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금요칼럼] 하루의 보람과 평화는 어떻게 오는가?

2024-10-17

우리가 삶에서 구하는 것은 기적이 아니라 일상의 작은 평온이나 고요의 한 조각일지도 모른다. 당신은 아침 일찍 동네 빵집에 들러 갓 구운 빵을 사고, 단골 카페에서 좋아하는 작가의 책을 읽으며, 오후엔 상수리나무 숲속을 거닐며 보낸다. 우리 인생은 아무 일없이 지나가는 밋밋한 하루들이 쌓여 이루어진다. 분명한 건 하루의 보람과 평화는 공짜로 얻은 게 아니라는 점이다. 그건 내적 열망과 엄청난 에너지를 품지 않고는 가질 수 없다. 우리의 심심한 일상은 얼마나 쉽게 부서지고 무너지는가! 그걸 잊고 살다가 소중한 것들이 잃어버린 다음에야 우리는 화들짝 깨닫는다. 우리가 살아낸 보통의 하루들이 얼마나 큰 축복이고 기적인가를!

2022년 8월12일 열한시 십오분 전, 사방이 화창한 금요일 오전이다. 그 시각 뉴욕시의 한 원형극장 무대에 올랐던 유명한 작가가 피습을 당한다. ‘악마의 시’로 알려진 일흔다섯 살의 작가 살만 루슈디가 그 피해자다. 그를 표적 삼은 가해자는 무슬림 극단주의자들 중 하나로 스물넷 된 청년이다. 어디선가 느닷없이 튀어나와 노작가의 목과 눈을 칼로 찔렀지만 이 흉측한 ‘영웅’의 역겨운 의도는 실패로 돌아간다. 루슈디는 열다섯 군데나 자상을 입고 눈 한쪽을 잃었다. 과연 가해자는 알았을까? 그가 휘두른 칼이 루슈디의 목을 관통했을 때 단박에 한 사람의 자유를 앗아갔으며, 일상과 평화를 산산조각 냈다는 것을. 루슈디는 죽음과 대면한 상태로 외상병원으로 호송 되어 칼에 깊이 베이고 찢긴 데를 금속봉합기로 고정한 채 수술을 받는다. 최고의 의사들이 맡은 외과수술은 잘 끝나고, 그는 고통 속에서 재활 훈련을 받으며 혼자 샤워를 하고 걷는 법을 배운다. 이제 그는 경찰과 보안회사 인력의 철저한 경호 아래 예전의 일상을 되찾고 보통의 삶을 회복하는 중이다.

괴한이 루슈디를 공격한 도구는 칼이다. 칼은 여러 용도로 쓰인다. 주방에서 그것은 조리 도구지만 누군가를 찌를 때는 무기가 된다. 하지만 칼은 도덕적으로 나쁘거나 좋은 게 아니다. 칼은 도덕적으로 완벽한 중립인데, 그걸 손에 쥔 자의 의도에 따라 그 도덕적 평판이 나빠지거나 좋아지는 것이다. 작가에겐 언어가 칼이다. 루슈디는 제 피습 과정의 전말을 담은 ‘나이프’라는 책을 펴내는데, 거기에서 ‘언어도 칼이었다. 언어는 세상을 베어 세상의 의미를, 그 내적 작동 방식과 비밀과 진실을 드러낼 수 있었다. 언어는 하나의 현실에서 다른 현실로 베어 들어갈 수 있었다’라고 쓴다.

따지고보면 인류는 태초 이래 폭력에 날 것으로 드러낸 채로 생존을 이어왔다. 인류 역사는 폭력에 얽힌 고약한 서사로 얼룩져 있다는 측면에서 폭력은 역사의 상수이다. 그것은 개인 간 다툼에서 빚어진 소규모 폭행들, 즉 교제 살인, 조리돌림, ‘학폭’에서 제2차 세계대전 당시 독일에서의 유대인 학살, 일본 군대가 저지른 중국 난징 시민 도륙, 크메르루주가 벌인 자국민 150만 학살, 1980년 5월 항쟁 시민 학살까지 그 범주는 아주 넓다. 이 세상 어디에나 이 끔찍한 것이 편재한다는 사실은 우리의 삶이 이것과의 투쟁에서 쟁취되는 것임을 뜻한다.

루슈디의 피습 사건이 일러주는 것은 폭력이 우리 일상의 어둡고 추악한 일부로 존재한다는 사실이다. 증오와 악의에 의해 추동된 폭력은 누군가의 목숨을 빼앗고, 꿈과 행복을 일그러뜨린다. 폭력은 피해자의 몸에 위해를 입히고 인간 존엄을 부수며, 평생 잊을 수 없는 훼손의 흔적을 남긴다. 우리는 이미 일어난 폭력과 미구에 일어날 폭력 사이에 있다는 걸 부정할 수 없다. 폭력은 우리 삶에 음침한 그림자를 드리운 채 호시탐탐 공격할 기회를 엿본다. 우리가 멀쩡한 신체로 먹고 웃으며 기도하고 산다는 건 지구에서 날마다 벌어지는 광기어린 폭력의 사육제에서 살아남았다는 뜻이다. 어떤 폭력도 용인되지 않아야 하며, 그것에 도덕적 정당성을 허락해서도 안 된다. 그것은 인류 공동체가 힘을 합쳐 싸워야 할 대상이다. 우리 생명과 존엄, 가족의 안위, 사회의 질서와 도덕적 가치를 지켜내려면 우리는 폭력, 광기와 증오, 일체의 차별에 맞서야 한다. 우리 곁을 떠도는 이 유령이 방심한 틈을 노려 우리와 가족을 공격하고, 일상의 안녕과 평화를 깨부술 것이기 때문이다.

장석주 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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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고 gigo@jjan.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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