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상곤 쇼크’를 되돌아보며

2024-12-30

진보교육계의 입장을 민주당이 수용하지 않는 것은 사회운동과 대중정치 사이에 큰 간극이 존재하기 때문이다

진보교육계는 정치를 배워야 한다. ‘욕 안 먹는’ 정치가 아니라 ‘문제를 해결하는’ 정치 말이다

난데없이 조만간 대통령 선거를 치러야 할 상황이 되어버렸다. 그런데 선거 직전이 되면 민감한 얘기를 칼럼에 쓰기 어려워진다. 억측과 비난의 대상이 되곤 하기 때문이다. 그래서 대선이 코앞으로 다가오기 전에 나의 과거 대선 경험을 공유하고자 한다.

이런 글을 쓰는 이유는, 진보 교육진영의 정책이 더불어민주당에 수용되지 않는 이유를 오해하는 사람들이 많기 때문이다. 혹자는 ‘민주당이 보수적이어서’라고 주장하는데, 그렇다면 교육 문제에 있어 민주당에 대한 기대를 접어야 할 일이다. 혹자는 ‘민주당에 사교육업계의 영향력이 작용해서’라고 주장하는데, 그렇다면 민주당 내에서 시급히 ‘적폐’를 축출해야 할 일이다. 하지만 이 같은 두 가지 의견은 모두 현실과 동떨어져 있다.

나는 대략 2년 반 동안 민주당의 정책 형성 과정에 참여하며 내부를 관찰할 기회가 있었다. 2014년부터 2년간 민주당의 정책연구소인 민주연구원(당시 명칭은 민주정책연구원) 부원장을 지냈고, 2017년 대선 시기에는 문재인 후보의 싱크탱크였던 ‘국민성장’에서 일했다. 국민성장에서 나의 임무는 주로 고교체계 개편이었다. 그런데 하루는 대학 정책을 담당하는 또 다른 팀의 간사가 나를 찾아와서 물었다. “이범 선생님, 공동입학제는 어떻게 하는 거예요?” 국립대를 통합하고 공동입학·공동학위제를 실시하는 방안을 모색하다가 벽에 부딪혔다는 것이다. 여기에 대한 내 답은 간단했다. “그거 안 되는 거 이제야 아셨어요?”

서울대를 포함한 거점 국립대를 통합해 3만여명을 공동입학제로 모집한다고 가정해 보자. 통합 국립대와 연세대 또는 고려대에 중복 합격한 지원자들은 어디를 선택할까? 통합 국립대 입학자들은 캠퍼스 배정을 놓고 결국 추첨을 하는 수밖에 없다. 그런데 서울캠퍼스에 배정될 확률은 10%에 불과하다. 서울시립대와 서울과학기술대를 합친다 해도 20%에 그친다. 그런데 연세대·고려대에 입학하면 확실하게 서울에서 대학을 다닐 수 있으며, 특히 통합 국립대와 달리 선후배 네트워크가 그대로 보존된다. 따라서 나는 통합 국립대의 입결이 연세대·고려대는 물론이요 서강대·성균관대·한양대의 수준에도 미치지 못할 가능성이 있다고 봤다. 즉 국립대 통합 네트워크 정책은 서울대의 지위를 연세대·고려대에 넘겨주는 결과를 초래할 것이었다.

나는 이 같은 반론을 2012년부터 제기하고 있었다. 이에 대해 진보 교육계에서는 ‘공영형 사립대’라는 것을 대안으로 내놓았다. 사립대 이사진의 절반을 외부의 공익이사로 채움과 아울러 정부가 충분한 재정지원을 하도록 하는 방안이다. 이는 상지대처럼 부패한 사학재단과 싸우느라 허약해진 대학을 지원하고 바로 세울 수 있는 방안으로서 의미가 있다. 하지만 이것이 공동입학제와 융합해 대입 경쟁을 줄이는 계기가 될 수 있을까? 그러려면 연세대·고려대를 포함한 명문 사립대들이 기득권을 버리고 공영형 사립대로 전환해야 한다. 한마디로 기대하기 어려운 얘기다.

대학 구조개혁안 좌초 후 후폭풍

나는 대학정책팀의 간사에게 이 같은 난점을 간략히 설명해 주었다. 이후 이 정책이 어떤 과정을 거쳤는지 나는 잘 모른다. 어차피 국민성장이 만든 정책이 바로 공약집에 실리는 구조가 아니었다. 교육정책의 경우 국민성장과는 별도로 민주당 당료 중심의 정책팀도 있었고, 김상곤 전 경기도교육감이 이끄는 이른바 ‘김상곤 팀’이 일종의 게이트키퍼 역할을 했기 때문이다. 하지만 ‘김상곤 팀’이 만든 최종 작품이 매끄럽게 통과되지 못했음을 나중에 알 수 있었다. 대통령 선거일을 얼마 안 남겨놓은 시기에, 선거본부의 최고위급 인사와 우연히 마주쳤다. 그는 나를 세워놓고는 대뜸 속내를 쏟아놓기 시작했다. “김상곤 팀이 최종적으로 만들어 올린 정책은 돈이 너무 많이 들어요. 전체 공약 실현을 위해 쓸 수 있다고 상정한 예산이 ○○조원인데, 김상곤 팀의 방안을 모두 실현하려면 그중 무려 ○○조원을 할애해야 해요. 그나마 그를 통해 확실히 효과를 볼 수 있다는 확신이 있다면 모르겠는데, 막상 효과가 얼마나 될지도 불확실하더라고요.” 결국 공약집에는 “중장기적으로 대학 네트워크 구축” “공영형 사립대 전환 및 육성”이라는 짤막한 문구만 실렸으며, 그나마 문재인 대통령 취임 직후에 정리한 ‘100대 국정과제’에서는 완전히 빠지고 말았다.

