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난사회, 퇴행정치

2024-09-26

좁은 땅에 과밀하게 살다 보니 한국인들은 스트레스가 많다. 같은 공간에 점점 많은 수의 쥐를 넣을수록 스트레스를 많이 받아 공격적이 된다는 실험결과도 있다. 압축성장, 빈부격차 심화도 국민들의 스트레스 수준을 높여 놓았다. 경쟁이 심하고, 주위를 의식하며 시달리다 보니 이제 ‘힐링’이 국민적 필수용품처럼 되었다. 서점의 매대마다 힐링 서적들로 가득하고 전국 곳곳 힐링에 좋다는 장소에는 사람들로 넘쳐난다. 한국인들은 지금 지쳐 있는 것이다.

정치의 수준은 결국 국민의 책임

비난·매도만으로 좋아지지 않아

관용·포용·배려의 시민 정신으로

퇴행정치의 악순환 끊어나가야

그렇긴 하지만 우리는 스트레스를 타인들에게 지나치게 풀려고 한다는 생각이 든다. 시민안전의 공공장치인 119전화가 폭언, 욕설, 골탕먹이기 대상이 되기도 하고, 사회갈등으로 인한 손실이 국방비의 6배에 이른다는 추산도 있다. 남에 대한 평가에도 인색하다. 국제경쟁력을 비교하는 각종 지표에서 객관적 통계에 의한 비교보다 해당 분야 대상자의 의견을 묻는 설문조사에 의한 비교에서 우리의 경쟁력은 특히 낮게 나타난다. 기업환경도 여러 객관적 지표를 비교할 때보다 기업인들에게 설문조사를 했을 때 다른 나라들에 비해 훨씬 더 나쁘게 나온다. 국민에게 정부기관, 군에 대해 신뢰를 물었을 때나 삶의 만족도에 관해 물었을 때도 마찬가지다. 좋게 말해 잣대가 높고, 나쁘게 말해 부정적이며 어딘가에 분풀이하고 싶은 마음 때문일 것이다.

정치인, 권력자들에 대해서도 그렇다. 민주사회란 국민이 정치인과 권력자들을 비난하며 스트레스를 푸는 사회라는 말도 있다. 욕먹고 비난받는 것이 그들의 역할이기도 하다는 것이다. 하지만 민주화 이후 우리나라 역대 대통령들이 겪은 지지율은 다른 민주국가들에 비해서도 매우 낮고 기복이 심했다. 역대 대통령의 동상이 세워진 공원이 하나도 없고, 화폐에 초대 대통령 초상화도 들어가 있지 않다. 정부수립 후 지난 76년간의 대한민국 발전은 기적에 가까운 것이었다. 제3세계의 어느 나라도 해내지 못한 산업화와 민주화, 초압축적 국가근대화로 선진국 진입을 이뤄냈다. 국민의 희생과 피땀이 없었으면 불가능했지만 그렇다고 역대 지도자들이 모두 잘못된 지도자들이었다면 이런 발전이 가능했겠는가. 공과 과가 혼재하고 개인적 편차가 있지만, 그들 역시 시대가 요구하는 바를 나름대로 하려고 애썼고, 해냈던 것이다.

정치가 국민에게 스트레스를 주는 것이 사실이지만 국민도 정치에 지나치게 스트레스를 풀려 하는 것 아닌가 돌아볼 필요도 있다. 우리 정치인들도 개개인의 면모를 보면 대부분 엘리트 과정을 거쳐온 사람들이다. 그런데 왜 그들이 그 정도의 정치밖에 못하고 있는가? 우리 국민과 언론의 책임은 없는가? 그들이 법안을 공부하고 준비하며 지역구 주민들의 민원을 들으러 다니는 것보다 서로 고함치고 싸우며 국회의사당에서 피켓 들고 서 있는 장면에 카메라 조명과 마이크가 집중되고 있지는 않나. 정치인은 언론의 조명을 받아야 당선도 되고 존재가치가 있게 된다. 국민과 언론이 주로 싸움질에만 조명을 맞추면 싸움꾼이 되어야 공천도 받고 당직도 맡으며 성장해 나가게 된다. 처음 한두 번은 내키지 않는 행동과 언어를 구사하더라도 자꾸 하게 되면 그것이 왜 굳이 나쁜지도 모르고 하게 된다. 한나 아렌트가 멀쩡한 독일 시민들이 나치 충성자가 되는 과정을 연구하며 주장했듯이 오히려 그것을 더 잘하는, 열심히 하는 쪽으로 방향을 잡는다.

정치인들이 경쟁하고 평가받는 방식이 바뀌고, 지도자에 오르는 과정이 바뀌어야 지금보다 좋은 정치가 될 수 있다. 이를 위해서는 정치제도, 정당 문화의 변화가 있어야겠지만 보다 기본적으로는 국민과 언론의 정치, 정치인을 다루는 시각에도 변화가 있어야 할 것 같다. 한국은 민주주의 전통과 역사가 일천하지만 우여곡절을 겪으면서도 나름대로 안정적으로 민주주의의 진전을 이루어 온 나라다. 인권과 자유, 공정하고 자유로운 선거, 견제와 균형 같은 중요한 민주주의 원리를 비교적 잘 확립해오고 있다. 그러나 지금보다 더 좋은 정치를 가지기 위해서는 시민의식의 발전이 무엇보다 중요해졌다.

정치가 실망스럽고, 희망이 잘 안 보이는 것은 사실이다. 그렇더라도 국민이 정치에 대해 비판만 하거나, 또는 막장 드라마 감상쯤으로 여기면 우리의 정치는 여기서 변하지 않을 것이다. 극우, 극좌 포퓰리즘, 팬덤 정치의 대두는 선진국들도 겪고 있는 현상이다. 빈부격차 확대와 갈등심화, SNS의 확산은 민주주의 정치를 점점 퇴행시키고 있다. 곳곳에 국가주의, 독재가 살아나기도 한다. 그러나 민주, 자유는 무엇과도 바꿀 수 없는 가치이다. 비난, 분노, 퇴행 정치의 악순환을 지속하게 하면 결국 국민이 피해자가 된다. 시민 각자가 다양성과 차이를 존중하며 타인을 포용하고 협력하는 시민 정신을 구현하려 노력할 때 우리 정치도 여기서 좀 더 나아질 수 있지 않을까. 결국 정치를 끌어가는 것은 국민이다.

조윤제 연세대 경제대학원 특임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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