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고등학교에서 행렬 더하기만 배운다. 곱하기도 못 하고 역행렬 개념도 모른다.”
지난 1일 서울 강남구 한국과학기술회관에서 열린 기초과학 학회협의체 교육정책포럼에서 나온 대학교수의 성토다. 이 자리에서 이윤희 충남대 수학과 교수는 “학교가 공부 양을 덜어주고 있지만 채우는 행위는 지금까지 아무도 하지 않는다”며 “배워야 할 걸 배우지 않는다는 취지에서 보면 문제가 많다”고 꼬집었다. 행렬은 2진법을 사용하는 컴퓨터에 입체적인 개념을 불어넣는 수학적 장치다. 국가적 관심사인 인공지능(AI), 자율주행차 연구도 행렬부터 시작한다. 전공 교수 입장에서 보면 높은 경쟁률을 뚫고 입학한 신입생이 행렬을 큐브 장난감처럼 다룰 것이라 기대했는데, 첫 수업에서 눈만 깜빡거리고 있으니 기가 찰 노릇이란다.
과학자들이 고교 교육에 보낸 경고는 이번이 처음은 아니다. 지난 10월에도 한국과학교육학회 등 7개 과학교육 학술단체 연합은 “(이대로라면) 학생들의 과학 지식수준이 떨어질 것”이라는 우려를 담은 공동 성명을 냈다. 이들의 걱정을 더한 건 올해 고1부터 전면 도입된 고교학점제다. 고교학점제 시행에 앞서 교육부와 시·도교육청은 “미적분Ⅱ·기하뿐 아니라 학교에 따라서는 (대학 과정에 근접한) 고급대수와 고급미적분도 배울 기회가 열린다”(지난해 1월)고 홍보했다.

정말 그렇게 될까. 고교학점제를 처음 겪은 현재 고1은 3개월 뒤인 고2 과정부터 본격적으로 선택 과목을 수강하게 된다. 하지만 아직도 어느 고교에서 훌륭한 강사를 초빙해 AI 시대를 대비한 고급 강의를 열었다는 소식, 그런 강의에 학생이 몰린다는 얘기는 들리지 않는다. 대신 학부모 사이엔 ‘어떤 수업을 들어야 내신을 올릴 수 있을지’에 대한 소문만 파다하다.
자연계 전공을 지원하고도 ‘입시공학’에 휘둘려 학교에서 배운 과학탐구 대신 사회탐구를 선택하는 수능의 ‘사탐런’ 현상은 이런 불안을 더욱 드높인다. 지금 고1이 고3이 돼 치르는 2028학년도 수능에는 통합과학 도입으로 심화 과목을 아예 선택할 수 없다. 1일 포럼에서 권홍진 송양고 교사는 “학년이 올라갈수록 깊이 있는 과학을 공부해야 하는데 통합과학으로 수능을 보면 3학년 때 다시 쉬운 내용으로 돌아간다”고 우려했다.
권석준 성균관대 고분자공학부 교수는 요즘 AI·반도체와 연계된 교육 과정이 활발한 중국이 2010년부터 수학·물리학 등 기초과학 연구를 강조했다는 점을 소개했다. 이어 “기초과학 뿌리를 흔든 교육의 결과가 어떨지 불안하다”고 말했다. 교육과정을 짜는 당국이 이런 기초과학 교육의 공백을 메꿀 수 있을까. 분명한 건 기초가 사라진 한국 교육의 해법을 구할 시간이 그리 많지 않다는 점이다.
![3세 딸에게 “사과 2분의1 줄게”…MIT 박사로 키운 교수의 양육 [요즘 수학 로드맵②]](https://pds.joongang.co.kr/news/component/htmlphoto_mmdata/202512/01/332cc0e9-911c-4a71-872c-617bbae2c1e7.jpg)
![[교육현장에서] 디지털 시민성, 빛나는 화면 속 세상을 살아내기](https://www.kgnews.co.kr/data/photos/20251249/art_17645489274803_d19d28.jpg)
![[에듀플러스][제186회 KERIS 디지털교육 포럼]“기업이 인정해야 산다…디지털 배지, 신뢰 확보 절실”](https://img.etnews.com/news/article/2025/12/02/news-p.v1.20251202.c9076c45f4674be8b5e7dc6250c5f7e4_P1.jpg)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