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히잡 교복을 벗어 던지고 틱톡에 올릴 춤을 추는 12살 소녀 자판(자프린 자이리잘). 어느날 자판의 몸에 이상한 변화가 생긴다. 조약돌 같던 손톱대신 짐승의 발톱이 자라난다. 풍성했던 머리카락도 우수수 빠진다. 인중에 검은 수염이 나기도 한다.
히잡을 다시 두르고, 장갑을 끼며 없던 일처럼 지내보려 해도 동물의 냄새는 숨길 수 없다. 자판의 변화는 얼마 전 거리로 나와 화제가 된 호랑이 영상과 겹쳐 보인다. 그도 호랑이로 변해 거리를 떠돌게 될까? 최근에 달라진 일이라곤 월경을 시작한 것 뿐인데….
7일 국내 개봉을 앞둔 영화 ‘호랑이 소녀’(2023)는 말레이시아의 신예 감독 아만다 넬 유(40)의 첫 장편영화다. 말레이시아의 한 학교에서 활기찬 청소년기를 보내던 자판이 주인공. 자판에겐 또래 중 월경을 가장 먼저 시작하는 ‘문제’가 생긴다. 그 때문에 자판은 교내 예배당에 출입을 금지당하고 친구들에게 따돌림을 당한다. 영화는 제목처럼 월경 이후 자판이 호랑이로 변해가는 이야기를 그린다.

영화는 2023년 칸 영화제에서 비평가 주간 대상을 받으며 작품성을 인정받았다. 독특한 연출은 러닝타임 내내 이목을 사로잡는다. 틱톡 등 숏폼과 라이브 방송이 익숙해진 2020년대 시대상에 맞게 세로 화면을 활용한 것이 대표적. 이외에도 특수효과를 통해 한 여성 청소년의 2차성징을 강렬하고 매력적인 오컬트 장르로 표현해냈다. 국내에선 2023년 열린 부천국제영화제서 처음으로 공개돼 호평을 받았고, 지난해 부산국제영화제의 ‘10대의 마음, 10대의 영화’ 부문을 통해 다시 상영됐다.
여성 청소년의 성장서사를 호러 장르로 풀어낸 고전 영화 ‘캐리’(1978)도 떠오른다. ‘호랑이 소녀’는 자판의 2차성징 이후 내·외부에서 돋아나는 혐오적 시선을 재료로 한다. 변화하는 몸에 대한 생경함은 괴수의 모습에 점차 가까워지는 이질적인 자판의 모습으로 표현된다.

자판의 친구 파라(디나 에즈럴)는 언젠가 자신이 겪을 성장의 과정임에도 불구, 첫 월경을 한 자판에게 “천박하다”고 말한다. 자판 안팎으로 퍼져가는 혐오는 국교(이슬람교)에 따라 여성의 월경을 불경한 것, 문자 그대로 ‘문제적’ 취급하는 말레이시아의 문화를 반영했다.
그러나 영화의 지적에 말레이시아는 검열로 답했다. 감독은 말레이시아 심의제도에 따라 영화관 상영을 위해 일부 장면을 삭제하라는 이야기를 들었다. 특히 여성 청소년들이 자유롭게 장난치고, 반항심을 표현하고, 기뻐하는 등의 장면이 검열 당했다.
개봉 전 중앙일보와 가진 인터뷰에서 감독은 “말레이시아뿐 아니라 중국, 인도 등 여러 문화권에서 월경을 더럽다고 생각한다. 심지어는 집에 월경용품을 버리면 불운이 찾아온다며 집 안에 못 버리게 하는 사례도 있다”고 전했다. 감독은 이에 대해 “두려움 때문이라고 생각한다”며 “월경은 여성의 몸이 변화하는 과정을 상징하지 않나. 그것을 두렵게 생각하는 관점이 아직 남아있는 것 같다”고 해석했다.

감독은 여성 청소년들이 스스로 목소리를 내는 과정을 영화에 담은 만큼, 촬영 과정에도 이들이 자유롭길 바랐다. 전문 성교육 강사를 고용해, 연기뿐 아니라 또래 청소년들이 자신의 감정을 자유롭게 탐구할 수 있는 환경을 만들었다. 그는 “영화에 나오는 모든 배우들이 자신들의 캐릭터를 잘 이해하고 있었다. 그래서 그들이 마음껏 놀고 자유롭게 연기할 수 있도록 했다”고 말했다. 영화 속 틱톡 화면도 배우들이 직접 찍었다.
자판이 느끼는 2차성징의 감각은 감독의 경험이 반영됐다. 감독은 “털이 나고, 뼈가 자라는 감각을 느꼈는데 무섭고 싫었다. 자라는 뼈를 때려서 넣으려고 하고, 몸에 난 털을 깎고 먹기도 했다”고 자신의 성장기를 돌아봤다.
인상적인 특수효과는 말레이시아 설화 속 괴물의 독특함에서 떠올렸다. 감독은 “전통적으로 (말레이시아) 옛날이야기의 괴물은 여자인 경우가 많다. 전통적 여성상보다 이런 괴물에 더 공감이 간다”며 “처음에는 끔찍해 보이지만 잘 이해하고 나면 아름답게 바라볼 수 있다는 이야기를 전하고 싶었다”고 밝혔다.
호랑이가 되어가는 자판은 정글을 오가며 혼란한 감정을 조금씩 덜어낸다. 여성으로서의 제약이 있는 동네로부터, 낯설지만 자유로운 야생으로 향할 때마다 편안한 표정이 더해진다. 하지만 그 한 발자국을 내딛는 연습은 오히려 자판이 아닌 주변 사람들에게 필요한 것일지 모른다고, 영화는 말하고 있다. 95분. 12세 이상 관람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