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엇이 지금 우리에게 큰 주제인지 한 눈에 알게 하는 축제로 자리매김했으면 좋겠습니다. ”
28일 부산광역시 벡스코에서 처음 시작을 알린 제1회 부산국제아동도서전의 대표 연사로 자리를 빛낸 이수지 그림책 작가는 언론사 공동 인터뷰에서 이 같이 운을 뗐다. 평소에 도서전을 즐겨 찾는 이 작가는 매년 이탈리아 볼로냐에서 열리는 국제 도서전을 특히 좋아한다. 그는 “볼로냐 국제 도서전은 가장 핫한 작가들이 모여 해당 시점의 이슈가 무엇인가를 고민하는 자리”라며 “참석하는 것만으로 무엇이 지금 우리에게 중요한 주제인지를 알 수 있는 축제인 만큼 부산국제아동도서전도 이 같은 모습으로 성장했으면 좋겠다”고 강조했다. 이 작가는 2022년 한국 작가 최초로 ‘아동문학계의 노벨문학상’으로 불리는 ‘한스 크리스티안 안데르센상’ 일러스트레이터 부문을 수상하며 세계적인 그림책 작가로 자리매김했다.
인터뷰에 앞서 이날 이수지 작가가 진행한 청중 대상 강연에는 미리 준비한 110개의 좌석이 모두 찼다. 선착순 안에 들지 못한 이들은 강연장 울타리를 겹겹이 둘러싸는 진풍경이 벌어졌다. 올 초 이 작가가 출간한 산문집 ‘만질 수 있는 생각’의 트레이드마크가 된 알록달록한 겹겹의 레이어가 떠오르는 모습이었다. 이 중 70% 이상이 어른 여성이었는데 작가의 작품에 대한 작은 힌트로도 모든 작품을 알아낼 정도로 충성도가 높은 팬들이었다. 평일인 이날 자녀를 조퇴시키고 함께 왔다며 해맑게 웃는 어른 독자도 있었다. 유독 많은 어른 독자들이 따른다. 어른들이 그의 ‘글 없는 그림책’에 열광하는 이유는 무엇일까.
'어린이라는 것이 어떤 것이다'라고 정의해 그에 맞춰 작업하지 않는다는 그에게는 어린이든, 어른이든 동반자로서 어떤 이야기든 나눌 수 있는 존재다. 이 작가는 “글이 있으면 읽으면서 독자들이 바로 흡수하지만 글이 없을 때는 자신만의 단서를 만들고 이를 가지고 생각하는 시간이 필요하다”며 “처음에는 얼른 이해가 되지 않더라도 다시 읽으며 잠깐의 머뭇거림 후에 깨달음이 찾아오는데 어른들의 경우 더 많은 것을 느끼는 것 같다”고 언급했다.
어른 독자가 늘면서 그림책 작가들이 예술성을 발휘할 수 있는 채널도 늘어나고 있다. 그는 독립 그림책 출판 프로젝트인 ‘바캉스 프로젝트’를 진행하는데 참여 작가가 19명까지 늘었다. 이 작가는 “보통 작가가 한 작품을 완성하려면 2~3년이 걸리는데 당장 떠오르는 영감을 소화할 수 있는 곳도 필요하다”며 “조금은 완성도가 떨어지더라도 기발한 그림책을 즐기며 사주는 어른 독자들이 늘어나 새로운 문화가 형성되고 있다”고 말했다.
이 작가의 책은 글밥이 없어 ‘읽을 수 없는 책’으로 불린다. 하지만 그가 그림책을 통해 주는 정보량은 적지 않다. 색채마저도 하나의 이야기 요소로 여긴다. 이를테면 ‘그림자 놀이(2010)’의 경우 색채는 검정과 노랑만 쓰이는데 창고라는 일상의 공간 속에서 아이의 상상력이 닿는 순간 어두운 공간이 노랗게 변한다. 노란색이 비추면 일상적인 물건은 아이의 상상력을 담은 새로운 존재로 변신하는 방식이다.
우리나라 동화책에 대한 세계적인 인식이 높아지고 있지만 정작 그림책 작가들의 ‘밥벌이’는 갈 길이 멀다는 게 그의 생각이다. 그는 시민이 도서관에서 그림책을 대여할 때마다 일정 비율의 보상이 작가에게 돌아가는 ‘공공 대출 보상제’ 등 창작자들을 위한 보상제도가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그는 “본업만 해서 먹고 살 수 있는 창작자는 열 손가락이 아니라 두 손가락 안에 드는 수준”이라며 “창작자를 소중히 생각하고 잘 키울 수 있는 제도가 뒷받침 됐으면 좋겠다”고 강조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