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이언스] 나선팔 은하의 기원을 밝혀라

2025-03-17

[비즈한국] 최근 천문학자들은 제임스 웹의 관측 데이터 속에서 빅뱅 직후, 아주 어린 시절의 우주에 존재한 거대하고 뚜렷한 나선팔을 가진 은하를 발견했다! Abell 2744 은하단 방향을 관측한 사진에서 발견한 소용돌이 모양의 이 원시 은하는 빅뱅 직후 겨우 15억 년밖에 지나지 않았을 때 존재했다.

사실 우리에겐 소용돌이치는 나선 은하가 매우 익숙하다. 우리가 사는 우리 은하도 그렇고, 가장 널리 알려진 안드로메다도 나선 은하다. 너무나 당연해 보이는 흔한 형태의 은하가 단지 먼 우주에서 발견되었을 뿐인데, 왜 천문학자들이 이번 발견을 크게 주목하는 걸까?​

그것은 우리가 아직 은하의 나선팔이 어떻게 만들어지는지 정확히 모르기 때문이다. 더 놀라운 건 이번에 발견된 은하 A2744-GDSp-z4가 너무 일찍 뚜렷한 나선팔을 두르고 있다는 점이다. 천문학자들은 은하가 뚜렷하고 선명한 나선팔을 형성하려면 수십억 년이 필요하다고 생각했다. 그런데 우주의 나이가 지금의 10분의 1밖에 안 된 시절에, 우리 은하 3분의 1 크기인 지름 3만 2000광년의 원시 은하가 매우 뚜렷한 ‘그랜드 디자인’ 나선팔을 두르고 있다. 이것은 은하의 나선팔이 생각했던 것보다 훨씬 더 빠른 속도로 형태를 갖출 수 있다는 것을 암시한다. ​

나선팔은 관측되는 원반 은하의 거의 대부분, 70% 이상이 보여주는 너무나 흔한 현상이다. 하지만 우리는 여전히 그 나선팔의 정확한 기원과 메커니즘을 알지 못한다. 대체 이 나선팔은 어떻게 형성되는가? 은하들의 화려한 코스믹 라테아트는 어떻게 펼쳐지고 있는 걸까?

은하의 나선팔은 오래전부터 알려졌다. 심지어 은하라는 단어가 잘 쓰이지 않던 시절부터. 20세기 이전까지 인류에게 우주는 우리 은하가 전부였다. 밤하늘에서 가끔 보이는 소용돌이치는 가스 구름은 거대한 우리 은하에 포함된 작은 구름 정도로 여겼다. 1840년 천문학자 윌리엄 파슨스는 오늘날 소용돌이 은하로 잘 알려진 M51의 세밀한 모습을 그림으로 기록했다. 당시 천문학자들은 이렇게 나선팔이 휘감긴 가스 구름을 ‘나선 성운’이라고 불렀다.

이후 천문학자 허블의 발견을 통해 안드로메다를 비롯한 나선 성운이 우리 은하 밖 별개의 우주라는 사실이 알려졌다. 외부은하를 인식하고 탐구하는 은하 천문학의 부흥기가 이때 시작되었다. 허블은 사진 속 은하의 형태에 따라 둥근 타원 은하, 나선팔을 그리는 나선 은하로 분류하는 체계를 만들었다. 나선 성운은 이제 나선 은하로 불리게 되었다.

오랫동안 천문학자들은 은하의 나선팔이 하나의 고정된 구조라고 생각했다. 나선팔에 속한 별은 계속 나선팔에 속한 채 그대로 움직인다고 생각했다. 그런데 문제가 있었다. 천문학자 얀 오르트(오르트 구름의 창시자)가 동료 린드블라드와 함께 은하 원반 속 별들의 움직임을 연구한 결과 태양 주변 별들에 비해 은하 중심에 있는 별들이 훨씬 빠르게 돈다는 사실을 발견한 것. 우리 태양과 주변 별들은 은하 원반 한 바퀴를 도는 데 2억 년이 걸리지만 은하 중심 별들은 20년도 안 되는 짧은 주기로 빠르게 맴돌았다.

