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스페인과 포르투갈에서 최근 발생한 대규모 정전 사태를 계기로 태양광 설비가 지닌 보안 취약성에 대한 우려가 커지고 있다. 특히 태양광 인프라 대부분을 중국산 부품에 의존하는 유럽이 ‘에너지 안보’ 리스크에 직면했다는 지적이다.
26일 닛케이아시아에 따르면 지난 4월 말 스페인과 포르투갈을 덮친 대규모 정전의 정확한 원인이 조사 중인 가운데 최소한 유럽의 전력 시스템이 외부 공격에 취약하다는 점은 이번 사태로 명확해졌다는 평가가 나오고 있다.
실제로 유럽은 현재 중국 화웨이 등에서 제조한 태양광 인버터와 패널에 크게 의존하고 있다. 국제에너지기구(IEA)에 따르면 전 세계 태양광 부품의 약 80%, 일부 핵심 부품은 95% 이상이 중국산이다. 이 중 인버터는 태양광 모듈에서 생산된 전기를 전력망에 맞게 변환·전송하는 핵심 장비로, 원격 접속이 가능해 사이버 공격의 주요 표적이 될 수 있다. 로이터통신은 최근 중국산 인버터에 수상한 통신 기기가 탑재된 것이 발견돼 미 에너지 당국이 중국 제품 사용과 관련해 조사에 나섰다고 보도하기도 했다. 이와 관련해 노르웨이 에너지 리서치 기관 리스타드의 마리우스 바케 태양광 담당 부사장은 “중국산 인버터를 통한 원격 접근은 유럽 전력망 전체에 심각한 영향을 미칠 수 있다”고 경고했다. 유럽 태양광 업계 로비단체인 솔라파워 유럽이 시뮬레이션한 결과 3GW 규모의 표적 공격만으로도 유럽 전력망이 상당한 타격을 입을 수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바케 부사장은 리투아니아처럼 일정 규모(100㎾) 이상의 발전소 인버터 원격 접속을 제한하는 법안을 EU 전역에 확대 적용할 필요가 있다고 주장했다.
프랑스 싱크탱크 IFRI는 태양광 설비의 ‘자급자족’이 아닌 ‘회복력’에 방점을 찍어야 한다고 강조한다. 특정 국가에 과도하게 의존하지 않는 ‘공급망 회복력’을 확보하는 것이 현실적 목표라는 것이다.
한편, 유럽 내 인버터의 약 3분의 1을 공급하는 중국 기업 화웨이는 지난달 28일, EU 집행위의 지침에 따라 업계 로비단체인 ‘솔라파워유럽’에서 제명됐다. 최근 다수의 화웨이 임원들은 유럽 의회 의원들과의 부적절한 관계 및 뇌물 수수 혐의로 수사를 받고 있으며, 일부는 이미 기소됐다. EU는 지난해에도 중국 태양광 패널 제조업체들의 불공정 경쟁 관행에 대한 조사에 착수한 바 있으며, 그 여파로 일부 중국 기업들은 루마니아의 공공 입찰에서 스스로 물러나기도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