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직장 내 괴롭힘 금지법’이 시행된 지 5년이 넘었지만, 시민단체 직장갑질119의 실태조사에 따르면 직장인 3명 중 1명은 여전히 ‘갑질’을 경험하고 있습니다. 더욱 심각한 것은 피해를 겪고도 ‘어차피 해결되지 않을 것’이라는 생각에 절반 이상이 아무런 대응을 하지 못한다는 현실입니다.
직장 내 괴롭힘은 개인의 존엄성을 파괴하고 조직의 생산성을 저해하는 심각한 문제이며, 건강한 기업 문화를 파괴하는 사회적 병폐입니다. 사후 약방문 식의 대처를 넘어, 실효성 있는 예방 시스템을 구축하는 데 집중해야 할 때입니다.
현행 근로기준법은 ‘직장 내 괴롭힘’을 ‘사용자 또는 근로자가 직장에서의 지위 또는 관계 등의 우위를 이용하여 업무상 적정범위를 넘어 다른 근로자에게 신체적·정신적 고통을 주거나 근무환경을 악화시키는 행위’로 정의합니다(근로기준법 제76조의2). 폭언, 폭행뿐 아니라 업무 배제, 집단 따돌림, 사생활 간섭 등 다양한 행위가 포함됩니다. 하지만 이 법은 5인 미만 사업장에는 적용되지 않아 약 345만 명의 노동자가 보호받지 못하고 있으며, 특수고용직·플랫폼 노동자 역시 보호 대상에서 제외되는 등 치명적인 사각지대가 존재합니다.
법은 괴롭힘 발생 시 사용자에게 즉각적인 사실조사, 피해자 보호, 가해자 징계 등의 조치 의무를 부과하고, 신고를 이유로 한 불이익 처우를 엄격히 금지합니다(근로기준법 제76조의3). 그러나 사용자가 조사 의무 등을 이행하지 않아도 500만 원 이하의 과태료 처분에 그치고, 가해자가 대표이사나 그 친족인 경우처럼 회사의 자체 조사를 신뢰하기 어려운 경우가 많아 제도의 실효성에 대한 비판이 끊이지 않습니다. 특히 현행법은 괴롭힘 행위자 개인에 대한 직접적인 처벌 조항을 두고 있지 않아, ‘가해자는 멀쩡하고 피해자만 고통받는다’는 인식을 심어주기 쉽습니다.
이처럼 법적 제도의 한계가 명확한 상황에서, 괴롭힘을 근절하기 위한 열쇠는 결국 개별 기업의 예방 노력과 문화 개선에 있습니다. 가장 먼저, 최고경영진이 ‘괴롭힘은 우리 조직의 성과와 미래를 파괴하는 중대 사안’이라는 확고한 인식을 갖고, 이를 근절하겠다는 의지를 모든 구성원에게 명확히 천명해야 합니다. 이는 단순한 선언을 넘어, 구체적인 정책과 제도로 실현되어야 합니다.
실질적인 예방을 위해서는 첫째, 명확한 사내 규정과 실효성 있는 교육이 필수적입니다. 어떤 행위가 괴롭힘인지 구체적인 사례를 제시하고, 신고부터 징계까지의 전 과정을 투명하게 공개해야 합니다. 특히 관리자들에게는 법정의무교육을 넘어, 구성원을 존중하고 수평적으로 소통하는 리더십을 체득시키는 참여형 교육을 주기적으로 실시해야 합니다.
둘째, 무엇보다 신뢰할 수 있는 신고 및 구제 절차를 마련해야 합니다. 피해자가 보복의 두려움 없이 문제를 제기하도록 익명 신고 채널을 활성화하고, 사내 해결이 어려운 경우를 대비해 외부 전문기관과 연계된 상담 창구를 마련하는 것이 바람직합니다. 신고가 접수되면 신속하고 공정한 조사를 통해 ‘우리 회사는 괴롭힘을 절대로 용납하지 않는다’는 강력한 메시지를 조직 전체에 보여주어야 합니다.
직장 내 괴롭힘 근절의 최종 목표는 서로를 인격적으로 존중하는 건강한 조직문화를 만드는 것입니다. 수직적 문화를 타파하고 자유롭게 소통하는 문화는 괴롭힘이라는 바이러스가 자랄 수 없는 토양이 됩니다. 기업의 자발적인 노력과 더불어, 5인 미만 사업장 전면 적용, 특수고용노동자 보호 범위 확대, 행위자에 대한 직접 처벌 규정 신설 등 실효성 있는 법·제도 개선이 시급히 이루어져야 합니다.
모든 구성원이 안전하게 일할 권리를 보장하는 것이야말로 기업의 지속가능한 성장을 위한 핵심 동력임을 명심해야 합니다.
홍민호 <변호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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