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 미식가 200명이 반했다…"이건 소금이 아니라 약" [더 인터뷰-소금장인 부부]

2025-01-09

세계를 홀린 소금장인 임상호∙이정숙 부부

“전쟁터서 3개월 버티니 생존, 창업도 같다”

“전쟁터에서 3개월 버티면 살아남는다. 창업도 그렇다.” 소금 장인으로 거듭난 베트남전 ‘영웅’ 임상호(83·사진 오른쪽)씨. 부인 이정숙씨와 함께 국제미각협회 평가에서 은상을 탔다. 소금이 ‘운명’이었다는 이들, 그러나 길은 순탄치 않았다.

지난해 1월 벨기에 브뤼셀. 국제미각협회(ITI) 소속 셰프와 소믈리에 평가단 테이블 위에 한국에서 건너온 소금이 놓였다. 평가단은 내로라하는 미식 전문가 200여 명이다. 프랑스 대통령실 엘리제궁의 전속 셰프, 미쉐린 별을 획득한 레스토랑의 소믈리에, 영국의 스타 셰프 등이 포함됐다. 엄격한 블라인드 심사 결과, 이 한국 소금은 은상에 해당하는 별 두 개를 받았다. 같은 소금으로 만든 된장과 간장도 각각 은상, 동상을 받았다. 강원도 홍천군 북방면의 작은 공장에서 노부부가 소량 생산하는 ‘태초솔트’의 작은 반란이자 쾌거였다.

ITI의 인정을 받으며 국제 미각 경쟁력을 확인시킨 이 소금, 그런데 사기가 쉽지 않다. 소금을 830도 이상으로 가열해 녹였다가 만드는 용융(溶融)소금인데, 1940년대생 부부가 “정직이 생명”이라는 마음으로 직접 생산한다. 복잡한 공정상 1회 작업으로 얻는 양이 한정돼있다. ITI 관계자는 “한국에서도 삼다수·칠성사이다 등 유명한 제품들이 ITI에서 별을 받았지만, 태초솔트처럼 작은 가족기업이, 그것도 소금이라는 조미료로 상을 받은 건 의미가 크다”며 “특유의 용융 과정을 거쳐 짠맛은 덜한데 미네랄은 남아 감칠맛이 뛰어나다는 점이 높은 평가를 받았다”고 귀띔했다.

태초솔트를 꾸려가는 임상호(83)·이정숙(80)씨 부부는 인터뷰 요청을 몇 차례 거절했다. 그러다 수락의 문자를 새벽 3시42분에 기자에게 보냈다. 소금 생산을 위해 늦어도 새벽 4시엔 움직인다. 잠도 소금 가마 옆에 마련한 임시 거처에서 청한다. 소금은 이들 삶의 알파이자 오메가다.

“정직이 생명” 가열·굳히기 등 전과정 참여

창업은 1999년, 직업군인이었던 남편 임씨가 예편한 후 부부가 함께 우연히 시작했다. 임씨는 뼛속까지 군인이다. 육군사관학교를 졸업하고 베트남전에도 참전해 정부에서 ‘국가 영웅’ 칭호를 받았다. ‘국가 영웅’ 글자가 새겨진, 보훈부에서 선물 받은 외투를 지금도 가장 아낀다. 그런 그가 소금에 빠진 건 팔 할이 부인 이씨 덕이다.

이씨는 소금을 만나기 전까지 평범한 주부였다. 그런데 남편이 예편 후 우연히 소개받아온 소금 공장 얘기에 가슴이 뛰더라고 했다. “하다 보니 내 일이더라. 운명이더라.” 아예 대표도 이씨가 맡았다.

운명이었지만, 운명 개척의 길은 평탄하지 않았다. 염도는 낮추되 미네랄은 남긴 소금을 만들기 위한 적정 온도 찾기가 미션이었다. 가마 앞에서 쪼그려 앉아 밤을 지새운 게 수년. 전 재산을 쏟아부어 생산 시스템을 겨우 갖췄더니 이번엔 영업이 가시밭길이었다. 주문하고 사라지는 ‘먹튀’ 사기도 여러 번 당했다. 통장 잔고는 마이너스, 월세 10만원은 언감생심, 끼니까지 거르는 일상이었다.

사무실에 들어서니 이 대표가 따뜻한 물 한 잔을 기자에게 건넸다. 생수인 줄 알았더니 ‘솔트 티(salt tea)’였다. 첫맛은 짭조름한데 달큰함과 감칠맛이 치고 올라온다. 그 옆엔 사과와 소금 종지가 놓였다. 이 대표는 “과일에 소금을 살짝 넣으면 단맛이 더 강해진다”며 “좋은 염분을 적절히 섭취하면 건강에도 좋다”고 했다. 책장엔 소금 관련 논문과 책이 가득했다.

소금 전도사가 된 까닭은.

▶임상호(이하 임)=“일밖에 모르다가 예편한 게 58세였다. 은퇴는 하고 싶지 않고, 방황을 좀 하다 우연히 이 소금을 접하고 무릎을 쳤다. 내가 하는 일의 가치가 세상을 이롭게 했으면 좋겠다고 항상 생각했는데, 내게 소금이 답으로 찾아왔다는 느낌이 강하게 오더라.”

창업이 쉽진 않았을 텐데.

▶임=“안 해 본 게 없다. 중요한 걸 하나만 꼽자면, 버티는 거더라. 그냥 버티는 건 아니다. 준비를 철저히 하고 스스로를 계속 점검하면서, 성장하면서 버티는 거다.”

