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누가 국가대표 비건 기업이 될 상(像)인가”

2024-07-06

국가대표 식품기업 글로벌 비건시장 정면 도전

진짜 같은 고기만두·바르는 홍삼·식물성 순대

한국 독자 기술력 국내 넘어 해외 공략 가속화

‘비건(Vegan)’ 하면 채식주의자가 가장 먼저 떠오르던 시절이 있었습니다. 삼겹살과 치킨 등 고기를 좋아하는 한국인에게 비건이라는 단어는 낯설고 생소할 수밖에 없었죠.

그런데 언제부턴가 비건 식품이 누구나 즐길 수 있는 건강한 음식으로 다가왔습니다. 채소, 과일, 해초 등 100% 순식물성으로 만든 비건 식품이 밥상에 오르게 된 데는 자타공인 ‘국가대표 식품기업’의 공이 큽니다.

업계 1위를 달리는 CJ제일제당과 KGC인삼공사 등 대표 식품기업들은 MZ세대 사이에 가치소비와 헬시플레저(Healthy Pleasure) 열풍이 불자 촉각을 곤두세웠습니다. 지구 환경을 지키면서 자신의 건강한 삶도 챙기는 트렌드를 목도했고 미래 고객을 겨냥해 비건 시장에 본격적으로 뛰어들었지요. 국가대표답게 이제는 국내를 넘어 해외 시장까지 넘보고 있습니다.

■홍삼을 먹지 않고 바른다

한낮 더위가 30도를 웃도는 폭염에 긴 장마까지, 올해는 그 어느 때보다 힘든 여름나기를 해야 할 것 같습니다. 건강을 잘 챙겨야 할 텐데요. 한국인의 홍삼 정관장은 부모님을 위한 효도 선물로, 성장기 자녀를 위한 건강기능식품으로 누구나 한 번쯤은 만났을 겁니다.

그런데 홍삼을 먹지 않고 바르는 젊은이들이 늘고 있다고 합니다. KGC인삼공사가 올해 초 고기능 비건 뷰티 브랜드 ‘랩 1899’를 론칭했기 때문입니다. 세계적인 프랑스 이브(EVE) 비건 인증과 독일 더마테스트 엑셀런트 평가까지 마쳤다고 하는데요. 동물성 원료와 동물 실험을 배제한 ‘비건 뷰티’는 MZ세대의 가치소비 트렌드로 호응을 얻고 있습니다.

하지만 “정관장 홍삼이 화장품으로 나왔다”니 고개가 갸우뚱해집니다. 문득 기내 면세점에서 만났던 ‘동인비’라는 화장품이 떠올랐습니다. 2011년 정관장에서 만든 프리미엄 화장품인데 어르신들에게 특히 인기를 끌고 있지요.

피부를 위한 홍삼의 역사를 찾아보니 100여년 전인 1900년대 초로 거슬러 올라갑니다. 당시 정관장의 대표 제품인 홍삼정은 먹을 수 있는 ‘내용홍삼정’, 외상치료용인 ‘외용홍삼정’과 함께 목용용으로 사용하는 ‘옥용홍삼정’까지 있었다고 합니다.

KGC인삼공사는 바르는 홍삼 제품이 존재했다는 점에 착안해 2008년부터 홍삼의 피부 항노화(안티에이징) 효과와 피부장벽 강화 효과를 찾았고 화장품으로 개발하기 시작했습니다. ‘랩 1899’는 ‘동인비’와 달리 글로벌 MZ세대를 겨냥해 도전장을 던진 비건 브랜드입니다. 기초 화장품(3종)과 핸드, 바디로션 등 총 5가지 제품으로 공격 행보에 나서고 있습니다.

그렇다면 ‘1899’라는 숫자는 무엇을 의미할까요. 비로 KGC인삼공사의 창립 연도라고 합니다. 1899년부터 이어져온 KG인삼공사의 125년 홍삼 연구 노하우를 오롯이 담아냈다는 의미를 브랜드명에 새겼다고 합니다.

‘랩 1899’는 부드러우면서도 은은하고 촉촉한 진생 콜라겐이 담긴 저자극성 화장품으로 소개됩니다. 홍삼에만 존재하는 진세노사이드 5종을 특허받은 추출법으로 담아내 피부 보습과 피부 탄력은 물론 주름 개선 효과까지 검증받았다고 합니다.

KGC인삼공사 관계자는 “지난 2월 미국에서 ‘레드 진생 펩타이트 세럼’을 사전 출시했는데 목표 금액 대비 4배가 넘는 펀딩에 성공했고 5월에는 일본에도 진출했다”면서 “한국인의 자존심을 건 국가대표 비건 화장품으로 세계 무대를 장악하겠다”고 말했습니다.

