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크라이나 전쟁에서 가장 많이 쓰이는 무기가 드론이다.
지표면과 가까운 공간부터 고고도에 이르는 광활한 공역에서 다양한 용도의 드론이 날아다니며 상대방을 엿보거나 공격하고 있다.
드론 위협이 심각해지자 드론을 원거리에서 탐지·식별해서 공격하는 안티 드론과 전자전의 위력도 한층 강력해지고 있다.
이같은 위협을 회피하고자 다양한 활용법과 실험적인 개념을 지닌 드론이 등장하는 모양새다.
새처럼 자연스러운 날갯짓과 활공을 통해 비행하는 조류형 생체모방 드론도 이같은 추세에 힘입어 개발이 지속되고 있다.
조류형 드론은 인공지능(AI)이 포함된 광학장비나 레이더를 기만해서 목표 지점까지 비행할 수 있어 안티 드론 체계를 무력화할 수 있다는 평가를 받는다.
국내에서도 방산 스타트업인 팔월삼일에서 조류형 자폭드론인 세이렌을 개발, 중동에 수출하는 성과를 올려 주목을 받는 모양새다.
◆드론이 새처럼 날갯짓을 한다
지난 2019년 창업한 팔월삼일이 개발한 세이렌은 고정익과 회전익으로 구분되어 있던 드론 체계를 뒤바꿨다는 평가를 받는다.
기존 드론은 외형이 서로 비슷하고 비행 경로가 획일적이어서 AI카메라와 레이더에 쉽게 탐지되는 문제가 있었다.
세이렌은 이같은 문제점을 해소하기 위해 검독수리와 유사한 특징을 적용했다.
검독수리 날개 길이(2m)에 맞춰 기체 폭을 설정했고, 속도도 45~100㎞ 정도로 낮게 설정해서 검독수리와 최대한 비슷하게 인식되도록 했다.
이륙 단계처럼 고출력이 필요한 구간에서는 프로펠러를 사용해서 속도와 출력을 높이지만, 고도 500m 상공에 도달해서 수평 비행을 할 때는 엔진을 끄고 대형 조류처럼 날갯짓을 하면서 활강한다.
이후 최종 단계에서는 프로펠러를 다시 사용해 속도를 높이며 표적에 돌입한다.
이륙할 때는 손으로 던지는 방식을 사용하며, 착륙할 때는 그물로 기체를 회수한다. 기체에는 카메라가 장착되어 있어서 1인칭 시점(FPV) 드론 비행도 가능하다.
맹동주 팔월삼일 대표는 지난 26일 세계일보와의 인터뷰에서 “드론이 접근하면 카메라로 정체를 파악하는데, 이때 AI 판독 알고리즘은 날갯짓 여부를 새와 드론을 구분하는 중요한 판독 기준으로 본다”고 말했다.
이어 “세이렌은 새처럼 날갯짓하며 위아래로 활강해 적 탐지자산을 기만, 적지 종심에 천천히 접근한다. 첨단기술도 기만하는 컨셉”이라고 설명했다.
세이렌은 중량이 2kg 이하로서 1㎏을 추가로 탑재할 수 있다. 조립식 기체라 도수 운반에도 편리하다.
특전사를 비롯한 특수전부대 팀원들이 적진에 침투할 때 세이렌을 가지고 간다면, 표적에서 3∼4㎞ 떨어진 곳에서 세이렌을 띄워서 공격할 수 있다.
리튬이온 배터리를 사용해 30~60분 동안 비행이 가능하며, 위성항법장치(GPS)를 사용해서 비행하면 30㎞까지 날아간다.
탄소섬유로 제작된 기체는 강도가 높고 초속 5m의 바람도 견딜 수 있다. 레이더 반사면적은 0.03에 불과해 레이더에 포착될 가능성도 낮다.
이 정도 수치는 과거 한국 공군에 제안됐던 F-15SE보다 훨씬 낮고, F-35A 스텔스기보다는 약간 높은 수준이다.
수직꼬리날개는 투명한 재질로 만들어서 지상에서 포착될 위험을 낮추는 시각적 스텔스 효과도 추가됐다. 향후에는 프로펠러도 투명 재질로 교체할 예정이다.
세이렌은 기본적으로는 자폭 공격에 초점을 맞추고 있다. 한국군에서는 자폭보다는 정찰 용도로 사용하기를 희망하는 것으로 알려졌다.
다만 고정익 무인기나 수송용 드론 도입에 초점을 맞추고 있는 한국군에 세이렌이 단기간에 전면적으로 도입될 수 있을지는 불확실하다.
대신 세이렌은 해외에서 많은 주목을 받고 있다. 최근 아랍에미리트(UAE)에 수출이 이뤄졌고, 미 육군 미래사령부에서도 관심을 보이고 있다. 전쟁 중인 우크라이나와 더불어 태국과도 논의가 이뤄지고 있다.
이같은 관심에 힘입어 팔월삼일 측은 세이렌의 단가를 낮추는 등의 작업을 통해 기체 경쟁력을 한층 끌어올릴 방침이다.
