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씹던 껌을 아무 데나 퉤, 뱉지 못하고 종이에 싸서 쓰레기통으로 달려가는 너는 참 바보다. <중략> 그까짓 게 뭐 그리 대단하다고 민들레 앞에 쪼그리고 앉아 한참 바라보는 너는 참 바보다. <중략> 그럼 난 뭐냐? 그런 네가 좋아서 그림자처럼 네 뒤를 졸졸 따라다니는 나는?’ -넌 바보다-
누가 보지 않아도 쓰레기를 주워 버리고, 쪼그려 앉아 민들레를 한참 바라보는 아이가 있다. 그리고 그런 바보가 좋아 마음에 담는 아이도 있다. 태초의 순수를 찾는 여정을 위해 치과의사란 직업을 등졌던 신형건 시인이 등단 후 40년 간 써온 시들 중 41편을 골라 담은 시선집 ‘넌 바보다’를 지난해 말 펴냈다. 그를 만나 혼란한 시국 잠시 쉬어갈 수 있는 얘기를 들어봤다.
신형건 시인은 “등단 30주년에 기념 시집을 냈고, 10년 주기로 이번에 또 시집을 냈다. 표제작 ‘넌 바보다’는 초·중 국어 교과서에도 10여 년간 연달아 실리고, 드라마와 예능프로 등을 통해 대중에게도 알려진 시”라며 “아이들의 순수함, 그리고 사랑에 대한 마음을 담은 시다. 세태와 세대가 달라졌고, 요즈음은 세태가 세대를 이기는 시대지만, 작중 어린이들처럼 혼잡하고 혼탁한 세태 속에서도 아이들 마음 한구석엔 순수함이 남아 있다고 생각한다”고 말했다.
‘넌 바보다’는 2018년 tvN 드라마 ‘시를 잊는 그대에게’, 2023년 JTBC 예능 ‘아는 형님’ 등의 방송에 인용되며 대중에게도 알려졌다.
신형건 시인은 “지금도 어딘 가엔 민들레 앞에 쪼그려 앉는 어린이가 있을 것이라는 믿음을 갖게 하는 것, 세상살이 하느라 지친 어른도 혼자가 되면 예전의 순수한 마음이 되살아나게 하는 것이 바로 문학의 힘”이라며 “쓸모가 없어서 더 아름다운 문학에 대한 열정을 끝내 저버릴 수 없어 전업을 했다”고 말했다.
신형건 시인은 경희치대 1학년 재학 중인 1984년 ‘새벗’이란 문예지를 통해 등단했다. 원래는 영문학도가 꿈이었지만 직업도 고민해야 했기에 치대에 진학했다.

신형건 시인은 “입시와 신춘문예를 함께 준비하던 문학소년이었다. 등단을 한 후에도 대학을 졸업하고는 8년 간 개원을 했다. 1만 명의 환자 차트가 쌓일 정도고 열심히 진료했다. 그래도 끝내 문학에 대한 열정은 사그라들지 않았다. 치과의사는 나보다 더 잘할 수 있는 동료들이 많다는 생각이었다. 치과의사보다 시인으로 더 성장하고 싶었다”고 했다.
그렇게 1998년 아동·청소년 문학, 어린이도서 전문 출판사 ‘푸른책들’을 설립하고 전업 시인의 길을 걷기로 했다. 그리고 그동안 초중등 교과서에 11편의 시가 실렸으며, 지금까지 1000여 종의 책을 출간했다. 그의 첫 시집 ‘거인들이 사는 나라’는 10만부 이상이 팔린 스테디셀러가 됐다.
출판인으로서 그가 추구하는 철학은 다양성의 인정. 숱한 존재는 각각의 정체성을 드러내기 마련이고 이는 모두가 존중받아야 한다는 게 그의 생각이다.
시인으로서 추구하는 것은 살아있는 생기, 세상사에 시달려 무거운 존재가 되기 전의 원초적 순수, 그리고 사랑, 이 세 가지 큰 주제를 바탕으로 시작을 한다.
신형건 시인은 “치과의사란 직업을 등지고 시인의 길을 걸을 때 많은 사람들이 의아해 했다. 일반적인 사회의 시선, 쓸모없는 것에 직업까지 버리느냐는 우려였다”며 “그러나 문학이란 쓸모없이 아름다운 것. 그래서 실리와 효용에만 치우치기 쉬운 삶 속에서 다른 세계와 존재가 있다는 것을 얘기하고, 잊고 살았던 것을 돌아보게 한다. 그래서 성찰하고 삶을 더 확장할 수 있게 한다. 이것이 문학을 하는 이유다. 문학에는 아름다움 뿐 아니라 분명한 힘과 에너지도 있다. 이제는 옛 동료가 된 치과의사들이 문학의 쓸모없는 아름다움을 통해 바쁜 삶을 잠시 돌아보길 바란다”고 말했다.
신형건 시인은 “60년을 산 지금, 왜 더 다채롭게 못 살았나 하는 생각을 한다. 나이가 더 들어감을 느끼며 또 하나의 터닝포인트를 준비하고 있다. 출판과 문학을 통해 집적된 것을 바탕으로 사회에 기여할 수 있는 일을 해 보려 한다”고 덧붙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