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응원봉 시민’의 연대, 냉소·분노도 희망으로 바꿨다

2025-01-02

12·3 비상계엄 사태가 3일 한 달째를 맞는다. 비상계엄 사태 이후 한 달 동안 ‘응원봉 시민’들이 거리로 쏟아져 나왔다. 하지만 그들은 계엄 규탄 및 탄핵 촉구 광장에만 머물지 않았다. 시민의 행동에 불을 댕긴 것은 비상계엄과 탄핵이었지만 한번 불이 붙은 저항은 그간 시민의 눈과 발이 잘 닿지 않았던 곳으로 퍼져나갔다.

시민 행동의 중심에는 2030세대 여성이 있었다. 비상계엄 사태를 계기로 뛰쳐나온 2030 여성들이 광장에서 겪은 경험은 사회 각계의 소외된 이들과의 연대로 이어졌다. 응원봉 시민은 ‘트랙터 농민’이 서울 남태령의 차벽을 넘을 수 있게 했고, ‘휠체어 장애인’이 지하철역에서 강제로 끌려나가지 않고 목소리를 낼 수 있게 했다. 12·3 사태 이전부터 거리와 광장을 지켜온 활동가들은 지난 한 달을 돌아보며 “세상이 바뀌지 않는 것 같아 냉소하고 분노했던 마음을 시민들이 희망으로 바꿔놨다”고 말했다. 응원봉 시민이 만든 연대의 유산을 어떻게 이어갈 것인지에 대한 ‘행복한’ 고민을 하고 있다고도 했다.

농민·장애인 활동가들은 2일 남태령과 지하철에서 이어진 시민들의 연대가 “연말 선물처럼 느껴졌다”고 말했다. 이들은 그간 우리 사회에서 소외와 배제, 심지어 혐오의 눈초리를 받으며 위축됐던 약자들이다.

박경석 전국장애인차별철폐연대(전장연) 상임대표는 “매일 끌려나가는 동료들을 보면서 무력감과 외로움을 느낄 때도 많았고, 점점 경찰·서울교통공사가 폭력과 강압에 익숙해지는 것 같아 포기하고 싶을 때도 있었다”고 털어놨다. 하원오 전국농민총연맹(전농) 의장은 “지난해 윤석열 대통령이 양곡관리법에 거부권을 행사했을 때 농민들의 요구가 ‘돈 달라는 투정’ 정도로 폄하되는 것을 보며 너무 힘들었다”며 “사람들이 재해와 기후위기로 고통받는 농가의 현실을 ‘한철 뉴스’로만 소비하고 마는 냉소를 느꼈다”고 말했다.

오랜 시간 쌓여온 무력감과 분노는 응원봉 시민을 만나며 희망으로 바뀌었다고 했다. 하 의장은 “남태령에서 만난 20~30대 여성들과 이야기를 나눴을 때 이들이 ‘농업 4법’에 관해 공부하고 농촌 문제를 같이 고민하고 있다는 것을 알게 됐다”며 “전농 회원들이 시위를 마치고 돌아가는 길에 ‘우리 투쟁이 헛되지 않았다’는 생각에 다 같이 감격의 눈물을 흘렸다”고 말했다.

박 대표는 “연대에 나선 시민들을 보면서 저희도 장애인 문제가 시급하다는 이유로 다른 소수자들의 목소리를 스쳐 지나가지는 않았는지 돌아보게 됐다”고 말했다. 그는 “최근 동덕여대 학생 집회에 전장연 활동가들이 연대한 것도 시민들에게 얻은 힘을 저희만 간직할 게 아니라 다른 소외된 이들과 연결하는 기회를 마련해야겠다는 생각이 들었기 때문”이라고 했다.

‘응원봉’의 빛 사그라지지 않고 더 넓은 세상 비추도록

활동가들은 응원봉 시민의 연대가 ‘나중’이 아닌 ‘지금’의 변화로 이어질 수 있도록 하기 위한 고민을 하고 있다. ‘윤석열 즉각퇴진·사회대개혁 비상행동(비상행동)’ 일원이자 민달팽이 유니온 위원장인 지수씨는 “탄핵 집회도 ‘사회 대개혁’을 내세우고 있는 만큼 연대의 목소리를 낸 시민들에게 박수를 보내는 것을 넘어서 신속히 시민들의 구체적인 요구를 모으고 표출할 수 있어야 한다”고 말했다.

그는 “저 역시 주거권 활동가이기 이전에 하숙집에서 쫓겨난 평범한 학생이었다”며 “이번 연대의 경험을 계기로 평범한 시민들도 ‘내 삶의 활동가’로서 일상에서 크고 작은 연대를 이어가길 기대한다”라고 했다. 이어 “광장에 나온 시민들의 민주주의에 대한 고민이 사적 영역으로 치부되어온 주거권의 영역에서도 이어지도록 응원봉 시민의 목소리를 모으기 위한 고민을 이어갈 계획”이라고 말했다.

차별금지법 제정연대의 몽(활동명) 공동위원장은 “이번 탄핵 촉구 시위에서는 자유발언에 나선 다수의 평범한 시민들이 무대 위에서 자신의 성 정체성을 스스로 드러냈다”며 “이는 ‘나중에’라는 말로 번번이 뒤로 밀린 평등권·차별금지법이 더이상 밀려나선 안 된다는 시민의 공감대가 형성됐기 때문”이라고 말했다.

몽 위원장은 이어 “집회에 참여한 한 시민이 ‘소수자 정체성을 드러내도 차별받지 않는 경험을 짧게나마 맛보고 나니 이전으로 다시 돌아갈 수 없을 것 같다’고 말한 게 기억에 남는다”며 “아직 차별금지법이 발의되지 못한 22대 국회에서도 응원봉 시민의 목소리가 이어질 수 있도록 할 것”이라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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