홍어회·수육, 묵은지로 돌돌 말아 쏙~ 부산 막걸리와 궁합

2024-11-22

맛난 음식, 맛난 우리술

건국대학교 앞 양꼬치 골목은 중국과의 교류가 활발해지던 1990년대 초 조선족을 포함한 중국인이 서울에서 가장 먼저 자리 잡은 곳 중 하나다. 지금도 양꼬치를 필두로 훠궈, 마라탕, 꿔바로우, 도삭면 등을 파는 중국 식당이 거리 양쪽으로 빼곡히 밀집해 있어 여기가 한국이 맞나 싶을 만큼 분위기, 사람, 언어 모두 중국 분위기가 물씬 풍긴다.

이처럼 이국적인 골목에서 1989년부터 35년 동안 한자리를 지키며 가장 한국적인 안주 ‘홍어삼합’을 대표 메뉴로 인근 수많은 중국음식점을 압도(?)해온 가게가 있으니 바로 ‘안주나라’다. 지금은 평범하게 느껴지는 상호명도 창업부터 지금까지 식당을 운영하고 있는 안영혜(65) 대표의 성을 사용해 작명한 것으로 당시에는 동명의 가게가 없었다고 한다. 분식집으로 유명한 ‘김밥천국’처럼 상표등록이 안 돼 있어 누구나 사용할 수 있는 것과 비슷한 경우다.

‘안주나라’ 건물 앞만 지나가도 홍어의 발효된 냄새가 솔솔 풍겨온다. 사전지식이 없다면 이 골목을 주름잡고 있는 중국인들은 매우 괴이하게 생각할지도 모르겠다. 이 집은 새벽 3시까지 영업하는 대신 점심 영업은 안 한다. 때문에 일반 식사메뉴가 없고 오로지 홍어삼합과 술을 먹기 위해 방문하는 홍어전문점이다. 홍어삼합 주문은 기본이고 홍어애탕, 홍어라면, 백합탕은 추가주문이 가능하다.

매우 단출한 듯 보이지만 홍어의 본산인 남도에 내려가서도 맛보기 힘든 홍어삼합 스타일을 경험할 수 있다. 일단 자리에 앉으면 전북 군산에서 공급받는 홍어를 직접 삭힌 회가 먼저 나오는데 의외로 건물 앞에서 풍기던 냄새에 비해 그리 많이 삭히진 않았다. 홍어 초심자도 먹을 수 있을 정도다. 전남 목포가 고향인 안 대표는 “어린 시절 동네에서도 홍어를 그렇게 강하게 삭혀 먹진 않았다”고 한다. 대학가 앞이고 손님 층도 젊은 층이 많다보니 세월이 흐르면서 지금 정도의 삭힘으로 조절된 것도 이유가 아닐까.

다음으로 이 집의 홍어삼합을 가장 개성 있게 만들어주는 묵은지 배추김치와 미나리, 풋고추, 마늘, 초고추장, 참기름이 테이블을 채운다. 안 대표는 굳이 티를 안냈지만 식재료들이 모두 만만치 않다. 충북 단양에서 남편이 직접 고랭지배추 농사를 짓고, 고춧가루를 위한 고추도 직접 또는 동네에서 선별해 조달 중이다. 애탕에 들어가는 된장은 직접 만들고, 참기름은 수십 년간 고정적으로 거래해 온 방앗간이 있다. 그 외 여러 농산물도 대부분 남편이 직접 재배해서 서울로 공수해준다. 더욱이 이집의 숨은 히어로인 묵은지 배추김치는 식당과 인근 여기저기 숙성중인 냉장고만 십여 개라니 놀라울 뿐이다.

