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억과 기록] 시원하게 여름나기

2025-07-31

덥습니다. 너무 덥습니다. 저야 뭐 투정을 부릴 처지는 아닙니다만, 그래도 덥습니다. 점점 버티는 날이 많아집니다. 길어지는 여름을 어떻게 나야 할까요?

지난 주말은 기행 모임이 있는 날이었습니다. 한낮의 햇살이 무서워 이번엔 가능한 한 실내에서 시간을 보낼 수 있는 일정을 잡았습니다. 경주 노서동・노동동 고분군 옆에 TV에도 자주 출연하는 유명 건축가가 설계한 핫한 미술관이 있답니다. 먼저 가본 친구의 말에 따르면, 미술관 안에서 고분을 바라보는 맛이 좋다더라구요.

미술관 주차장에서 일행들을 만났습니다. 정말 핫한 모양입니다. 미술관 입장을 기다리는 이들이 줄을 서 있습니다. 개관 시각인 10시가 되려면 몇 분 남아있습니다. 입장료가 있네요. 지금은 일본 출신 여류작가의 작품(해피플라워, 대지의 울림)이 전시 중입니다. 친구의 말대로, 고분 뷰가 멋집니다. 돌아오고 난 뒤에 안 사실이지만, 지하에도 전시실이 있었네요. 에그.

미술관을 나왔습니다. 점심을 먹기에는 아직 이른 시간입니다. 한 일행이 근처의 금관총으로 가잡니다. 1921년에 우연히 발견되었고, 조사과정에서 금관이 나와 ‘금관총’이라는 이름을 얻은 고분입니다. 높은 봉분을 가진 다른 고분들과는 달리 봉분이 없는 상태로 있다가 최근에 내부가 복원되고, 현대식 지붕을 가지게 되었습니다.

금관총 안으로 들어서니, 관리담당자가 우릴 따스하게 맞습니다. 여기도 입장료가 있네요. 금관총은 신라 마립간 시대의 대표적인 무덤인 돌무지덧널무덤 형태를 띠고 있습니다. 땅을 얕게 파고 나무로 무덤방을 만들고 그 안에 시신을 넣은 널(관)을 넣고 그 위에 냇돌을 두껍게 쌓고 다시 흙을 덮은 양식입니다. 무덤방을 덮는 두꺼운 층의 냇돌이 무너지는 것을 막기 위해 목재 구조물을 설치하였네요.

금관총의 주인공은 이사지왕입니다. 무덤 안에서 이사지왕도(尒斯智王刀)가 새겨진 칼집이 발견되었기에 무덤의 주인을 알게 된 거죠. 물론 이사지왕이 대체 누구인지는 밝혀지지 않았습니다. 고분의 위치와 발굴된 문화유산으로 보아 굉장한 권력을 가진 인물인 건 분명합니다. 문득 이런 생각이 듭니다. 그가 누구이든 무덤을 만드는 과정에 많은 이들이 동원되었을 게 분명한데, 그들은 대체 누구였을까? 저 많은 냇돌은 어디에서 어떻게 옮겨왔을까? 그러고 보면 우리가 만나야 하는 무덤의 주인은 묻힌 이만이 아니지 않을까!

금관총 옆에 신라고분정보센터가 있습니다. 이름 그대로 신라시대 무덤에 대한 다양한 정보를 얻을 수 있습니다. 입장권 하나로 두 곳을 모두 이용할 수 있구요.

대릉원 앞 식당에서 점심을 먹고 국립경주박물관으로 향합니다. 오는 10월 말에 열리는 경주 APEC의 현장이라서 그런지 여기저기 공사가 한창입니다. 대형 주차장 시설도 막혀 있습니다. 주변 도롯가에서 겨우 주차할 곳을 찾았습니다. 그리고는 박물관으로 향합니다. 더울 때 시원한 실내가 최고입니다. 박물관에도 사람이 참 많습니다.

먼저 특별전시관으로 향합니다. ‘푸른 세상을 빚다, 고려 상형 청자’ 전시가 있습니다. 상상의 동물인 기린과 참외 모양 주전자, 원숭이와 원앙 모양의 연적 등 단순히 ‘푸르다’라고만 설명하기 어려운 빛깔의 상형 청자를 만납니다.

앞서 금관총을 만났으니, 다음 차례는 금관총에서 발굴된 금관입니다. 특별전시관을 나와 본관으로 향합니다. 나무와 사슴뿔 장식에 굽은옥과 동그란 금판을 가는 금실로 단 금관을 봅니다. 화려한 드리개도 달렸네요. 지금까지 신라 금관은 6개가 발견되었답니다. 신라의 최고 권력자가 마립간이라고 불리던 시기의 문화유산입니다. 신성한 생명력을 가진 나무에 잎이 돋고, 열매가 맺히고, 그러한 생명의 순환이 잘라도 잘라도 다시 자라나는 사슴의 뿔처럼 계속되길 바라는 신라인들의 생각과 염원이 금관에 표현된 것이 아닐까요?

본관 여기저기를 둘러보고 난 뒤 박물관 영역 안에 있는 커피가게로 가 담소를 나누기로 합니다. 경주 APEC 때 만찬을 경주박물관에서 한다더니, 만찬장을 짓고 있나 봅니다. 경주 APEC 때 금관 6개가 모두 국립경주박물관에 모인다는군요. 우리에게도 이들을 만날 기회가 주어지겠지요. 그때 다시 방문해야겠습니다.

원영미 울산대학교 강사 기억과기록 회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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