황혼육아, 해야 할까 말아야 할까. 인생 2막에 들어서며 고민하는 고령층이 많다. 맞벌이에 정신없는 자녀들을 생각하면 외면할 수 없지만 건강이 예전치 않기 때문이다. 건강뿐 아니라 자식농사에서 겨우 벗어났는데 또 손주농사까지 떠 안아야 하는 게 큰 부담이다. 금쪽같은 손주지만 손주가 예쁜 것과 내 손으로 기르는 것은 별개다. 옛말에 ‘아이를 보느니 차라리 논에 가서 일하는 게 낫다’는 말도 있지 않은가.
그러나 현실은 현실. 어쩔 수 없이 할마(할머니 엄마) 할빠(할아버지 아빠)가 손자녀를 돌보는 황혼육아가 대세다. 2024년 고용노동부의 ‘근로자 모성보호제도 확대에 관한 연구’가 이를 뒷받침한다. 연구에 따르면 자녀 양육에 아이의 조부모로부터 도움을 받고 있다는 응답이 48.8%에 달했다. 외조부모가 32.8%, 친조부모가 16.0%로 나타났다.
그러면 황혼육아의 빛과 그림자는 뭘까. 빛은 손주를 보는 즐거움과 보람, 가족의 화목과 경제적 도움 등을 꼽을 수 있다. 육아가 자존감과 결속력을 향상시킨다는 연구도 있다. 반면 그림자는 신체적인 한계, 남은 인생의 삶의 방향과 가치, 관계 속의 갈등과 서운함 등을 든다. 가장 힘든 것은 뭐니뭐니 해도 신체적인 한계다. 노후에 손주를 돌보다 보면 손목건초염, 무릎관절염이 빨리 진행되고 우울감과 스트레스 등 정신건강도 취약해진다. 또 수면을 제대로 취하지 못하는 경우도 흔하다.
우리보다 먼저 고령화가 진행된 일본의 경우는 어떨까. 일본에서도 ‘손주 피로(孫疲れ)’라는 말이 있을 정도로, 황혼육아가 고령자들의 행복감을 저해한다고 보고 있다. 재미있는 것은 친손주인지 외손주인지에 따라 조부모 행복도가 달라진다는 점이다. 조사에 따르면 외손주 돌봄 여성은 친손주 돌봄 여성에 비해 행복도가 13% 가량 낮았다. 즉 딸이 낳은 아이들을 돌볼 때 조부모의 스트레스는 더 커졌다. 딸의 입장에서 보면 심적으로 부담이 되는 시어머니보다는 친정 어머니에게 육아를 부탁하기가 쉽다. 그런데 부모 입장에선 외손주를 돌보는 게 더 힘들다는 것이다.
이러한 황혼육아는 사회적으로도 큰 문제다. 그래서 최근에는 지자체들이 황혼육아 부담을 줄이기 위해 나섰다. 손주돌봄수당을 신설하거나 조부모육아휴직제도를 도입하고 있다. 손주돌봄수당은 저출생 문제 해결과 노인 일자리 창출, 일·가정 양립을 지원하는 실질적인 정책으로 평가받으며 전국 지자체로 확산되는 추세다. 맞벌이 부부를 대신해 손주를 돌보는 조부모에게 매달 20만~30만원(아동 1명 기준)의 현금을 지급하는 것이다. 광주를 비롯해 서울, 경기, 경남, 충남 등에서 이를 도입해 시행하고 있다. 또 정부에서는 일하는 조부모의 육아휴직제를 검토하고 있다. 이미 스웨덴과 호주는 조부모 휴가(grandparent leave)를 입법화했고 일본에서도 기업과 지자체에서 육아 휴가제도를 운용하고 있다.
‘손주는 오면 반갑고 가면 더 반갑다’는 우수갯소리가 있다. 반갑긴 하지만 황혼육아가 매우 힘들기 때문이다. 국가적으로 다양한 조부모의 양육지원이 있었으면 한다. (조상진 논설고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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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상진 chosj@jjan.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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