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제산책] 적대적 인수합병은 ‘눈물의 씨앗’인가

2024-10-06

나훈아가 부른 ‘사랑은 눈물의 씨앗’은 개발 경제 시대를 상징하는 트로트 명곡이다. 이 노랫말을 자본시장에 대입하면 ‘돈만 좇는 사랑은 눈물의 씨앗’ 아닐까 싶다.

‘적대적 인수’(hostile takeover)라고도 불리는 적대적 인수합병(M&A)이란 대상 기업의 반대에도 불구하고 시도되는 기업경영권 탈취를 뜻한다. 합병이란 해당 기업 합의를 전제로 하기에 적대적 M&A란 ‘적대적 인수’를 의미한다. 적대적 M&A는 경영이 엉망인 회사 경영진을 교체해 기업 가치를 제고하는 장점이 있다. 관련 회사와 높은 시너지를 내거나 글로벌시장에 신속하게 대응하는 데도 유리하다. 반면 장기 성과보다는 단기 성과에 집중하고 특히 ‘치고 빠지는’ 기업사냥꾼 방식은 기업의 본질적 가치에 부정적인 영향을 끼칠 수 있다. 주주 이익에만 함몰돼 다른 이해관계자에게 손해를 끼친다는 단점도 있다.

외환위기를 계기로 M&A 규제가 완화되면서 우리나라에서도 적대적 인수가 본격적으로 시작됐다. 하지만 1997년 신동방그룹의 미도파 인수 시도, 2003년 KCC의 현대엘리베이터 인수 시도, 2006년 칼 아이칸의 KT&G 인수 시도는 전부 실패했다. 지난해초 카카오는 SM엔터테인먼트를 적대적 M&A로 인수했으나, 지난해말 사모펀드 MBK의 한국앤컴퍼니 적대적 인수 시도는 실패로 끝났다.

현재 MBK·영풍은 고려아연을 적대적 M&A로 인수하려 하고 있다. 영풍이 MBK에게 자금 지원을 요청하면서 MBK가 사실상 인수 주체로 등장했다. 신라가 백제를 공략하기 위해서 당나라에 도움을 요청한 격이다. 지난해 인수 전 실패로 절치부심한 MBK는 전력투구 중이다. 9월26일에는 공개매수 가격을 기존 1주당 66만원에서 75만원으로 상향 조정하는 강수를 뒀다. 이에 대응해 2일 고려아연 측은 1주당 83만원으로 자사주를 공개 매수하겠다고 선언했다. 양측 모두 수조원이 동원된 이 결투는 결과에 관계없이 후폭풍이 클 전망이다. 적대적 인수의 당위성·부당성을 알리기 위한 양측 홍보전도 법의 경계를 아슬아슬하게 넘나들고 있다. 상대방을 벤 검객은 승리의 눈물을, 패배한 측은 안타까움의 눈물을 흘리겠지만 고려아연도 피해를 입을 수 있다.

기업의 본질적 가치보다 ‘쩐의 전쟁’으로 결판나는 과열된 적대적 인수전은 승리하면 오히려 손해를 보는 ‘승자의 저주’를 초래할 수 있다. MBK가 승리해서 약속대로 10년 이상 장기투자를 한다면, 융통한 자금에 대한 높은 이자를 장기간 부담해야 한다. 약속을 어기고 조기 탈출한다면 신뢰는 추락할 것이다. 방어에 성공하는 측도 너무 많은 자금을 빌려 신규 투자가 불가능해질 수 있다. 고려아연이 세계 1위 비철금속 제련 기업이지만 융통자금에 부합하는 경영 성과를 내기는 쉽지 않다. ‘과열된’ 인수전쟁은 승자와 패자 그리고 기업 모두를 늪에 빠뜨리는 ‘눈물의 씨앗’이 될 우려가 있다.

과열되지 않는다면 적대적이든 우호적이든 M&A는 기업 경쟁력을 강화할 수 있다. 그런데 우리나라의 M&A 건수는 적은 편이다. 전국경제인연합회(현 한국경제인협회) 자료에 의하면 2012년부터 2021년까지 10년간 비금융 100대 기업의 총 M&A 건수는 1063건으로 미국(3350건)과 일본(3202건)의 3분의 1에 불과하다. 기업의 신속한 변화를 돕는 건전한 M&A에는 따뜻한 햇살이 필요하지만, 기업의 본질적 가치를 훼손할 수 있는 ‘과열된’ 적대적 M&A에는 매서운 찬바람이 필요하다.

김헌수 순천향대 IT금융경영학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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