글로벌 시장조사회사 그랜드뷰리서치에 따르면 전 세계 비건화장품 시장 규모는 2021년 151억7000만달러(약 20조9512억원)으로 2030년까지 연평균 6.3% 성장할 것으로 예상되고 있습니다.

■‘비건 순대’를 아시나요

패스트푸드업계 신흥 강자로 떠오른 신세계푸드는 비건에 진심인 듯합니다. ‘노브랜드’ 버거로 2019년 젊은층을 공략하며 국민 대표버거로 이름을 알리더니 2021년에는 식물성 대안육 ‘베러미트(Better Meat·2021년)’ 비건 브랜드를 론칭했지요.

2022년에는 세계 최초로 100% 식물성 런천 캔햄을 내놨고 지난해에는 100% 순식물성 패티를 넣은 베러버거를 선보여 눈길을 끌었습니다.

지난해 9월에는 서울 강남 한복판 스타필드 코엑스몰에 플래그십 스토어 ‘유아왓유잇(You are What you Eat)’도 열었습니다. 누구나 부담없이 비건 음식을 경험할 수 있도록 채식 공간을 마련했지요.

반응은 뜨겁습니다. 100% 식물성 비건 음식과 저탄소 메뉴 등 샌드위치와 샐러드를 비롯해 20여가지 음식을 선보이는데 젊은 여성과 외국인의 발걸음이 부쩍 늘면서 전체 고객의 30%를 차지하는 등 ‘핫플 맛집’으로 화제를 모으고 있습니다.

‘유아왓유잇’은 식물성 간편식도 잇따라 내놓고 있습니다. 고기가 빠지면 맛을 내기가 힘든 100% 식물성 재료로 만든 트러플 짜장면, 미트볼 토마토 파스타, 아보카도 햄 포케볼, 스파이시 카프레제 리조또 등은 물론 저탄소 식물성 핫도그·브라우니, 오트 라떼 등까지 언제 어디서나 식물성 대안 음식을 즐길 수 있게 된 것이지요.

더 놀랄 만한 일도 생겼습니다. 비건인에게 ‘금단의 영역’으로 통하는 순대를 지난 3월 국내 최초로 순식물성 볶음으로 구현한 것인데요. 핵심 재료인 돼지 창자와 선지를 빼고 대신 카카오 분말을 넣은 매콤한 누드 순대로 개발했는데 본연의 맛과 쫄깃한 식감을 제대로 살렸다는 평을 받고 있습니다.

그간 ‘올반’ 브랜드로 쌓아온 메뉴 개발 노하우를 비건 간편식으로까지 확대한 결과일까요. 편의점은 물론 유명 온라인몰에서도 화제를 모으고 있습니다.

신세계푸드 관계자는 “하반기에는 가루쌀로 만든 대안 우유, 오트로 만든 대안치즈, 오트크림 등까지 대안 유제품을 적극 육성할 방침”이라며 “미국에 2022년 설립한 대안식품 전문 자회사 ‘베러푸즈’를 통해 글로벌 시장 공략도 가속화할 계획”이라고 강조했습니다.

신세계푸드는 올해 초 미국 벤처캐피탈 클리브랜드 애비뉴(Cleveland Avenue)의 투자를 유치하는 등 미국 시장에서 확실한 성과를 내겠다는 목표를 세우고 있습니다.

1995년 신세계그룹 급식사업부에서 분사한 신세계푸드는 주로 급식, 식자재 유통 분야에서 사업을 해왔었지요. 2014년부터 종합 식품기업으로 변신을 꾀하며 식품, 베이커리, 외식 등 사업을 확장했고 식품연구소 설립, 생산 공장과 자동화 물류센터 건립 등 대규모 투자를 통해 글로벌 입지를 탄탄하게 굳혀가고 있습니다.

■세계 비건시장 호령하는 K푸드 최강자

비건 하면 국내 1위 식품회사인 CJ제일제당을 빼놓을 수 없습니다. 2021년 론칭한 식물성 전문 브랜드 ‘플랜테이블’을 앞세워 글로벌 영토 확장에 나서고 있기 때문입니다.

지금까지 만두는 물론 주먹밥·김치·국물요리·캔햄 등 9가지 순식물성 제품들을 내놨는데요. 유럽 비건 인증(V라벨) 획득과 함께 국내를 넘어 해외에서도 날개돋힌 듯 팔리고 있다는 소식입니다.

현재 미국, 영국, 독일, 호주 등 40여개국에 ‘비비고’ 브랜드로 수출되고 있는데 가장 인기있는 제품은 역시 만두라고 합니다. 지난해 말 기준 해외에 118억원(누적 판매량 800만개)어치를 팔아 전년 대비 2.4배 성장했고 올 상반기에도 전년 동기 대비 수출이 74.8%나 증가했다고 합니다.

