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정은 법무법인 결 파트너 변호사

한 전통시장에서 작은 점포를 두고 분쟁이 벌어졌다. 좁은 통로를 사이에 둔 상가들 사이에서 경계가 모호했다. 예전 임차인과 소유자 사이의 계약은 이미 종료되었지만, 인접한 상가들이 도로 일부를 사실상 점포처럼 사용하며 영업을 이어가고 있었다. 이런 관행은 오래 이어져 왔지만, 언제든 분쟁의 불씨가 될 수 있다.
어느 날 새로운 사람이 나타나 과거 임차인으로부터 권리를 넘겨받았다며, 기존 상인이 사용하던 공간까지 자신의 것이라고 주장했다. 기존 점포 앞을 가로막으며 공사와 영업을 막지 말라는 가처분을 법원에 신청했다. 복잡한 상황에 대응하기 위해 기존 상인은 법적 도움을 구했고, 사건은 본격적인 다툼으로 이어졌다.
권리관계가 무척 복잡했지만 민사 법원은 간단히 판단했다. 가처분이 성립하려면 신청인에게 ‘피보전권리’, 즉 법이 보호할 만한 권리가 존재해야 한다. 그런데 임대차계약은 이미 종료되었고, 문제 된 공간의 상당 부분은 사실상 공공도로였다. 상인들이 도로 일부를 점포처럼 사용해 온 사정은 인정되지만, 그렇다고 법적으로 배타적 권리가 생기는 것은 아니었다. 결국 법원은 가처분 신청을 기각했다. 기존 상인을 상대로 한 주장은 받아들여지지 않았다.
상대방은 필자의 의뢰인을 상대로 위의 가처분 외에 업무방해죄로 형사고소까지 해 둔 상태였다. 형사 재판이 절차상 시간이 더 걸렸고, 민사 가처분 사건에서 먼저 상대방의 권리가 없음을 확인하는 결론이 내려진 것이다. 이어서 열린 형사재판에서도 무죄가 선고됐다.
형사재판부는 민사에서 드러난 사정을 근거로 삼았다. 업무방해죄에서 보호대상이 되는 업무는 ‘직업 또는 계속적으로 종사하는 사무나 사업을 말하는 것으로서 그 업무의 기초가 된 계약 또는 행정행위 등이 반드시 적법해야 하는 것은 아니나 타인의 위법한 행위에 의한 침해로부터 보호할 가치가 있는 것’이어야 한다. 위의 가처분 사건에서 상대방의 공사업무가 권리 없는 업무임이 확인된 이상, 형사 사건에서 이를 달리 보기는 어려웠다. 민사 판단이 형사 무죄 판결에 결정적인 영향을 미친 것이다.
물론 민사와 형사는 별개의 절차다. 하나는 권리 분쟁을, 다른 하나는 범죄 성립 여부를 다룬다. 따라서 두 결과가 반드시 같은 방향으로 흐르지는 않는다. 그러나 권리 자체가 문제 되는 사건에서는 민사 판단이 형사 결과에도 그대로 이어질 수 있다. 이번 사건이 그 전형이었다. 민사사건에서 권리가 없다고 확인된 이상, 형사 사건에서 이를 보호가치 있는 업무로 인정할 수 없었다.
이 사건은 법이 어디까지 보호할 수 있는지를 보여준다. 시장에서는 오래된 관행이나 기대가 여전히 남아 있을 수 있다. 하지만 그것만으로는 권리가 생기지 않는다. 법은 권리의 실체가 분명할 때에만 움직인다. 권리가 없는데 억울함만 호소한다면, 민사에서도, 형사에서도 법의 도움을 받기 어려울 수 있다.
전통시장은 여전히 많은 사람들이 찾는 생활의 현장이다. 가게와 가게 사이의 경계는 때로는 흐릿하다. 그러나 법의 자리에서는 분명하게 갈라진다. 민사에서 권리 부재가 확인된 사건이 형사에서 무죄라는 결론으로 이어졌다. 법이 전하는 메시지는 단순하다. 보호가치 없는 권리는 보호하지 않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