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빨리빨리’ 좋아하는 한국인의 소울푸드로 자리잡게 된 자장면 의 역사
서민 대표 외식 메뉴로 오랜 시간 큰 사랑
문화적 관점서 졸업·이사를 표상하게 돼
가격 상승, 외식 문화 다양 … 위상 달라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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졸업과 이사의 달. 자연스럽게 떠오르는 음식이 있다. 바로 자장면이다. 소설가 황석영은 “누군가 말하기를 자장면에 대한 그리움에서 벗어나야 어른이 된다는데, 우리 또래치고 자장면에 대한 추억이 없는 이가 없다”고 썼다. 졸업식이 끝난 뒤, 꽃다발을 받아 들고 온 가족과 중국집으로 가 자장면을 먹는 것은 한국의 가장 전형적인 졸업식 풍경이었다. 자장면은 언제부터 한국인의 소울푸드가 되었을까.
자장면은 1905년 인천 차이나타운의 ‘공화춘(共和春)’에서 처음 만들어진 음식이다. 자장면이라는 단어는 작장면(炸醬麵)에서 온 외래어로, 1986년 외래어 표기법이 제정되어 ‘자장면’으로만 쓰이다가 2011년 국립국어원에 의해 ‘짜장면’도 표준어로 인정됐다. 자장면이 한국인의 ‘소울푸드’가 된 데에는 미국의 역할이 컸다. 1950년대 6.25 전쟁 피해를 본 한국은 미국으로부터 식품을 대량으로 원조받았는데, 이 중 70%가 ‘밀’이었다. 정부는 부족한 양곡보다 넘치는 밀가루 소비를 위해 적극적으로 분식 장려 정책을 펼쳤고, 그 혜택을 받은 음식 중 하나가 자장면이었다. 1945년 해방 이후 정부의 화교 재산권 제재로 무역할 수 없게 된 화교들이 음식점을 개업하며 중국집 수가 폭발적으로 증가한 것도 주요 요인이었다. 저렴한 밀값과 한국인의 ‘빨리빨리’ 성미에 맞는 철가방 배달을 등에 업은 자장면은 서민의 대표 음식으로 빠르게 안착했고, 간편한 외식 메뉴로 오랜 시간 사랑받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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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격적으로 졸업식에 자장면을 먹는 문화가 성행한 건 1970~80년대부터였다. 외식이 흔하지 않던 시절, 최고의 외식 메뉴로 군림하던 자장면이 졸업식의 대명사가 된 것은 자연스러웠다. 그럼에도 특히 ‘자장면’이 주목받은 이유로는 여러 가지가 꼽힌다. 하나는 빠른 회전율이다. 졸업식 날 식당에는 사람들이 몰리곤 했는데, 자장면은 빠른 조리와 식사가 가능한 장점이 있었다. 다른 이유는 저렴한 가격이다. 졸업 축하를 위해 온 가족이 모이는 만큼 졸업식은 외식비 부담이 큰 행사였는데, 자장면은 비교적 저렴하면서도 이국적인 ‘별식’ 느낌을 낼 수 있었다는 것이다. 이사 날 자장면을 먹는 이유도 이와 같다. 여러 명이 모여 고된 일을 하면서 빨리 먹을 수 있는 동시에 금전적으로 부담스럽지 않은 음식을 찾았고, 이러한 ‘니즈’를 가장 완벽히 충족시키는 음식이 자장면이었다.
그런데 요즘, 졸업식에서 자장면이 사라졌다. 44년째 수타 자장면으로 유명한 맛집을 운영 중인 A씨(69)는 “옛날에는 근처 학교 졸업식이 끝나면 학생들의 80~90%가 왔는데, 요즘은 전혀 아니다”라며 고개를 저었다. 코로나19 등으로 모습을 감춘 졸업식 특수와 가격 상승, 외식 메뉴 다양화가 원인으로 꼽힌다. 예로부터 자장면은 서민 물가의 척도가 되는 음식이었다. 서민과 가까울 뿐 아니라, 농·축·해산물 등 다양한 원재료가 들어가 물가 변동에 취약했기 때문이다. 한국소비자원에 따르면 2014년 12월 4500원이던 서울 지역 자장면 한 그릇 평균 가격은 2024년 12월 7423원을 기록하며 10년 사이 약 65%나 상승했는데, 이는 서울 외식 메뉴 중 가장 가격이 많이 오른 것이었다. 서구 문화의 유입으로 다양한 대체제들이 등장한 가운데, 유일무이한 ‘서민 대표 외식 메뉴’의 자리를 잃은 자장면은 점점 소비자의 외면을 받기 시작했다.
