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지난 19일 인천 연수구 옛 송도유원지 인근 중고차 수출단지. 50만㎡(약 15만평) 흙바닥에 번호판 없는 중고차가 빽빽하게 주차돼 있었다. 전국 중고차 수출 업체(4854개)의 절반 가량인 2320개 업체가 2만여 대의 중고차를 전시하는 현장이다. 구매가 확정된 차량에는 보드마커로 ‘Sold Out(판매 완료)’이라는 글씨가 쓰여있었다. 한 번에 최대 5대를 실을 수 있는 자동차 운반 트레일러는 흙먼지를 일으키면서 쉴 새 없이 판매된 차량을 부두로 옮기고 있었다.
‘K중고차’ 열풍에 인천 중고차 수출단지가 활기를 띠고 있다. 한국무역협회에 따르면, 지난달 국내 중고차 수출액은 전년 동기(3억9069만 달러) 대비 94.8% 늘어난 7억6140만 달러(약 1조원)로 역대 월간 최대치를 기록했다. 13년 경력의 김문선 선무역 대표는 “튀르키예·키르기스스탄 등 중앙아시아 바이어들이 러시아 판매용 차를 사 가는데, 최근엔 신차급 차량 선호가 높다”라며 “2021~2022년식 무사고 스포츠유틸리티차(SUV)는 3만~4만 달러(4200만~5500만원)에 팔릴 정도라 매출에 큰 도움이 된다”라고 말했다.

올해 중동 지역 판매가 늘어난 것도 수출 증가에 영향을 미쳤다. 지난해 12월 국제 무역을 통제하던 시리아의 바샤르 알아사드 정권이 몰락하면서 교역이 활발해졌기 때문이다, 지난해 시리아 중고차 판매량은 144대였지만, 올해는 지난달에만 3084대가 판매됐다. 인근의 요르단(4844대)·아랍에미리트(6121대)의 지난달 판매량도 전년 동월 대비 각각 263%, 127% 늘었다.
일부 수출업자 사이에서는 경쟁 심화로 인해 불안해하는 분위기도 감지된다. 화물 운송을 맡아오던 외국인 바이어들이 국내에 직접 수출 업체를 세우고 중고차 매입까지 나서고 있기 때문이다. 9년 경력의 중고차 수출업자 박모(38)씨는 “안성·시흥 등 경기도 중고차 경매 현장에 가면 리비아·요르단 같은 중동지역 외국인들이 많이 보일 정도로 매입 경쟁이 심해졌다”라며 “경쟁에서 밀린 사업자는 외국계 업체에서 매입·판매를 대행하는 ‘나까마(브로커)’로 일하게 될지도 모른다”라고 말했다.

국내 중고차 수출 규모가 커지면서 중고차 수출업을 제도화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나온다. 중고차 수출업은 자동차 매매업에 해당하지 않아 별도 인허가나 사업자 등록 절차가 없는 자유업종이다. 이러다 보니 종사자 자격, 수수료 체계, 성능 점검 기준 등 규정이 없어 품질이 저하된다는 지적이 꾸준히 제기됐다. 허종식 더불어민주당 의원(인천 동구미추홀구갑)은 지난달 중고차 수출업 등록제 전환과 중고차 수출업 복합단지 개발에 관한 내용을 담은 자동차관리법 개정안을 대표발의하기도 했다.
하지만 중고차 수출업계의 의견은 엇갈린다. 일정 규모 이상의 업체들은 제도화와 산업 육성이 필요하다고 말하지만, 영세 업체는 등록 요건을 맞추지 못할까 우려한다. 박영화 한국중고차수출조합 회장은 “연 매출이 수백억대의 중견 업체도 있지만, 수억원에서 수천만원 미만의 매출을 내는 영세 업체도 상당수”라며 “산업 경쟁력을 강화하기 위한 인프라 구축 등이 필요하지만, 피해를 보는 영세 업체가 없도록 신중한 접근이 필요하다”라고 말했다.

신현도 한국중고차유통연구소장은“시설·품질 기준이 없기 때문에 화재 등 외부 사고에 취약하고, 품질과 가격 결정 방식도 모두 제각각”이라며 “제도화 할 경우 등록 기준을 맞추지 못하는 개인 사업자들은 여럿이 모여 함께 법인을 설립하는 등 규모의 경제를 이뤄 더 효율적으로 사업을 이어갈 수도 있다”라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