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수 진영이 유튜브 주화입마(走火入魔)에 빠진 걸까. 19일 새벽 윤석열 대통령 지지자들의 서울서부지방법원 습격을 보며 떠오른 생각이다.
시위대에 합류한 유튜버들은 휴대전화를 들고 법원 청사 내부를 헤집으며 “이제부터 전쟁” “1·19 혁명” 같은 말을 쏟아냈다. 시청자들은 “폭동을 일으켜야 한다”는 댓글을 달며 호응했다. 시위대 중엔 유튜브를 보다 나온 사람도 있었다. 이들이 법원 기물을 때려 부술 때마다, 유튜버의 계좌엔 후원금이 차곡차곡 쌓였다. 보수의 한 축은 법치(法治)인데, 법원을 습격하는 보수주의자라니 가당키나 한 일인가. 소요·재물손괴·특수공무집행방해 같은 죄명을 떠올리기 전에 고개부터 가로저었다.
이런 ‘가짜 보수’의 범죄를 진영의 문제로 넓힌 건 국민의힘 중진들이었다. 전날 서부지법 담장을 넘은 시위대 17명이 체포됐다. 윤상현 의원은 법원 앞 시위대와 만나 “곧 훈방될 것”이라며 “애국시민 여러분께 감사드린다”고 했다. 이 발언은 ‘신남성연대’ 배인규씨가 유튜브로 생중계했다. 지난 8일 여당 지방의원들에 관저 앞으로 오라면서 “명단 하나하나 까면서 너희들 ××거야. 이는 부탁 아닌 협박”이란 엄포를 놓은 유튜버다. 그런데도 권영세 비상대책위원장은 배씨에게 설 선물을 보냈다. “민주당으로부터 부당하게 고발당해 위로와 격려의 마음을 담았다”고 한다. 김재원 전 최고위원은 “윤 대통령의 외롭고도 힘든 성전(聖戰)에 참전하는 아스팔트의 십자군”이라며 시위대에 경의를 표했다. 당과 유튜버, 폭력 시위대가 뒤엉킨 탓에 어디까지 진짜 보수고, 어디부터 참칭 보수인지 헷갈릴 지경이다.
유튜버를 정치에 활용하는 건 위험하다. 국민의 대표를 멋대로 길들이기 때문이다. 지난해 총선 직전 더불어민주당의 전현희·이언주·안귀령 후보가 김어준씨의 “차렷, 절” 구령에 맞춰 엎드린 장면이 대표적이다. 지난 14일 밤 서울 한남동 대통령 관저 앞 집회에선 박수민 국민의힘 의원이 비슷한 일을 당했다. 박 의원이 연단에 올라 “다치시면 안 된다”고 호소하던 중, 누군가가 ‘부정선거를 왜 모른 척하냐’고 외치자 고성이 쏟아졌다. 부정선거를 인정하라는 요구였다. 박 의원은 정중히 “사이다 발언은 저의 본분을 넘어선다”고 거절한 뒤 연단을 내려갔다. 그러자 유튜버 신혜식씨가 곧장 연단에 올라 “다치지 말라고 하는데, 그건 국민의힘이 걱정할 문제가 아니야. 이 ×끼들아” “개×끼들아 니네들은 끝났어” 같은 거친 언사를 쏟아냈다. 신씨 역시 국민의힘 설 선물 명단에 오른 유튜버다. 보수 정당은 이들과 헤어질 결심을 할 수 있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