마찬가지로 천문학자들은 나선팔에서도 은하 중심에 가까운 부분과 먼 부분이 극단적으로 속도가 다를 거라 생각했다. 그 경우 나선팔은 안팎의 회전 속도가 전혀 달라 점차 꼬여들어가는 문제가 발생한다. 하지만 실제로는 그 어떤 나선 은하도 나선팔이 점점 타이트하게 휘감기는 듯한 현상은 보이지 않았다. 계속 크고 아름다운 나선팔의 형태를 유지하고 있을 뿐이었다. 이것을 나선팔의 감기 문제(Winiding problem)라고 한다.

1964년 나선팔의 감기 문제를 해결하는 아주 기발한 아이디어가 제시되었다. 흥미롭게도 은하의 나선팔에서 벌어지는 것과 정확히 똑같은 현상을 꽉 막힌 고속도로에서 찾을 수 있다. 가끔 도로를 달리다보면 갑자기 특정 구간에서 차들이 정체하는 경험을 하게 된다. 딱히 별다른 이유가 없는데도 교통 정체 구간이 유지되는 것을 유령 정체라고도 부른다. 그 이유는 간단하다. 도로 위에서 어떤 차가 갑자기 브레이크를 밟았다고 가정해보자. 그러면 그 뒤에 있는 차량들도 순서대로 브레이크를 밟기 시작한다. 맨 처음 교통 정체를 유발했던 차량은 다시 속도를 내며 정체 구간을 벗어나지만, 이미 한 번 시작된 정체 구간의 파동은 그 뒤로 계속 이어진다.

여기서 흥미로운 사실을 알 수 있다. 교통 정체 구간에 동일한 차량이 계속 갇혀 있지 않다는 것이다. 다시 말해 교통 정체 구간은 실제 도로, 또 그 위를 달리는 자동차와는 무관한 일종의 파동이다. 실제 도로 위에 존재하는 단단한 구조가 아니다. 모든 차량은 각자의 속도로 달리며, 교통 정체 구간에 잠시 진입했다가 다시 빠져나간다. 그 어떤 자동차도 교통 정체 구간에 계속 머무르지 않는다. 이러한 현상을 밀도파라고 한다. 밀도가 높은 구간이 마치 파도처럼 유지된다는 뜻이다.

은하 원반에서 어떤 이유로 별들의 궤도가 겹치고 밀도가 높아지는 밀도파 구간이 형성된다면, 안정적으로 거대한 그랜드 디자인 나선팔을 유지할 수 있다. 이 가설이 맞다면 많은 은하들이 보여주는 뚜렷한 나선팔은 수십억 년, 아니 100억 년 넘게 별들의 고속도로에서 이어지는 교통 정체 현장이라고 볼 수 있다. 꽉 막힌 도로에 갇혀 있을 때, 이렇게 생각하면 문득 내가 거대한 나선팔 한가운데를 잠시 지나가는 별이 된 기분이 든다.

하지만 밀도파 이론은 한 번 형성된 나선팔이 어떻게 오랜 세월 형태를 유지할 수 있는지에 대해서만 설명할 뿐, 정작 그 나선팔이 맨 처음에 어떻게 시작됐는지는 알려주지 않는다. 즉, 한 번 시작된 교통 정체가 왜 지금껏 사라지지 않고 이어지는지는 설명해주지만, 애초에 대체 누가 무슨 짓을 했길래 이런 교통 정체가 시작됐는지는 알 수 없다.

