브뤼셀의 아르누보, 오르타의 명품주택들

2025-03-23

산업혁명이 완성된 1890년대 성숙한 유럽 시민사회는 그들을 위한 예술을 원했으나 여전히 예술은 귀족 시대의 낡은 형식이었다. 주요 유럽국가에는 이른바 ‘새로운 예술’ 운동이 동시다발적으로 출현했다. 영국의 예술공예운동, 독어권의 분리파, 불어권의 아르누보 등이다. 이들은 자연 속에서 아름다움의 근원을 찾았고, 근대의 합리적 기능과 중세의 장인적 완성도를 융합했다.

아르누보 미학을 구현한 최초의 건축은 벨기에 브뤼셀에서 출현했다. 1893년 빅터 오르타 (1861~1947)는 타셀의 주택(사진)을 설계했다. 여러 세대가 연립한 타운하우스 중 한 세대로 좁은 정면을 구부러진 곡선 철제 프레임과 곡면형 유리창으로 장식했다. 4개 층 내부를 위아래로 관통하는 계단실을 만들고 천창을 뚫어 모든 층으로 자연광을 유입했다. 유려하게 휘어진 난간과 계단, 나뭇가지 모양의 주철 기둥, 벽면과 바닥의 넝쿨 문양들이 통일되어 신비하고 우아한 공간을 이루었다. 수백 년간 지속해온 엄격하고 폐쇄적인 고전주의 형식을 일거에 해체한 새로운 공간이었다.

오르타가 브뤼셀에 설계한 타운하우스 중 솔베이 주택(1900), 반 에트벨데 주택(1901), 오르타 자택(1901)이 타셀 주택과 함께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으로 등재되었다. 이들 모두 개방적인 내부공간을 자연광으로 충만케 하고, 자연적 모티브로 열대우림이나 겨울식물원 같은 환상적인 공간을 창출했다. 오르타 자택은 현재 오르타 박물관으로 개방되었으며 마치 축소된 오페라하우스처럼 아르누보 공간의 끝판을 보여준다.

1914년 세계대전의 발발로 아르누보는 짧은 수명을 끝냈다. 전후 복구기에 값비싼 장인적 수공예는 ‘원시적인 사치품’으로 배제되었기 때문이다. 이후 세계는 규격화돼 대량 생산된 경제적 건축이 범람하게 되었다. 그러나 아르누보의 DNA는 럭셔리 디자인의 원천으로 여전히 살아있고, 그 결과로 명품 브랜드 또한 여전히 선망의 대상이 되었다.

김봉렬 건축가·한국예술종합합교 명예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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