사실 이 집은 먹는 방법도 놀랍다. 먼저 나온 홍어회와 김치 등을 몇 점 집어먹고 있으면 잠시 뒤, 안 대표가 먹기 좋은 사이즈로 잘라 갓 삶은 한돈 오겹살 수육 접시를 들고 테이블에 앉는다. 아주 살갑게 손님을 대하는 편은 아니지만 은근하게 친절함이 있는 안 대표는 숙련된 솜씨로 묵은지 배추김치를 먹기 좋은 사이즈로 북북 찢은 다음 술상 위 홍어회, 오겹살 수육 등 모든 재료를 김치로 돌돌 말아 새콤달콤한 초고추장과 구수한 참기름을 살짝 더한 후 하나하나 직접 손님 입에 쏘옥 넣어준다. 아직 따뜻함이 남아 있는 오겹살과 적당히 삭은 홍어회 그리고 잘 삭힌 묵은지가 함께하는 삼합은 정말 조화롭고 이에 미나리, 풋고추, 마늘 그리고 양념의 조화로움 또한 화려함을 더한다.

보통 삼합은 손님이 직접 개별 젓가락으로 음식을 한꺼번에 모아 양념에 찍어 먹는 게 일반적인데 이곳 삼합은 하나의 또 다른 요리처럼 완벽한 조건에서 맛볼 수 있도록 안 대표만의 시스템을 만들었다고 볼 수 있다. 더욱이 직접 말아서 어머니 같은 분이 입에 넣어준다는 한국인의 정을 더했다. 남도를 수백 번 이상 다녀봤지만 처음 경험하는 홍어 섭취법이다! 여기에 자투리 홍어살과 애(간)가 가득 들어간 홍어애탕을 곁들이면 홍어 매니아들은 흥이 절로 날 수밖에 없다.

이 멋진 홍어삼합과 정말 환상적인 궁합을 자랑하는 막걸리 또한 이 집에 있다. 바로 부산 ‘금정산성 막걸리(사진)’다. 500년 넘는 역사를 지켜오며 마을에서 직접 디뎌 빚는 금정산성 누룩을 사용하는데 2013년 막걸리 부문에선 최초로 대한민국 식품명인이 된 유청길(65) 대표가 만든다. 강한 산미와 적당한 단맛이 어우러지고 일반 막걸리에 비해 30% 정도 높은 알코올 도수와 농밀함이 특징이다. 맛이 강하거나 개성이 도드라지는 안주에도 전혀 밀림 없이 조화를 이룰 줄 아는 편인데, 사실 시중에서 홍어삼합과 금정산성 막걸리를 함께 취급하는 경우는 드물다. 홍어는 주로 호남에서 즐겨 먹고, 금정산성 막걸리는 부산의 술이다 보니 그 접점이 애매하다.

안 대표에게 어떻게 이 조합을 알게 됐는지 물으니 숨은 공신이 있었다. 바로 안 대표의 아들 임상수(38)씨다. 서울 성북구 장위동에서 전통주전문점 ‘지화자’를 운영하고 있는데 취급하는 종류가 100여종에 달한다. 전통주 소믈리에 자격도 취득하고 전국 양조장들을 다니며 공부 중인데, 2022년 가게를 오픈하면서 어머니께 전수받은 비법 양념으로 본인이 직접 메뉴를 개발하고 이에 어울리는 막걸리를 페어링 하다가 어려서부터 먹었던 어머니의 홍어삼합과 금정산성 막걸리의 절묘한 궁합을 찾아냈다고 한다.

임 대표는 “남도 대표음식 홍어삼합에 부산 대표 술 금정산성막걸리라니 멋지지 않냐?”며 이 궁합의 매력을 이렇게 소개했다. “금정산성의 눅진한 누룩향이 콤콤한 홍어 맛을 중화시켜주면서 뒷맛의 알싸함은 좀 더 올려주는 느낌이 참 좋았어요. 저희 어머니 묵은지와 만났을 때 막걸리 산미는 부드러워지고, 쌀 향의 고소함은 돼지고기와도 시너지가 잘 일어난다고 생각했죠.”

이승훈 전통주전문가. 전통주를 마시고 가르치고 알리고 연결해주는 전통주 업계 대표 열혈일꾼. 사단법인 한국막걸리협회 초대 사무국장을 지냈고, 국내 최대규모 전통주전문점 ‘백곰막걸리’를 운영했다. 현재 경희사이버대학교 외식조리경영학부 겸임교수를 비롯해 막걸리학교, 한식진흥원 등 다양한 교육기관에서 전통주 강의 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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