가장 야심적인 플랜인 대학 구조개혁안은 이렇게 좌초했다. 당연히 이 과정에서 움튼 불신과 분란은 그 밖의 다른 교육정책에도 악영향을 주었을 것이다. 대표적인 예가 내가 국민성장에서 담당했던 고교체계 개편이다. 당시 내가 쓴 보고서들은 외고·국제고·자사고를 시행령을 통해 일반고로 일괄 전환하는 액션플랜, 전환하기 어려운 학교들의 인력을 공립으로 특채하고 자산을 국가가 매입하는 특별법, 일반고에서 교육의 다양성을 높이기 위한 수강신청제의 시행 등이었다. 수강신청제는 최종적으로 고교학점제라는 명칭으로 정리되었다. 물론 이 같은 보고서들은 혼자만의 생각으로 쓴 것은 아니었고 국민성장 내에서 상당한 토론을 거친 것이었다. 나는 2012년 대선 때는 안철수 후보 교육정책팀에서 일했는데, 당시 내가 입안한 내용은 ‘일반고로의 전환’이 아니었다. 외고·국제고·자사고를 존속하되 일반고와 함께 선지원 추첨으로 학생을 배정하도록 하는 것이었다. 그러나 2017년에는 이 같은 개인적 지론을 유지할 수 없었다. ‘일반고로의 전환’이 내부에서 절대적으로 지배적인 의견이었기 때문이다.

진보교육계는 정치에 서툴렀다

그런데 문재인 정부는 왜 이를 채택하지 않고 공을 시도교육청으로 넘겨버리고 말았을까? 왜 ‘일괄 전환’이 아니라 ‘선별적 전환’으로 방향을 잡아서 2019년 자사고 재지정 심사를 놓고 소모적 논쟁이 벌어지도록 만들었을까? 대선 다음해인 2018년, 나는 청와대 고위 인사를 만날 기회가 있었다. 그 자리에서 나는 “2018년 안에 시행령을 바꿔야 한다”며 “지금이 마지막 기회”라고 말했다. 그는 말없이 애매한 미소만 지었다. 나중에 나는 충격적인 사실을 알게 되었는데, 내가 쓴 보고서의 내용이 제대로 상부에 전달되지 않은 것이다. 그리고 김상곤 팀이 제시한 액션플랜은 선거본부 최상위 단위를 (그리고 나중에는 청와대를) 만족시키지 못했다.

민주당과 진보교육계의 연결고리가 약화된 계기는 2017년 대선 시기에 있었던 ‘김상곤 쇼크’다. 이는 김상곤이라는 개인의 실패가 아니다. 김상곤씨는 2015년 당시 문재인 당대표 시절에 혁신위원장으로 영입되었고, 2017년 대선에서 교육정책의 게이트키퍼 역할을 하며 진두지휘했다. 그런데 그가 내놓은 정책은 당 최고 지도부나 청와대를 설득하지 못했다. 교육부 장관이 되고 나서도 실책이 많았다. 특히 2017년 장관에 취임하자마자 수능 개편안을 내놓으려 한 것이 치명적인 실수였다. 학종에 대한 대중의 불만이 하늘을 찌르고 있는 와중에, 학종 개편안은 안중에 없고 수능 개편안을 먼저 내놓다니? 정치인은 대중의 지지를 먹고사는 존재다. 그런데 대중의 불만의 핵심이 무엇인지를 파악하고 전략적 행보를 해야 할 시기에, 자신이 옳다고 믿는 원론을 날것으로 드러내다니? 정치인들은 그를 외면할 수밖에 없었던 것이다.

진보교육계의 입장을 민주당이 수용하지 않는 것은 민주당이 보수적이어서일까? 민주당에 적폐적 존재가 암약하고 있어서일까? 그보다는 사회운동과 대중정치 사이에 큰 간극이 존재하기 때문이다. 아무리 올바르게 보이는 구호라 할지라도 이를 실행할 수 있는 구체적인 액션플랜과 예산 계획이 없다면 정치계에서 살아남지 못한다. 진보교육계는 교육감 자리에 안주했다. 큰 그림을 그린다고 착각했지만 ‘정책’ 수준으로 구체화하는 순간 정치계의 최소 요건을 충족하지 못했다. 다르게 표현한다면 진보교육계는 ‘정치’에 서툴렀다.

7년 전에 있었던 ‘김상곤 쇼크’를 새삼 언급하는 이유는, 이 같은 문제가 다시 반복될 조짐이 보이기 때문이다. 특히 고질적인 대입 경쟁을 해결하려면, 명문 사립대를 설득할 파격적인 대타협안이 절대적으로 필요하다. 예를 들어 매년 학교당 천억원대의 연구비를 순증하여 세계 대학 랭킹을 힘껏 끌어올리는 대신 학생선발권만 달라고 하는 건 어떨까. 물론 진보교육계는 펄쩍 뛸 것이다. 하지만 바로 이런 지점이 진보교육계가 뛰어야 할 로도스다. 진보교육계는 정치를 배워야 한다. ‘욕 안 먹는’ 정치가 아니라 ‘문제를 해결하는’ 정치 말이다.

Menu

Kollo 를 통해 내 지역 속보, 범죄 뉴스, 비즈니스 뉴스, 스포츠 업데이트 및 한국 헤드라인을 휴대폰으로 직접 확인할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