이를 보완하기 위해 일부 천문학자들은 은하 원반에서 끊임없이 폭발과 탄생을 반복하는 별들의 난폭한 일생에서 원인을 찾는다. 1976년 천문학자 마크 뮬러와 데이빗 아르넷에 의해 처음 제시된 아주 흥미로운 모델이다. 은하 원반은 가스 물질이 특히나 많이 밀집해 있다. 그래서 새로운 별이 연이어 탄생한다. 그 중 무거운 별은 진화를 더 빠르게 마치고 결국 초신성 폭발을 맞이한다. 이때 발생한 충격파가 주변 은하 원반 가스 물질에 퍼져나가고, 충격파에 밀린 가스 물질은 다시 높은 밀도로 압축되면서 또 다른 새로운 별의 탄생으로 이어진다. 원반의 한 곳에서 벌어진 무거운 별의 초신성 폭발이 연이어 그 주변의 원반에 새로운 별의 탄생과 또 다른 초신성 폭발로 이어진다.

이 과정이 벌어지는 동안, 당연히 새로 태어난 별과 초신성도 모두 은하 원반 위를 맴돈다. 그래서 점차 점진적으로 충격파가 둥글게 은하 원반을 휘감으며 퍼지고, 결국 은하 원반 전역에 유독 별의 밀도가 높은 영역이 나선 형태로 휘감겨 형성될 수 있다. 확률적으로 연달아 새로운 별이 탄생하고 터지는 것을 반복하면서 나선팔이 스스로 성장해간다는 뜻에서 이 모델을 Stochastic Self-Propagating Star Formation, 줄여서 SSPSF 모델이라고 부른다.

하지만 이 모델도 충분하지는 않다. 최근 다양한 고해상도 시뮬레이션에 따르면 SSPSF 모델로 설명되는 나선 은하는 보통 희미하고 가느다란 나선팔이 여러 개 휘감긴 불규칙한 형태의 나선 은하들이 대부분이다. 단 두세 개의 크고 뚜렷한 나선팔을 보여주는 그랜드 디자인 나선팔은 잘 설명되지 않는다.

그렇다면 밀도파 이론과 SSPSF 모델, 둘 중 무엇이 맞는지 관측적으로 검증할 수는 없을까? 흥미롭게도 밀도파 이론은 아주 중요한 예측을 제시한다. 나선팔을 별들의 교통 정체 구간처럼 설명하는 밀도파 이론은 나선팔이 은하 원반을 휘감고 이동하면서 그 주변 원반 상의 가스를 압축해 새로운 별을 만들게 된다고 예측한다.

이때 질량이 가벼운 별부터 무거운 별까지 다양한 별들이 탄생한다. 무거운 푸른 별들은 빠르게 진화를 마치고 초신성 폭발과 함께 사라진다. 반면 질량이 가벼운 미지근한 붉은 별들은 오랫동안 살아남아 원래 태어난 밀도파 구간에서 조금 더 멀리 벗어날 수 있다. 따라서 밀도파 이론에 따르면 은하의 나선팔을 따라 별들이 전반적으로 푸른빛에서 붉은 빛으로 변화하는 별들의 색깔, 나이의 기울기, 그라디언트가 관측되어야 한다.

이것은 밀도파 이론을 관측적으로 입증할 수 있는 매우 직관적이고 중요한 예측이다! 그리고 그동안 아주 많은 관측 연구들이 이 이론의 검증을 시도했다. 나도 아주 많이 관심을 갖고 연구하는 분야 중 하나다. 하지만 당황스럽게도 연구에 따라 서로 다른 결과가 나온다. 일부 은하들은 밀도파 이론이 예측하는 대로 뚜렷한 별들의 색깔 분포를 보이지만, 또 어떤 은하들은 그렇지 않다. 정반대 경향을 보이는 은하들도 있다. 이런 난감한 상황을 설명하기 위해 일부 천문학자들은 일부 은하에서 나선팔이 거꾸로 회전할 수도 있다는 가설을 고민할 정도였다.

