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구 500만명의 작은 섬나라 아일랜드가 중국 고위급 지도자 순방에 중요한 역할을 하고 있다."
왕이(王毅) 중국 외교부장(장관)이 17일(현지시간) 아일랜드 더블린에서 마이클 마틴 총리를 만나는 가운데, 최근 미·중 경쟁 구도에서 아일랜드의 중요성이 커졌다고 외신들이 전했다. 홍콩 사우스차이나모닝포스트(SCMP)에 따르면 10년 이상 외교부장으로 재직 중인 왕이는 그간 유럽을 70번 이상 찾았지만, 아일랜드 방문은 이번이 처음이다. 12~17일 영국·독일 등 유럽 순방 중에 아일랜드를 점찍은 이유가 있다는 분석이 나온다.

니얼 더건 아일랜드 코크대 교수는 SCMP에 "중국 고위 관료의 방문은 이유 없이 이뤄지지 않는다"면서 "왕이 부장의 아일랜드 방문은 중국 입장에서 분명 가치가 있다"고 전했다. 앞서 지난해 1월엔 중국 '2인자' 리창(李强) 총리가 더블린을 방문했다. 리창 총리는 당시 스위스 다보스에서 열린 세계경제포럼에서 연설했는데, 개최지인 스위스를 제외하고 유럽국가 중에는 유일하게 아일랜드를 찾았다.
아일랜드도 트럼프 관세 '동병상련'
아일랜드가 중국의 러브콜을 받은 이유는 양국 모두 트럼프 관세전쟁에 영향을 받기 때문이라고 SCMP는 전했다. 우선 아일랜드는 지난해 대미 무역흑자(5위·867억 달러)를 기록했다. 이 때문에 아일랜드는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이 언급한 '상호관세' 타깃으로 꼽혔다.
또한 아일랜드는 중국이 미국산 반도체를 들여오는 통로이기도 하다고 SCMP는 전했다. 지난해 중국 세관에 따르면 아일랜드에서 중국으로 60억 달러 어치(약 8조6300억원) 반도체가 운송됐다. 이는 2023년 대비 20% 증가한 수치다. 물량 상당수가 미국 인텔에서 제조된 것으로 추정된다. 미국 입장에선 아일랜드는 자국의 첨단 반도체를 중국으로 넘기는 '요주의 국가'이지만, 중국 입장에선 아일랜드가 최첨단 기술의 젖줄인 셈이다.
아일랜드는 지난해 130억 달러(약 18조7400억원)에 달하는 대중 무역흑자를 기록했다. 대중 무역에서 흑자인 유럽국가는 아일랜드가 유일하다. 이처럼 아일랜드는 그간 미·중 모두에게서 이득을 봤는데, 이제는 관세 전쟁의 한가운데 놓인 처지가 됐다.
메르카토르 중국연구소의 알렉산더 데이비 분석가는 SCMP에 "중국 정부는 지난해 말 마이클 마틴 총리를 수반으로 하는 신임 정부가 출범한 것을 계기로 아일랜드 정부를 중국 편으로 두려고 한다"고 말했다.
아일랜드가 군사적으로 중립국이고 나토(NATO·북대서양조약기구)에 가입하지 않은 점도 포인트다. 이번 순방을 통해 중국에 적대적이지 않은 유럽 국가와 우호를 다지려는 게 중국의 속내다. 더건 교수는 "중국은 미국의 정책 변화에 취약하면서도 자신들에게 긍정적인 유럽 파트너를 찾고 싶어한다"고 전했다.

아일랜드에 본사를 둔 중국 기업들도 다수 있어 의미가 크다. 중국 온라인쇼핑 앱 테무를 운영 중인 핀둬둬는 지난 2023년 상하이 본사 주소를 아일랜드 더블린으로 이전했다고 공시했다.
그간 아일랜드는 낮은 세금정책과 고학력 노동력 덕에 외국 기업들을 유치했다. 2010년대 초 국제채권단의 구제금융을 받을 때, 아일랜드는 당시 24%던 법인세율을 12.5%까지 낮춰 외국기업 모시기에 나섰다.
그 덕에 페이스북 모회사 메타, 화이자 등 글로벌 기업이 앞다퉈 더블린에 진출했다. 이들은 아일랜드에서 투자하고 일자리를 창출하고 세금도 냈다. 경제협력개발기구(OECD)와의 합의에 따라 최근엔 법인세율을 15%로 상향했지만, 여전히 세계 최저 수준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