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시, 리더란 무엇인가
모식 템킨 지음
왕수민 옮김
어크로스
난세가 영웅을 만든다는 말이 있다. 그 정도까지는 아니라도, 위기가 닥치면 리더의 중요성이 뚜렷해지는 것은 당연지사. 이 책에 나오는 프랭클린 D 루스벨트가 좋은 예다. 1932년 미국 대선에 처음 출마한 그의 압승은 실업률이 최고 25%까지 치솟은 대공황의 고통과 전임 대통령 허버트 후버의 무능에 힘입은 듯 보였다.
한데 그는 취임 100일 안에 엄청난 정책들을 쏟아내기 시작했고, 나중에는 최저임금제 등 주요 정책을 무력화하려는 사법부에 맞서는 것도 서슴지 않았다. 미국 역사상 전무후무한 4선 대통령이라는 기록은 그의 업적과 인기를 단적으로 짐작하게 한다.
지은이는 경제적 측면으로만 보면 뉴딜정책이 소기의 목적 달성, 즉 미국을 불황에서 구출한 건 아니라고 보면서도 "사람들에게 희망을 불어넣고, 사기와 자긍심을 다시 심어주고, 공익을 가장 우선시하는 리더십을 보여준 것"을 루스벨트의 중요한 성취로 꼽는다. 자기를 희생한 성자는 아니라도, 대공황과 나치즘에 맞선 투사이자, 자신이 속한 상층계급과 엘리트층의 제도에 맞선 반란자였다고 그를 평한다.
반면 후버는 호평 속에 대통령이 됐지만 대공황이라는 위기를 제대로 파악하지도, 대처하지도 못했다. 당시 미국인들은 대공황을 '후버 공황'이라고 불렀고, 그의 이름을 딴 '후버빌'은 판자촌을 가리키는 말이 됐다. 지은이는 그가 사람들의 고통을 느끼지 못하는 듯 보였다고도 지적한다. 특히 참전군인들이 보조금의 조기 지원을 요구하며 시위를 벌이자, 탱크와 병력을 동원해 농성장을 부수고 불태운 일은 민심의 큰 공분을 샀다.
'다시, 리더란 무엇인가'라는 시의적절한 우리말 제목을 내세운 이 책의 원제는 '투사들, 반란자들, 그리고 성자들'(Warriors, Rebels, and Saints: The Art of Leadership from Machiavelli to Malcolm X). 미국의 역사학자인 지은이가 하버드 케네디스쿨에서 '역사 속의 리더와 리더십'을 여러 해 강의한 경험을 바탕으로 썼다. 지은이는 리더가 역사를 만드는 것일까, 역사가 리더를 만드는 것일까부터 질문한다. 그에 따르면 전자는 마키아벨리, 후자는 마르크스의 시각이다.
책은 양자택일의 답을 주는 대신 20세기 여러 리더의 성공과 실패를 상세한 역사적 맥락과 함께 조명한다. 권력 없는 리더, 즉 식민 지배나 독재와 억압을 당하면서 이에 맞선 이들에도 초점을 맞춘다. 중요한 변화를 이끈 것이 권력자만은 아니라는 시각이다.
반대로 권력이 있었지만 "역사를 만들기는커녕 그 추진력에 맥없이 휩쓸리고" 말았던 이들도 있다. 제2차 세계대전 당시 진주만 공습을 결정한 일본의 리더들, 원자폭탄 투하를 결정한 미국의 리더들을 지은이는 이런 경우로 본다. 이를 비롯해 책에는 유명한 간디부터 나이지리아의 낯선 대중음악인까지 다양한 리더가 등장한다. 미국 여성참정권 운동의 경우처럼 두 리더가 타협과 투쟁이라는 각기 다른 방법론을 펼친 의미도 되짚는다. 이런 역사는 리더, 특히 정치 지도자나 사회 운동가가 처할 수 있는 여러 상황에 대한 사고실험처럼 다가오기도 한다.
어떻게 훌륭한 리더를 키울 수 있고, 알아볼 수 있는지 일목요연한 답은 이 책은 물론 세상 어떤 책에서도 찾기 힘들 터. 그럼에도 지은이가 반복해서 쓰는 말이 있다. 바로 '공공의 이익'이다. 미국의 참담한 실패로 끝난 베트남전 당시 국방장관 맥나마라는 무능하기는커녕 "조숙한 천재"이자 기업에서도 뚜렷한 성취를 이룬 인재였다. 지은이는 그를 두고 "훌륭한 공직자란 권력자에게 봉사하는 사람"이 아니라 "언제나 국민을 위해 봉사하는 사람"이라고 일침을 가한다.
지은이는 이렇게도 썼다. "진정한 위기가 닥치면 우리는 기존 리더와 잠재적 리더 중 누가 우리에게 도움을 주고 누구는 우리의 신뢰를 남용할지, 또 누가 골칫거리와 고통을 해결해주고 또 누구는 그걸 악용할지, 또 누가 대중의 공분을 동력으로 삼아 공익을 추구하고 누구는 사리를 챙길지를 결정해야 하는 상황에 놓인다". 이 책이 소환한 역사, 그리고 성공과 실패의 리더들은 그런 판단에 교사이자 때로는 반면교사로 유용해 보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