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970년 가을, 출판사 일조각에서 한 잡지가 출간됐다. 당시 중앙정보부에 의한 해직 기자 김병익 문학평론가와 그의 동료 평론가 김현(1942~1990)·김치수(1940~2014)가 낸 계간지 『문학과지성』 얘기다.
잡지 출간으로 한 배를 탄 이들은 1971년 독일 유학에서 돌아온 김주연 문학평론가까지 넷이 모여 잡지를 정기 발행할 출판사를 준비한다. 창립일은 1975년 12월 12일. 올해 50번째 생일을 맞은 출판사 문학과지성사(이하 문지)가 역사의 첫 페이지를 넘긴 날이다.

1970년대 한국의 화두는 근대화였다. 문인들은 변화에 앞서 문학의 역할을 살필 공론장을 필요로 했다. 문지는 1966년 1월 계간 『창작과 비평』을 내며 출범한 출판사 창비(옛 창작과비평사)와 함께 그 공간을 넓혀냈다.
“4·19 세대의 문학 동인들이 새 시대와 사회에 맞는 문제제기를 하고, 동시대 담론을 개발하며 목소리를 낸 시기였다.” 『문학과사회』(『문학과지성』의 복간 후 이름) 편집동인으로 1999년부터 문지와의 인연을 쌓은 이광호 문학과지성사 대표는 문지 창립 당시를 이렇게 정의한다. 이 시기를 창립자들의 성씨를 따 ‘4김 시대’ 혹은 ‘4K 시대’라고도 부른다.
문지가 발굴하고 출간한 문학의 면면은 분명 ‘사회’를 다뤘다. 남북한 이념 문제를 적극적으로 꺼낸 최인훈의 『광장/구운몽』(1976)이 출간됐고, 그 후 문지가 내놓은 조세희의 『난장이가 쏘아올린 작은 공』(1978) 역시 산업화 시대 소외된 이들의 고통을 담았다.

지난해 600호 출간을 맞은 ‘문지 시인선’ 역시 이 시기에 첫선을 보였다. 정현종·마종기·이성복·황지우·최승자·김혜순·기형도 등 한국 문학사를 상징하는 이들의 시집이 ‘문지 시인선’으로 나왔다.
시간이 지난 후의 일이지만 노벨문학상을 받은 한강 작가 역시 등단 직전 해인 1993년 『문학과사회』에서 시 다섯 편을 발표했고, 데뷔 20년 만에 펴낸 유일한 시집 『서랍에 저녁을 넣어 두었다』(2013)를 ‘문지 시인선’으로 냈다.

신군부에 의해 1980년 『문학과지성』이 폐간되고, 1988년 『문학과사회』로 복간하는 일도 있었다. 그러나 “문학의 입장에서 (중략) 사회변혁의 전망을 획득하고자”(『문학과사회』 창간호 일부) 하는 의지는 꾸준히 이어졌다.
2016년부터 『문학과사회』 혁신호로 함께 낸 별책 ‘하이픈’이 ‘페미니즘적-비평적’(2016년 겨울호), ‘코로나-이펙트’(2020년 가을호), ‘탄핵-일지’(2025년 봄호) 등을 제목으로 내걸며 문인들의 작품과 비평을 통해 담론화를 시도한 것은 그 연장선에 있다.

이광호 대표는 “50년이나 한 출판사가 지속됐다는 건 개인의 노력이라기보다는 여러 독자·작가·직원들의 노력”이라고 소회했다. 문지는 50년의 시간 동안 3500여종의 책을 냈다. 이중 한국문학만 2291종이다.
이 대표에게 현재 문지의 역할을 묻자 “이제 특정 세대를 대변한다기보단 다변화된 시대에 맞는 문화적 역할이 뭘지 생각한다”며 “문학과 지성이 (이 시대에) 어떤 방식으로 존재할 수 있는지, 이런 고민을 담아내기 위해 노력하는 상황”이라고 했다. 한국 문학이 설 자리가 점점 좁아지는 시대에 “좋은 책을 내는 것만큼, 이미 나온 좋은 책을 잘 알리기 위한 방법”도 계속 찾아가고 있다.
문지는 창립 50주년을 맞아 책 출간을 준비 중이다. 한국 문학사를 ‘나’ ‘젠더’ ‘사랑’ ‘폭력’이란 네 개의 키워드로 정리한 『동시대 문학사』 시리즈다. 이광호 대표도 필자 중 한 명으로 참여한다.
창립기념일인 12일 오후엔 서울 중구 프레스센터에서 기념식을 열어 문지문학상 등 시상식과 감사패 증정, 시 낭독 등을 열 예정이다. 창립자인 김병익·김주연 평론가의 회고는 물론 한강·임철우·편혜영 작가 등의 영상 축하 메시지, 김화영 문학평론가와 이원 시인, 이장욱 작가의 축사 등이 이어질 예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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