그럼에도, 아직도 졸업식을 대표하는 음식을 물으면 대부분 자장면을 떠올린다. 이는 왜일까? 이미 대명사가 된 ‘졸업식 자장면’의 위치 때문이다. 문화가 바뀌고, 가격이 올라도 자장면에 담긴 추억은 견고하다. 2006년 7월 문화관광부(현 문화체육관광부)는 자장면을 ‘한국 100대 민족문화 상징’ 중 하나로 선정했는데, 이는 자장면에 단순 음식 이상의 상징적 의미가 있음을 보여준다. 문화적 관점에서 ‘졸업식 자장면’은 한국인의 졸업과 이사라는 일생의 한 단계를 표상하는 음식이 되었다. 그렇기에 사람들은 여전히 졸업과 이사를 대표하는 음식으로 자장면을 떠올린다.
오랜 시간 사랑받는 서울 노포 자장면 맛집
효동각 “조미료를 넣지 않아 깔끔한, 채수로 만든 비건 자장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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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장면은 느끼하다는 편견이 있다면 ‘대한민국 3대 짜장’으로 꼽히는 곳, 효동각을 추천한다. 서대문구 토박이 박재왕 대표가 운영하는 곳으로 원래 이름은 ‘희궁반점’이었는데, 드라마 ‘맛있는 청혼’의 배경이 되면서 드라마 속 이름이 진짜 이름이 되었다. 이곳은 1인 중국집으로 서빙과 정리가 모두 셀프서비스다. 또 하루에 오직 3시간만 운영하고, 메뉴도 자장면 하나뿐이다. 박대표는 “전에는 다양한 중국요리를 했다”며 “자장면이 쉬워 보이지만 가장 어려운 요리. 매일 춘장을 정성스레 볶고 채수를 내어 맛을 낸다”고 설명했다.
안동장 “서울에서 가장 오래된, 내공이 느껴지는 정통의 자장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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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에서 가장 오래된 중국집’, ‘굴짬뽕을 최초로 만든 집’ 등 가장 화려한 수식어를 자랑하는 곳이다. 1948년 종로 피카디리 극장 근처에서 화교 왕충요씨가 개업한 후, 재개발 이슈로 1950년 현 위치로 이전해 3대가 가업을 잇고 있다. 자장면 맛은 다소 특이한데, 캐러멜보다는 짭짤한 춘장 자체의 맛이 강해 향신료를 좋아한다면 선호할만한 맛이다. 특이하게 깍두기가 기본 찬으로 나오는데, 깍두기와 자장면의 조합이 생소하게 느껴지지만 의외로 궁합이 좋다. 회전율이 높아 재료가 신선하다.
동순각 “육향 가득 자장면과 김치의 색다른 조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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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찐’노포를 찾는다면 영등포 시장 메인 바로 옆길에서 50년 넘게 운영 중인, 동순각을 추천한다. 배달도 철가방을 고수하는 찐 노포다. 점심이 훌쩍 지난 오후 4시, 애매한 시간에도 매장은 자장면과 탕수육을 놓고 소주 한 잔을 기울이는 오랜 단골들로 가득했다. 이곳의 자장면은 은근하게 배어 나오는 육향이 입안을 즐겁게 한다. 간짜장, 삼선간짜장 등이 있지만, 일반자장의 풍미가 더 깊다. 탕수육 맛집으로도 유명하다.
동해루 “착한 가격과 탄력 있는 면발의 쾌적한 노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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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장면 한 그릇 평균 7500원 시대에, 5000원이라는 착한 가격을 고수하는 곳이 있다. 왕십리역에서 도보로 10분 정도에 위치한 ‘동해루’다. 1979년부터 운영해 어느새 40년을 훌쩍 넘긴 오랜 점포지만, 내부가 넓고 쾌적하다. 저렴한 가격을 유지하는 이유가 뭔지 물으니 “단골들이 가격 올리는 것을 싫어해서”라는 답변이 돌아왔다. 그래서일까. 기본 자장면은 건더기보단, 면발에 집중했다. 짜지 않고 묽은 소스에 면발이 굵은 편이다. 우동처럼 느껴지지만, 밋밋하진 않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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