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글 쓰는 의사’라는 말을 들으면, 상당수 사람들은 남궁인의 이름을 떠올릴 것이다. 남궁인(이대목동병원 응급의학과 교수)은 여기저기 찢어지고 부서지거나 정신을 잃고 응급실을 찾은 사람들을 치료하며 느낀 것들을 꾸준히 글로 써왔다. <만약은 없다> <지독한 하루> 등의 산문집은 그가 응급실을 토대로 기록한 삶의 장면들이다.
그가 이번에는 색다른 책을 들고 돌아왔다. 남궁 작가의 다섯 번째 단독 저서인 <몸, 내 안의 우주>(문학동네)는 에세이가 아닌 의학 교양서다. 책은 응급의학과 의사 1인칭 시점에서 쓰였다. 응급실에 방문하는 환자들의 질환을 진단하고 치료하면서, 소화·심장·호흡 등 우리 몸의 기관과 기능에 대한 설명을 스토리텔링 방식으로 풀어간다. 지난 16일 서울 중구 경향신문사에서 남궁 작가를 만나 집필기를 들어봤다.
<몸, 내 안의 우주>는 5년 3개월 만에 나온 남궁 작가의 단독 저서다. 그는 코로나19 시기를 겪으면서 “사람들에게 몸에 관한 지식을 깔끔하고 재미있게 알려주는 의학 교양서를 써 보면 좋겠다고 생각했다”고 했다.
“코로나19 유행 초반에 사람들이 병에 대한 정보가 없어서 혼란스러워했는데, 제가 알고 있는 바이러스에 대한 정보를 정리해서 SNS에 올렸어요. 그게 엄청나게 전파가 되면서 화제가 됐어요. 알고 보면 의학지식이라는 게 크게 어려운 것이 아닌데, 이론을 조금만 더 알고 보면 자기 몸에 대해 의사에게 지나치게 의존하지 않을 수 있거든요.”
그는 책에 “환자 대부분은 스스로가 절묘한 치유력을 가지고 있다는 사실을 간과한다. 몸은 이미 완성된 완벽한 우주에 가깝다”고 적었다. “환자라는 은하에만 앉아 있는 사람들을 우주 반대편으로 이끌고 싶었다”고 표현했다. 책에 <몸, 내 안의 우주>라는 제목이 붙은 이유다.
오래 걸릴 것이라 예상하긴 했으나, 집필 작업에 걸린 기간은 생각보다도 더 길었다. 구상에만 2년 가까운 시간을 보냈다. 초반에는 두꺼운 의학 교과서 수십 권을 일일이 찾아서 비교하면서 책에 넣을 내용을 고르고 또 골랐다.
이후에는 ‘덜어냄’과의 싸움이었다. 지금보다 2배 분량으로 쓴 원고를 반으로 뚝 잘라 줄이기도 하고, 한 챕터를 새로 쓰다시피 하는 일도 많았다. 3년 6개월간 글쓰기에 매달렸다. 남궁 작가는 “공부를 다 한 다음에 한 파트씩 쓰기 시작했는데, 매 파트가 고역이었다”고 말했다. “‘앎’을 줄여내는 것, 자르는 것이 가장 어려웠다”고 말했다.
“초고를 현재 분량의 두 배로 쓴 다음에 1, 2권으로 나눠서 낼 수밖에 없겠다고 생각하며 출판사 대표님을 찾아갔어요. 대표님이 ‘이것은 대중을 보라고 쓴 책이 아닙니다. 생각해 보십시오’라고 하셨죠. 돌아와서 1년 동안 반을 덜어냈어요.”

의학지식을 억지로 쉽게 만들 수는 없었지만, 쉽고 재밌게 읽힐 수 있게 만들 수는 있었다. ‘그래, 난 에세이 작가고 내가 제일 잘하는 건 스토리텔링이다. 이걸 발휘해보자’는 생각을 했다.
사람들이 한 번쯤은 이 질환으로 응급실을 찾아봤을 법한 질환들을 군데군데 배치하고, 환자와 그를 둘러싼 병원 사람들의 이야기를 마치 드라마처럼 짜서 넣었다. 작가 본인도 내려놓았다. 책 속의 응급의학과 의사 남궁인은 스트레스를 받으면 정크 푸드를 먹고, 크리스마스에 커플을 보면서 쓸쓸해 하고, 실패한 농담을 하는 모습으로 그려진다.
“저한테 막말하는 간호사 같은 것은 짜인 설정인데, 나머지는 대부분 사실이에요. 불닭볶음면을 먹고 위경련으로 응급실에 온다거나, 운동하다가 횡문근융해증으로 오는 케이스들은 실제로 매우 흔해요. 제가 설명하려는 해당 장기와 관련해서 응급실에 올 수 있는 가장 흔한 케이스들을 모조리 등장시켰죠.”
사실 응급실은 많은 이들에게 두려우면서도 흥미로운 장소다. 사람들이 의사 남궁인을 만났을 때 가장 많이 하는 질문이 무엇인지 물었더니, “질문보다는 본인이 겪었던 응급실 경험을 가장 많이 이야기한다”는 답이 돌아왔다. 그는 “아파서 지르는 소리로 가득 차 있고, 누군가 죽기도 하는 응급실이라는 공간에 앉아있다는 것 자체가 사람에게 굉장히 강렬한 기억이기 때문에 본인의 경험을 이야기하고 싶어하지 않을까”라고 말했다.
특히 지난해부터 그에게 응급실은 치열한 일터 이상의 고통스러운 노동의 현장이었다. 의·정갈등으로 응급실에서만 전공의 4명이 사직하고, 배후진료를 맡아줄 다른 전공의들도 병원을 떠났다. 최소 1인 5역의 초인적인 진료량과 잦은 당직 근무를 소화해야 했다. 누적된 과로로 인해 지난해 디스크와 함께 한쪽 눈 시력 저하까지 생겼다. 그래도 집에 와서 글을 썼다.
그에게 글쓰기의 의미를 물었다. “재미를 넘어 의미를 좀 더 찾아보고자 하게 됐다”는 답이 돌아왔다.
“아직도 글을 쓰면 너무 재밌어요. 젊은 독자들이 제 글 속의 유머를 보고서 ‘삼촌이 위험한 농담하는 것 같다’는 평도 남기는데, 제 유머가 성공한 것 같을 때 너무 기쁘거든요.
글을 쓰다 보니 의사로서 사람을 이롭게 하는 글을 쓰고 싶다는 욕망이 점점 생겼어요. 글쓰기로 사람들에게 지식을 알리고, 세상을 어느 정도 바꿀 수 있다는 힘을 좀 믿게 되었거든요. 진료실 밖에서도 환자들에게 어떻게 하면 기여할 수 있을까, 이 책도 그런 응답의 일부입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