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0세의 행복

청천벽력 같은 소리였다. 산전수전 다 겪은 100세 노인에게도 암은 무서운 존재다. 지난해 봄 윤공희 광주대교구 대주교(이하 경칭 생략)가 암 판정을 받던 날, 그는 있는 힘껏 덤덤한 척했다. 파노라마처럼 젊은 날들이 스쳤다. 열아홉부터 40년 넘게 피웠던 담배 때문일까….
“수술도 약물·항암 치료도 안 받겠습니다.” 하지만 윤공희는 단호했다. 곁을 오래 지켰던 가족 같은 엔다(71) 수녀는 그의 숨이 평소보다 가빠질 때마다 남몰래 불안에 휩싸였다. 이어 죄책감이 따라왔다. 이제와 고백하건대, 그와의 이별을 준비했던 것 같다고 했다.
그런데 1년이 훌쩍 지나 101세가 된 윤공희는 암에 굴복당한 모습이 아니었다. “오히려 더 건강해지셨어요.” 지난달 2일 광주가톨릭대 주교관에서 사람들은 입 모아 말했다. 실제로 재작년 백수연(白壽宴) 영상 속 모습보다 피부도 더 맑고 몸집도 더 커 보였다.

“주교님, 삶은 무엇일까요?”
“삶은… 계란이다! 와하하!”
인터뷰 중 그는 취재진을 웃기려고 호시탐탐 기회를 엿봤다. 그 모습이 장난기 많고 재기발랄한 소년 같았다.
쉴 새 없이 뭔가를 이야기하며 노래도 불렀다. 애창곡인 가수 은희의 ‘꽃반지 끼고’부터 장윤정의 ‘어머나’까지 메들리 리스트도 다양했다.
윤공희는 볼록한 뱃살을 부여잡기도 하고 무릎을 탁탁 쳐가며 웃었다. 이 모든 건 어쩌면 암 병동에서라면 불가능한 일일지도 모른다.
40여 년 담배를 피운 사람이 어떻게 100세 넘게 살 수 있나. 암에 걸리고도 어떻게 이렇게 얼굴이 빛날까. 결국 기도의 힘일까?
〈100세의 행복〉 3화엔 이런 질문에 대한 답이 담겼다. 윤공희의 저속노화 실천법에 힌트가 있다. 성직자처럼 절제하는 삶을 살지 않아도, 의지하는 신이 없더라도 낙담할 필요가 없다. 취재해보니, 비결은 누구나 할 수 있는 ‘세속적인 것’이었다.
목차
📌항암제보다 강력한 것
📌마음을 비워라? 건강한 욕심도 있다
📌되로 주고 말로 받는다, 절대 해선 안 되는 것
📌4개 국어 가능…젊은 두뇌 지키는 법
※〈100세의 행복〉 다른 이야기를 보려면 아래 링크를 클릭하세요
①매일 이것에 밥 말아먹는다…105세 김형석의 ‘최애 반찬’
②100세에 히말라야 떠난다…한눈 잃은 장인의 강철 멘탈
항암제보다 강력한 이것
노화는 몸과 마음이 굳는 과정이다. 늙으면 신체의 항상성이 떨어지고 혈관·근육이 굳는다. 사고도 경색된다. “요즘 애들 이상해”라는 말이 습관적으로 나온다면, 정신이 늙기 시작한 것이다.
윤공희는 평생 말랑말랑한 삶을 살려고 했다. 고난과 시련이 닥쳤을 때도 부서지지 않고 삶을 다잡게 한 건 사랑과 웃음과 유머였다.
101세 대주교의 집무실 책상 위 풍경은 이를 단번에 이해하게 했다. 책상엔 직접 가위로 오리고 붙인 종이가 한가득 쌓여 있었다. 성경책도 아니고, 기도문도 아니었다. 다름 아닌 신문지였다.
잠깐, ‘매일 아침 신문을 읽어라’ 같은 교과서 같은 얘기가 아니다. 그가 스크랩한 신문은 한 인물의 이야기였다. 기사 곳곳에 펜으로 밑줄을 긋고, 얼굴 사진을 오려 분홍색 꽃 모양 스티커도 함께 붙여 놨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