과거엔 ‘국산’이란 말 하나로 통했지만, 지금은 단지 국내산이라는 이유만으로 소비자의 선택을 받을 수 없다. 오늘날 한국 기업들이 주목받는 이유는 품질 경쟁력과 글로벌 트렌드 선도력을 동시에 갖췄기 때문이다. 실제로 한국 라면은 올해 10개월 만에 수출액 10억2000만 달러(약 20억 개)를 돌파하며 역대 최고 실적을 기록했다. 치킨·위스키·생수 등 다양한 식음료 품목이 ‘메이드 인 코리아’라는 이름으로 글로벌 시장의 기준이 되는 시대. 특히 불황기엔 수출과 해외시장 개척이 국내 기업에겐 거의 유일한 생존전략이 된다. 이 시리즈는 위기 속에서도 자신만의 방식으로 성과를 내고 비전을 창출한 토종 기업들의 이야기를 따라간다. 그들은 지금, 세계에서 ‘K-파워’를 증명하고 있다. [편집자주]

[미디어펜=이미미 기자] ‘사나이 울리는 매운맛’으로 익숙한 신라면이 국내 라면 시장 1위를 넘어, K-라면의 원조 격으로 전 세계 식탁을 뒤흔든 주역이 됐다.
1986년 농심이 출시한 신라면은 한국인의 얼큰하고 매콤한 기호를 정조준해 라면 시장에 매운맛 열풍을 일으킨 첫 주인공이다. 출시 첫해부터 폭발적인 인기를 끌며 국내 라면 시장을 단숨에 평정했고, 지금까지도 부동의 1위를 지키고 있다. 신라면의 영향력은 국내에만 머물지 않는다. 2000년대 초반부터 미국, 일본, 중국, 홍콩 등 70여 개국에 수출되며 한국 라면의 세계화를 이끈 ‘원조 K-라면’으로 자리 잡았다.
올해 창립 60주년을 맞은 농심은 ‘Global Change & Challenge’를 2025년 경영 지침으로 삼고, 글로벌 전진기지 구축에 속도를 내고 있다.
최근 농심은 부산 녹산에 수출 전용 공장을 착공하며 글로벌 확장에 본격적인 시동을 걸었다. 약 1만1280㎡ 부지에 들어설 녹산 수출공장은 완공 시 연간 라면 5억 개를 수출 전용으로 생산할 수 있다. 기존 부산·구미 공장과 합산하면 총 12억 개 규모로 현재 생산량의 두 배에 가깝다. AI 스마트팩토리 시스템을 갖춘 녹산 공장은 농심의 축적된 품질 관리 및 딥러닝 기술이 집약된 미래형 공장으로 운영된다. 글로벌 품질 인증 및 지속 가능성 기준도 충족해 국제적 규제 대응이 가능하다.
또한, 울산 삼남물류센터도 2027년 준공을 목표로 건설 중이다. 지역 내 물류 혁신과 고용 창출에도 기여할 것으로 기대된다.

농심은 녹산 공장을 중심으로 유럽과 미국 등 해외 시장을 적극 공략 중이다.
먼저 유럽 시장 공략을 위해 네덜란드에 전략적 전진기지로 ‘농심 유럽(Nongshim Europe B.V.)’을 설립했다. 유럽 최대 항만인 로테르담을 중심으로 유럽 전역을 대상으로 한 물류 허브가 구축돼 있다. 유럽 라면 시장 규모는 2023년 기준 약 20억 달러로 최근 5년간 연평균 12% 성장한 유망 시장이다. 농심의 유럽 매출도 연평균 25% 성장했으며, 현지 식문화에 맞춘 제품 개발과 테스코, 레베, 까르푸 등 다양한 유통 채널 확장을 통해 2030년까지 유럽 매출을 4배로 늘릴 계획이다.
미국 시장에서는 1984년 샌프란시스코 사무소 설립 이후 지속적으로 진출 기반을 다졌다. 2005년 LA 공장 가동을 시작으로 서부 지역을 중심으로 판매망을 구축했고, ‘프리미엄 전략’으로 일본 저가 브랜드 중심 시장에서 차별화했다. 그 결과, 2017년 월마트 전 점포 입점에 성공하며 미국 시장에서 신라면 브랜드를 확고히 했다. 수요가 급증해 2022년 LA 제2공장을 완공하고 생산능력을 70% 확장했다.

농심은 2021년 기준 미국 라면 시장 점유율 25.2%로 일본 토요스이산(47.7%)에 이어 2위이다. 앞서 농심그룹 2세 신동원 회장은 오는 2030년까지 미국 라면시장 1위에 오르겠다는 목표를 밝힌 바 있다. 현재의 3배 수준인 연매출 15억 달러 달성이 목표다.
남아메리카와 서남아시아 시장 등 새로운 시장 개척도 병행하면서 농심의 글로벌 시장 확대는 앞으로 더욱 가속화될 전망이다. 녹산 수출공장이 이 같은 글로벌 수요 확대를 뒷받침할 핵심 생산기지 역할을 할 것으로 기대된다.
증권가에서도 농심의 해외 성장세를 기대하고 있다.
지난 달 조상훈 신한투자증권 연구원은 “지난해 10월부터 미국 월마트 내 메인 매대에 입점(기존 대비 매대 크기 5배 증가)했고, 2공장 내 신규 증설 라인 추가 가동을 통해 툼바 등 브랜드 라인업 확장이 기대되는 상황”이라며 “3월 유럽 판매법인 설립에 따른 신규 시장이 확대되면서 이에 힘입어 외형 성장은 2분기부터 가시화될 것”이라고 전망했다.
강은지 한국투자증권 연구원은도 “향후 신라면 툼바의 글로벌 런칭 성과를 통한 해외 매출액 증가와 수익성 개선 가능성이 주가 상승을 견인할 것”이라고 분석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