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6년 전 오늘, 독살된 고종 장례식이 있었던 날

2025-03-02

[우리문화신문=김영조 푸른솔겨레문화연구소장] 106년 전 오늘(3월 3일)은 고종황제의 장례식이 있던 날입니다. “태왕 전하가 덕수궁(德壽宮) 함녕전(咸寧殿)에서 승하하였다.” 이는 《순종실록부록》 순종 12년(1919년) 1월 21일 기록입니다. 공식적인 발표로는 뇌일혈 또는 심장마비로 인한 자연사였지만, 건강하던 고종의 갑작스러운 죽음은 독살설로 번졌습니다. 고종황제가 식혜를 마신 지 30분도 안 되어 심한 경련을 일으키다가 죽어갔으며, 고종황제의 팔다리가 1~2일 만에 엄청나게 부어올라서, 사람들이 황제의 통 넓은 한복 바지를 벗기기 위해 바지를 찢어야만 했다는 것에 미루어 보면 고종의 독살은 분명한 사실이지요.

그런데 고종의 장례는 황제의 국장이 아닌 대행태왕(죽은 지 얼마 안 되어 시호가 아직 없는 전왕을 높여 부르는 말)의 장례로 격하되었으며, 조선의 전통 장례가 아닌 일본 황족의 장례였고 행렬에만 조선 관례대로 하는 왜곡된 모습이었습니다. 국장 절차를 기록한 《고종태황제어장주감의궤(高宗太皇帝御葬主監儀軌)》와 국장에서 의장 행렬을 담당한 민간단체가 남긴 《덕수궁인산봉도회등록(德壽宮因山奉悼會謄錄)》을 보면 장례가 일본식으로 진행돼 절차가 축소되고 변형됐다는 사실이 확인됩니다.

이렇게 고종황제의 독살설을 전해 들은 온 나라의 백성은 모두 들고일어나서 3ㆍ1만세운동을 일으킨 것입니다. 원래 민족지도자들은 고종 장례식에 만세운동을 펼치고자 했다가 장례식을 피해 이틀 일찍 만세운동을 시작했습니다. 지금처럼 사회관계망 서비스(SNS)가 없었던 때문으로 ‘독립선언문’을 일일이 필사해서 지방으로 전했기에 온 나라가 3월부터 4월까지 만세운동에 동참하게 된 것입니다. 이 3ㆍ1만세운동은 조선총독부의 공식기록으로만 참여자가 106여만 명이었고, 죽은 사람이 7,509명, 구속된 사람이 4만 7천여 명이었다고 합니다. 또 이 3ㆍ1만세운동은 상해의 대한민국임시정부를 태동할 수 있게 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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