최근 우크라이나 전쟁 등에서 드러나는 드론 운용 형태는 고가의 드론 1대를 띄워 정밀타격하는 것보다는 저렴하고 단순한 드론을 10대 띄우는 물량공세로 임무 성공률을 최대한 높이는 방향으로 나아가고 있다.
이는 드론의 대당 가격이 매우 낮아야 하며, 단기간 내 대량 생산이 이뤄져야 가능한 방식이다.
이를 위해 팔월삼일 측은 1주일에 70∼80대의 세이렌을 만들 수 있는 수준까지 생산능력을 높이는 한편 대당 단가도 1000만원 이하로 낮추는 방안을 추진할 방침이다.
우크라이나 등에서 쓰이는 자폭 드론이 먼 거리를 비행하면서도 가격은 매우 저렴하다는 점을 감안한 조치로 풀이된다.
◆중국 등에서도 조류형 드론 운용
해외에서도 조류의 특성을 모방한 드론이 개발·운용되고 있다. 고정익과 회전익 드론 기술이 빠르게 발전하면서 안티 드론 기술도 발전을 거듭하고 있다.
레이더 반사 면적이 매우 작은 드론은 AI 카메라와 레이더를 결합한 장비로 탐지하는데, 드론은 조류와 외형적으로 큰 차이가 있어서 AI가 쉽게 구분할 수 있다.
이는 드론이 전선에서 멀리 떨어진 적지 내륙까지 침투하는 것을 방해하는 결과로 이어진다. AI를 기만해서 적지에 접근할 수 있는 조류형 드론의 필요성이 커진 이유다.
민간용으로도 조류형 드론은 상당한 가치가 있다. 세이렌의 경우 하늘을 날아가면 대형 맹금류는 자신의 영역을 침범한 것으로 보고 따라온다. 소형 조류는 천적으로 인식하고 회피한다.
공항에서 이착륙하는 비행기는 새와의 충돌로 인한 사고 위험이 있다. 새가 엔진에 빨려들어가면 중대한 항공사고로 이어질 수 있다.
미래에 실용화될 도심항공교통(UAM)에서도 새와의 충돌 문제는 중요하게 여겨진다.
새를 향해 총을 쏘거나 높은 수준의 소음을 내는 기존 대응 방식은 논란의 여지가 있다. 유럽이나 미국처럼 친환경 이슈가 중요한 지역에선 더욱 그렇다.
대형 맹금류의 외형과 비행 방식을 모방한 조류형 드론은 자연의 천적 관계를 이용한다. 항공기와 UAM 안전비행에 치명적인 위협을 줄 수 있는 유해조류를 친환경적 방식으로 퇴치할 수 있다.
중국에선 실제 조류와 구분하기가 쉽지 않은 드론이 등장한 상태다.
최근 중국군 특수부대가 참새 모양의 드론을 사용하는 모습이 공개되기도 했다.
기존 드론보다 비행거리나 탑재중량 등이 빈약하지만 조류와 유사한 외형과 작은 크기 때문에 특수전 부대가 정찰 임무를 수행하는 데 적절하다는 평가다.
홍콩 사우스차이나모닝포스트는 “중국 5개 성·자치구에 이미 조류형 드론이 도입됐다”며 “신장위구르자치구에서 반체제 인사 감시에 투입됐을 가능성이 있다”고 전했다.
독일 페스토에선 갈매기의 특성을 모방한 스마트버드 드론을 만들었다. 갈매기처럼 최소한의 날갯짓으로 장거리 비행이 가능하다.
탄소 섬유, 유리 섬유 등을 사용해서 무게를 450g으로 낮춘 덕분에 민첩한 기동이 가능하다.
비행 중에는 소프트웨어가 날개 위치와 비틀림 수준, 배터리의 상황 등을 지속적으로 기록하고 실시간으로 점검한다. 이를 통해 매개 변수를 새로운 상황에 맞게 조정하면서 비행 안전성을 확보한다.
미국 국방고등연구계획국(DARPA)도 제자리 비행, 저속 비행 등 벌새의 특성을 재현한 허밍버드 정찰 드론을 에이로바이런먼트와 함께 개발한 바 있다.
무선 조종 방식인 허밍버드는 추진기나 프로펠러 없이 실제 벌새처럼 날개를 퍼덕이며 날아간다. 탑재된 카메라로 영상을 실시간으로 전송할 수 있으며 창틀에 앉아서 실내를 감시하는 것도 가능하다.
무선으로 날개짓 속도를 조종하는 기능도 갖췄다.
우크라이나 전쟁을 계기로 재조명되고 있는 드론의 효과는 세계 각국으로 하여금 드론 관련 기술 개발에 적극 나서도록 하는 요인이 되고 있다.
드론 분야에서 후발주자로 분류되는 한국으로서는 다른 나라들이 이미 개발한 드론으론 글로벌 시장에서 경쟁력을 갖추기가 쉽지 않다.
기존 제품과는 차별화되는 기술을 갖춰야 세계 시장에서 주목을 받을 수 있다. 이같은 점에서 세이렌의 기술은 주목할 만하다는 평가다.
고정익·회전익 드론과는 차별화된 특징을 지닌 조류형 드론에 정부와 업계가 더 많은 관심을 갖고 투자를 해야 한다는 지적이 나오는 이유다.
박수찬 기자 psc@segye.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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