사실 나선팔에는 별과 가스 구름뿐 아니라 먼지가 워낙 많기 때문에 먼지에 의해 별빛이 어두워지는 현상을 신중하게 고려해야 한다. 최근 올라간 제임스 웹과 같은 우주 망원경은 특히 시야를 가리는 먼지를 꿰뚫어 그 속을 들여다볼 수 있는 적외선으로 관측한다. 그래서 추가 관측을 통해 밀도파 이론을 더 체계적으로 검증할 수 있을 것으로 기대한다.

슈퍼컴퓨터를 활용한 초고해상도 우주론적 시뮬레이션 연구가 흔해지면서, 은하의 진화를 그리는 방식도 크게 바뀌었다. 이제 천문학자들은 그 어떤 은하도 홀로 외롭게 진화한다고 생각하지 않는다. 모든 은하는 주변의 크고 작은 은하들과 부딪히거나 스쳐 지나가는 등 다양한 상호작용을 겪었다.

과거 컴퓨팅 파워가 부족했을 때는 주변에 아무것도 없는 독립된 이상적인 가상의 은하를 만들어두고 은하의 나선팔을 재현하는 시뮬레이션을 진행했다. 하지만 이건 은하들이 뒤죽박죽 상호작용하는 실제 우주의 현실을 전혀 반영하지 못한 이상적인 시뮬레이션일 뿐이다. 이제 천문학자들은 거대한 은하 주변을 떠도는 작은 위성 은하의 유입과 충돌이 아마 은하 원반에 물결을 일으켰고, 그렇게 시작된 별들의 파문이 지금까지 이어지면서 거대한 그랜드 디자인 나선팔을 형성했을 거라 추정한다.

하지만 이러한 방식은 시간적 여유가 충분히 필요하다. 이번에 발견된 원시 나선 은하는 우주의 나이가 고작 15억 년밖에 안 됐을 때 존재했다. 일단 은하가 하나 형성되고, 납작한 원반을 형성하고, 그다음 나선팔이 만들어지기 시작해 뚜렷한 두 개의 그랜드 디자인 나선팔로 성장하기까지, 반드시 거쳤여야 할 모든 과정을 생각해보면 15억 년이라는 시간은 꽤 빠듯하다.

이 혼란을 해결하려면 이번에 발견된 은하가 단지 아주 운이 좋은 행운아인지, 아니면 정말 우주 끝자락에는 뚜렷한 나선 은하가 매우 흔한지를 확인해야 한다. 더 넓은 초기 우주의 지도를 관측하고 그 안에서 얼마나 많은 은하들이 나선팔을 두르고 있는지 방대한 통계적 연구가 필요하다.

이미 3년 넘게 훌륭한 데이터를 쏟아내고 있는 제임스 웹 우주 망원경을 비롯해, 곧 관측 데이터 공개를 앞둔 유클리드 우주 망원경, 내년 첫 관측 테스트를 진행하는 베라 루빈 망원경에 이르기까지, 매일 수십 테라바이트에 달하는 방대한 데이터가 곧 쏟아지게 될 것이다. 이를 통해 빅뱅 직후 초기 우주에서부터 가까운 오늘날의 우주에 이르기까지, 나선 은하의 비율이 어떻게 달라졌는지, 나선팔의 크기나 규모가 어떻게 변화해왔는지를 분석한다면 나선팔의 정확한 기원을 알 수 있게 될 것이다.

참고

필자 지웅배는? 고양이와 우주를 사랑한다. 어린 시절 ‘은하철도 999’를 보고 우주의 아름다움을 알리겠다는 꿈을 갖게 되었다. 현재 연세대학교 은하진화연구센터 및 근우주론연구실에서 은하들의 상호작용을 통한 진화를 연구하며, 강연과 집필 등 다양한 과학 커뮤니케이션 활동을 하고 있다. ‘썸 타는 천문대’, ‘하루 종일 우주 생각’, ‘별, 빛의 과학’ 등의 책을 썼다.​​​​​​​​​​​​​​​​​​​​​​​​​​​​​​​​​​​​​​​​​​​​​​​​​​

지웅배 과학칼럼니스트

writer@bizhankook.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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