성공 비결은 연구·개발 능력에 있습니다. 수원 광교 신도시에 있는 1만2000평 규모의 CJ블로썸파크에 가면 CJ제일제당이 독자적으로 개발한 식물성 단백질(TVP·Textured Vegetable Protein)을 만날 수 있는데요. TVP는 대두·완두 등에서 추출한 단백질을 압착해 고온·고압 과정을 거쳐 고기와 비슷한 조직감을 가진 소재입니다.

‘100% 식물성 원료로 만든 맛있는 미식, 고기는 없는데 풍부한 육즙에 고소함까지 더해진 대체육 식품’이라는 슬로건 아래 150여명 연구원들이 고기의 맛과 식감·탄력·색상에 따라 다종다양한 TVP를 개발하고 있습니다.

물론 쉬운 일이 아닙니다. 만두에 들어가는 고기는 감칠맛이 나야 하고, 장조림은 찢어먹는 맛이 일품이어야 하며 두툼한 스테이크는 육즙이 풍부해야 하기 때문이지요. 국·탕·찌개 등에 들어가는 고기의 모양과 크기, 맛과 식감에 색상은 또 어떤가요. ‘진짜 고기’를 대체하는 TVP를 개발하고 있으니 왜 식품을 과학이라고 하는지 CJ제일제당을 보면 알 수 있지요.

CJ제일제당은 식물성 유제품 브랜드 ‘얼티브(Altive)’도 갖고 있습니다. 사내 벤처를 통해 MZ세대 직원들의 참신한 아이디어를 사업화했는데요. 2022년 6월 론칭 이후 지금까지 비건 커피·햇반·맛밤 등을 내놨는데 특히 1년 전 선보인 얼티브 프로틴은 누적 판매량 214만개를 돌파했다고 합니다.

사찰식도 있습니다. 지난해 대한불교조계종과 손잡고 고기와 오신채(五辛菜)를 넣지 않은 사찰식 왕교자를 출시했는데 호응을 얻자 한 달 전에는 팥죽, 식물성 장조림 등 신제품도 내놨지요. 조만간 죽, 다과 제품 등까지 선물 세트로 만날 수 있도록 사찰식 라인업을 지속적으로 확대하겠다고 합니다.

제과업계 1위인 롯데웰푸드는 한 달 전 선보인 식물성 디저트 브랜드 ‘조이(Joee)’로 비건 열풍을 이어가고 있습니다. 얼마 전 식물성 원료를 100% 사용한 스낵과 젤리 4종을 내놓으며 신호탄을 쐈지요. 특히 국내 최초로 비건 인증(2020년)을 받은 ‘나뚜루’ 아이스크림을 넛츠와 아몬드 등을 넣은 신제품으로 리뉴얼해 눈길을 끌고 있습니다.

롯데웰푸드는 향후 과일과 초콜릿을 소재로 만든 나뚜루 비건 아이스크림도 추가로 선보일 예정이라고 합니다.

■누가 국가대표 비건 기업이 될 상(像)인가

생태계를 존중하는 비건 논의가 시작된 것은 1944년부터라고 합니다.

비건이라는 용어를 처음 쓴 미국 비건협회(The Vegan Society)가 단순한 채식주의자와 구분하기 위해 비건이라는 단어를 고안했다고 합니다.

비건 지향적 삶을 살아가는, 단순히 고기를 먹지 않는 것을 넘어 입는 것이나 쓰는 것까지 모든 재료에 동물을 활용하지 않는 생활 방식을 추구한다고 합니다.

전 세계 비건 인구는 해마다 증가하고 있습니다. 2021년 7700만명에서 지난해에는 8800만명으로 늘었습니다. 한국채식연합에 따르면 2008년 15만명에 불과하던 국내 채식 인구도 2022년 기준 200만명으로 증가했습니다.

글로벌 비건 시장 규모는 갈수록 커지고 있습니다. 지난해 시장조사기관 스트레이트 리서치가 내놓은 자료를 보면 전 세계 비건 시장은 2022년 165억달러(약 21조7000억원)로 8년 동안 연평균 9.1% 성장률을 보였으며, 오는 2031년에는 360억달러(약 47조원)까지 커질 것으로 추산되고 있습니다.

비건 식품 개발을 한마디로 정의한다면 “무에서 유를 창조하는 작업”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고기가 아닌데 고기의 맛과 색깔, 모양, 식감 등을 똑같이 내야 하기 때문이지요.

세계 각국이 비건 경쟁에 뛰어들고 있는 지금, 여러분은 “누가 국가대표 비건 기업이 될 상(像)”이라고 생각하나요. 답은 여러분의 선택에 달려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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