 있지만, 일단 운동과 공부 모두 잘해보려고 노력했다”고 설명했다.
대학야구 현장, 특히 4년제 대학 지도자들은 선수들의 기량을 끌어 올릴 절대적인 시간이 부족하다고 하소연한다. 이들이 시간의 중요성을 강조하는 이유는 최근 대학에 입학하는 선수들의 기량과도 관계가 있다.
프로야구 10개 구단은 2025 신인드래프트에서 94명의 고교 선수를 지명했다. 키가 크거나, 달리기가 빠르거나, 공을 강하게 던지기만 하면 가능성이 조금이라도 있어 보이는 고교 선수들은 대부분 프로 유니폼을 입었다. 한 구단 스카우트 담당자는 이를 ‘쌍끌이’라고 표현했다.
공부와 마찬가지로 18세 당시의 상태가 미래를 모두 결정하는 것은 아니다. 4년 동안 대학에서 어떤 신체적 변화가 올 지 모른다. 메이저리그는 2024년 여름 치른 신인 드래프트 1라운드 30명 중 10명만 고졸 선수였다.
하지만 프로에 입단해 학업없이 야구에만 매달리는 ‘고졸 드래프티’와 비교해 기본적인 운동량마저 부족하면 격차를 좁히기 어렵다. 지도자와 선수들은 학기 중 부족한 시간을 쪼개 훈련한다. 선수들의 기량이 정체된 건 아니다.
포수 강보현(22)은 “고교 시절엔 신체 조건이 평범하고, 장점이 특출나지 않았던 것 같다”며 “대학에 와서 학업을 병행하고 있지만, 최대한 시간을 내서 부족한 점을 채웠다. 고등학교 때보단 공격이든 수비든 나아진 것 같다”고 말했다.
투수 김영준(22)도 “고등학교 때는 구속이 130㎞ 중반 정도 나왔다. 대학에 와서 힘을 키우니까 140㎞ 중반대까지 올라왔다”며 “최고 구속 목표를 147㎞ 정도로 잡았다. 장점인 제구력을 더 살려서 좋은 평가를 받고 싶다”고 바랐다.
대학 선수라고 꿈의 크기가 작진 않다
한일장신대 야구부 주장 곽동효(23)는 대학야구를 ‘그들만의 리그’라고 부르는 평가에 대해 “자존심이 많이 상한다”고 말했다. 이 같은 평가를 뒤집고 싶다는 뜻이었다. 물금고 출신인 그는 김영웅(삼성)과 초, 중, 고를 함께 다녔다. 절친과 프로에서 재회할 날을 꿈꾸며 지난 3년간 쉼 없이 달렸다.
곽동효는 “고등학교 때와 달리 힘이 생겼고, 타격 메커니즘이 자리를 잡아가고 있다. 멘털도 더 좋아졌다”며 “4학년 때 부상 없이 타격을 더 보여주면 프로에 가서 (먼저 입단한) 동기들보다 더 잘할 수 있다는 생각으로 운동하고 있다”고 말했다.
투수 유종환(22)은 프로에서 마지막 아웃 카운트를 삼진으로 잡고 마운드를 내려오는 상상을 하며 웃었다. 이들은 4학년인 올해 자신이 가진 모든 것을 보여줘야 한다.
선수들이 짧게는 2년, 길게는 4년간 갈고닦은 기량을 구단, 야구팬, 미디어 등 외부에 잘 선보이는 것도 대학야구의 주요 과제 중 하나다.
대학야구는 지난해 U리그와 리그 왕중왕전, 전국대학야구선수권, 대통령기 등 4개의 대회를 치렀다. 이 중 수도권에서 치른 대회는 서울 목동구장에서 열린 U리그 왕중왕전밖에 없다. 나머지 대회는 횡성(강원), 보은(충북), 밀양(경남) 등 지방에서 치렀다.
반드시 수도권에서 대회를 하라는 법은 없지만, 가뜩이나 관심이 부족한데 접근성까지 떨어지는 것도 사실이다. 한 구단 스카우트 관계자는 “관찰이 필요한 선수는 어디든 찾아간다”면서도 “고교 경기와 일정이 겹치거나 먼 곳에서 경기하면 다니며 보기 애매한 게 사실”이라고 짚었다.
고등학교를 거쳐 대학에 온 선수들도 더 낮아진 관심도를 체감한다. 색안경을 쓰고 대학야구를 바라보는 시선도 느낀다. 김영준은 “대학 선수들은 어차피 운동 열심히 안 하고 놀지 않냐는 생각을 하는 사람들이 많은 것 같다”고 아쉬워했다.
선수들은 프로 스카우트뿐 아니라 더 많은 사람에게 자신의 기량을 선보이길 바란다. 강보현은 “지인이나 학부모님들이 주로 오신다. 3학년 때까진 대학야구가 관심을 받고 있다는 느낌을 받지 못한 것 같다”며 “보는 눈이 더 많아지면 연습을 하거나 시합을 할 때 더 자극될 것 같다”고 했다.
현장에선 대학야구 구성원들의 주도적인 역할을 강조하는 목소리가 나온다.
이선우 한일장신대 야구부 감독은 “사람들이 오지 않을 수밖에 없는 환경을 만들어 놓고 왜 안 오냐고 이야기할 순 없다”며 “서울에서 경기하고 싶다면 스스로 준비를 하는 게 먼저다. 올 수 있는 환경을 만드는 것이 중요하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