소금 전문가도 아니었는데.

▶임=“군인으로 평생 살았다. 하지만 소금 일을 하면서 느낀 게 있다. 젊을 때부터 특정 분야를 전공한 전문가가 아니더라도, 그 분야에 강하게 이끌리고, 비범하게 도전을 이뤄낼 수 있다는 느낌이 온다면, 그리고 끈기가 있다면 도전을 해도 좋다는 거다. 실패는 피할 수 없다. 그것도 여러 번 온다. 우리도 10년 이상 죽을 고생을 했고, 도전 25년 차인 지금도 솔직히 쉽진 않다. 하지만 그냥 ‘하고 싶다’ 가 아니라 ‘해야만 한다’라는 열망과 확신이 있다면, 된다.”

군인 시절은 어땠나.

▶임=“1967년 월남(베트남)에서 2년 간 죽을 고비를 여러 차례 넘겼다. 낫짱(나트랑)에선 미군 헬기로 적군이 포진한 곳에 잠입해 상황을 조사하라는 작전에 투입됐다. 위험천만한 교전의 기억이 지금도 생생하다. 전쟁터에서도 처음 3개월을 버티면 되더라. 언제 죽을지 모르는 곳이 전쟁터이지만, 그곳에서도 일정 기간을 버티면 생존할 수 있다. 창업도 비슷하다.”

경제적 어려움은 어떻게 버텼나.

▶이정숙 대표 (이하 이)=“소금을 포기할 생각은 아예 선택지에 없었다. 그저 절약에 절약을 했다. 어린 시절 겪었던 6·25 전쟁보다 더 힘들었다. 기름값 아끼느라 주유를 1~2만원 씩만 했는데 하필 아들 결혼식 날, 기름이 딱 떨어졌다. 한복 차림으로 페트병을 들고 주유소로 걸어가며 몸도 마음도 참 추웠다. 사기를 당해 소금 가마를 땔 가스비조차 댈 수 없었을 때도 있었다. 그렇게 한계인가 싶으면 그때마다 귀인들이 나타나 도움을 주더라.”

지성이면 감천이다. 소금 사업은 조금씩 궤도에 올랐다. 판로 개척을 위해 한 달 기름값을 100만원 쓴 적도 있다. 과천 경마장부터 부산 전시장까지 어디든 갔다. 경기도 우수 제품인 ‘으뜸이’로 선정됐고, 한국에 출장 온 ITI 관계자의 눈에 띄었다.

국제미각협회 은상 빛난 ‘태초솔트’

전세계 미식가 200여명이 반한 맛

830도 가열, 손수 만든 ‘용융소금’

염도 낮고, 미네랄 풍부 “소금 아닌 약”

“소금 적은게 저염식? 좋은소금을 먹는 것”

‘세상의 빛과 소금’이란 말처럼, 미식에서도 기본은 소금이다. “요리를 바꿀 수 있는 단 하나의 재료가 있다면 그건 소금이다. 제대로 된 소금을 넣은 음식과 그렇지 않은 음식 사이엔 차이가 엄청나다”는 말을 남긴 전설의 천재 셰프, 페란 아드리아처럼, 이 부부 역시 강력한 소금 예찬론자다.

저염식이 건강식 아닌가.

▶이=“뭐든 과하면 좋지 않듯, 소금도 마찬가지다. 하지만 올바른 저염식은 소금을 무작정 줄이는 게 아니다. 좋은 저염 소금을 적정량 넣는 것이 중요하다. 고염 소금은 적게 넣어도 고염식이다.”

왜 용융 소금을 택했나.

▶이=“천연 천일염 속 80여 가지의 미네랄을 지키면서 불순물은 제거할 수 있어서다. 열을 가하면 생기는 다이옥신이라는 발암물질도 760도가 넘으면 사라진다. 소금이 녹는 온도는 830도이니 용융 소금이면 괜찮다. 적정온도를 찾기 위해 밤을 새워가며 연구를 거듭했다.”

성분은 어떤가.

▶이=“식약처에 찾아가서 성분 분석을 의뢰했다. 대표적인 것만 언급하자면 칼륨은 1㎏ 당 5307㎎, 칼슘은 2798㎎ 이라는 결과가 나왔다.”

‘소금 박사’로 불리는 한상문 전 을지대 보건환경안전학과 교수에게 전화를 걸었다. 그는 “함량 분석 결과만 보면 소금이 아니라 약에 가깝다”며 “소금은 무조건 배척할 게 아니라 좋은 소금을 찾아 현명하게 섭취하는 게 중요하다”고 말했다.

부부의 거처에서 가장 넓은 면적을 차지하는 것은 소금 가마가 있는 곳이다. 전남 신안군의 천일염을 가져다, 특별 제작한 내열 세라믹통에 넣은 뒤 가마 안에 넣고 830도 이상으로 녹여냈다가 겨울엔 1주일, 여름엔 열흘 이상 식힌다. 암석처럼 굳은 소금을 꺼내어 박달나무 방망이로 두드려 고운 입자로 만드는 과정까지 모든 걸 직접 한다.

“소금 가마를 열 힘이 남아있는 한 계속 이 일을 할 것이다”(이 대표) “100살이 넘어서도 소금을 만들고 싶다”(임씨), 두 사람은 정말 소금에 진심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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