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린 소녀가 서 있다. 열린 문 옆에 있지만 나오려 한다기보다는 등 뒤에 놓인 실내의 어둠 속에 부동의 자세로 잠겨있다. 사진가 해정이 여행 중 라오스의 한 마을에서 만난 소녀다. 사진을 찍고, 라오스를 떠났지만, 이후로 해정은 그 소녀와 ‘합체되어 분리되지 않았다’고 말한다. 사진 시리즈 ‘아무 일도 없었다’는 그렇게 시작된다.
소녀에게 자신의 유년 시절이 투영되었다. 성년이 되어 ‘가진 적 없어 상실도 아닌데, 왜 울었을까’라고 스스로에게 물었던 아버지의 부재와 어리광을 피우기엔 너무도 고단한 어머니 밑에서 엄마 속을 썩일 수 없는 게 규칙인 아이로 컸던.
작가는 ‘소녀가 푼크툼이 되었다’고 말한다.
사진 용어인 ‘푼크툼’은 똑같은 작품을 보더라도 보는 사람이 일반적으로 추정하고 해석할 수 있는 의미나 작가가 의도한 바를 그대로 느끼는 게 아니라, 자신의 경험에 비추어 지극히 개인적으로 작품을 받아들이는 것을 말한다. 작품을 감상하는 방식에 사용되는 푼크툼이, 해정에게는 세상을 바라보는 사진의 시선이 되었다.
대상을 보고 떨림이 일면 사진을 찍었다. 사물과 풍경이 보내는 신호가 느껴졌고, 전혀 관련이 없거나 일상적이고 무심한 현상과 풍경들이 해정의 심상과 만나 새롭게 번역되었다.
나비가, 세상을 떠나고 ‘온 세상 나비가 나야’라고 달래주던 오빠가, 수국에 숨어 있다가 놀래켰다. 그 이야기를 사진에 담았다. 윤슬이 반짝이는 바다 위에서 새들이 날개를 마주 잡은 듯이 함께 날 때, 물 위에 꽃잎이 떠내려갈 때, 땅 위로 드러난 나무뿌리 위에 햇살이 잠시 앉아 머물 때…. 차고 따뜻했던 촉감과 쓸쓸하고 아름다웠던 감정들, 사는 동안 겪어야 했던 무수한 일들을, 드러낸 적 없던 자신의 서사를 사진으로 기록했다.
그리고는, ‘아무 일도 없었다’라고 한다. 마치, 흰 꼬리만을 사진 속에 남긴 채 아무 일도 없었다는 듯이 사라져버린 백조처럼. 하지만 지나간 흔적이 긴 물결무늬로 남았다. 마찬가지 얼마나 많은 일들이 있었는지, 그리고 작가가 그 많은 일들을 지나 다다른 지점을 사진들은 반어적으로 보여준다.
박미경 류가헌 관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