트럼프 2기, 러시아 - 우크라이나 종전 협상 전망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의 ‘노벨상 프로젝트’인 러시아·우크라이나 전쟁 종전이 과연 그의 말대로 6개월 안에 가능할까. 트럼프 대통령은 지난달 31일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과 조만간 통화할 예정이며 “아마도 ‘중요한 일(something significant)’을 할 것”이라고 밝혔다. 통화가 이뤄진다면 트럼프 취임 후 푸틴과의 첫 번째 통화다. 하지만 많은 국제정치 전문가들은 통화가 실현되더라도 이는 종전 협상의 시작이라고 전망하고 있다.
이와 관련해 지난 1일 로이터통신은 트럼프의 종전 정책이 아직 확정되지 않았다고 전했다. 볼로디미르 젤렌스키 우크라이나 대통령도 같은 날 AP통신 인터뷰에서 종전 논의가 “일반적인 수준”이라며 “세부 합의를 진전시키기 위한 대면 회담이 곧 열릴 것으로 생각한다”고 말했다.
트럼프, 6개월 내 종식 강조
구체적 방안 아직 확정 못해
미국이 무기 지원 줄이면서
러시아의 영토 확장 계속돼
서방, 유가인하·유럽 재무장
종전은 미·유럽 의지에 달려
트럼프는 본인의 입으로 구체적인 종전 조건에 대해 언급한 적이 없다. 다만 종전안의 윤곽은 지난해 12월 에마뉘엘 마크롱 프랑스 대통령의 주선으로 트럼프와 젤렌스키가 파리에서 만난 이후 외신 보도와 당사국의 움직임을 통해 일부 드러나고 있다. ▶현 전선의 동결 및 20~25% 정도인 러시아가 점령한 우크라이나 지역 인정(우크라이나가 점령 중인 러시아 쿠르스크주와 교환) ▶우크라이나의 북대서양조약기구(NATO) 가입 유예(20년?) ▶전쟁 재발을 막기 위한 평화유지군(젤렌스키는 미군 포함 최소 20만명 주장) 주둔과 미국의 무기 지원 등이 그것이다. 하지만 악마는 디테일에 있다. 과연 러시아와 우크라이나가 이같은 내용을 토대로 부다페스트 양해각서와 민스크 협정이 지켜지지 않는 트라우마를 극복하는 협상안을 만들어낼 수 있을지는 현재로선 불투명하다.
유리한 전황, 협상에 소극적인 푸틴
트럼프의 강한 의지에도 불구하고 종전 협상이 급물살을 타지 못 하는 원인 중 하나는 러시아 쪽으로 기울어진 전황이다. 푸틴으로선 서둘러 협상에 나서야 할 동력이 크지 않다는 얘기다.
박노벽 전 러시아 대사의 설명(극동문제연구소 초빙교수·우크라이나 대사도 역임)은 이렇다. “종전 협상을 성공시키려면 러시아와 우크라이나의 입지가 대등해야 하는데 (전임 조 바이든 행정부 시기와 비교할 때) 미국은 우크라이나에 대한 무기 지원을 줄이면서 발을 빼는 모양새다. 현재 전선에서 러시아는 인명 피해를 감수하면서 매일 영토를 확장하는 상황이다.”
실제 트럼프는 우크라이나 지원 중단 여부를 묻자 “유럽연합이 지금 내는 것보다 훨씬 더 많이 내야 한다”며 “전쟁은 우리보다 EU에 더 영향을 준다. 우리는 중간에 바다가 있지 않으냐”고 강조하기도 했다. 상황이 이렇다 보니 푸틴은 “만약 돈과 탄약이 떨어지면 그들은 버티지 못할 것”이라며 “모든 것이 한 달, 한 달 반 또는 두 달 안에 끝날 것이며 이런 의미에서 우크라이나의 주권은 거의 제로(0)에 가깝다”고 여유를 부릴 정도다.
“푸틴이 종전을 서둘러야 할 이유를 못 느끼는 것은 시간이 갈수록 자신의 목표를 달성할 가능성이 커진다고 보기 때문이다. 점령지는 늘어나고 우크라이나가 나토 가입을 해서는 안 된다는 목표를 가입 유예 등의 방식으로 달성할 수 있고, 서방의 제재도 해제할 수 있다는 기대감을 갖고 있다. 특히, 푸틴은 점점 서방은 지치고 분열될 것이라는 생각을 갖고 있다.”(박 전 대사)
트럼프, 유가 인하 통해 러시아 압박
결국 우크라이나가 강해져야 종전 협상이 성공(균형 잡힌 협상 타결)할 확률이 높아진다. 이를 위해 트럼프가 꺼낸 대러시아 압박 카드는 유가 인하와 유럽의 재무장 촉구다. 2022년 전쟁 발발 이후 러시아의 경제시스템(2월 현재 기준금리 21%, 소비자물가 상승률은 전년 대비 9.5% 등)이 흔들리는 상태에서 군비의 상당 부분을 채우고 있는 원유와 천연가스 가격을 낮춰 러시아의 전쟁 의지를 꺾겠다는 것이다.
이를 위해 트럼프는 두 가지를 실행에 옮기고 있다. 하나는 바이든 정부 때 막았던 미국 내 석유 및 천연가스 시추를 허용하는 것이고, 다른 하나는 석유수출국기구(OPEC)를 압박하는 것이다. 이와 관련해 트럼프는 “전쟁을 빠르게 중단시키는 한 가지 방법은 사우디아라비아와 OPEC이 유가를 낮추는 것”이라며 “전쟁은 즉시 중단될 것”이라고 강조했다.
우크라이나 역시 이런 움직임에 발 빠르게 동참하고 있다. 우크라이나는 지난 1월부터 자국을 통한 러시아산 천연가스의 유럽 공급을 중단시켰다. 또 1월 26일 모스크바 남부 랴잔주 정유공장을 겨냥한 드론 공격의 경우처럼 러시아 에너지시설에 대한 공격을 집중하고 있다. 젤렌스키는 “제재는 필수적이며 유가 인하는 중요하다”고 말했다.
유가 인하는 러시아엔 아픈 대목이다. 트럼프 취임 바로 다음 날인 1월 21일 푸틴은 시진핑 중국 국가주석과 화상 회담을 했는데, 중국은 전후 상대적으로 저렴한 러시아산 원유와 천연가스를 가장 많이 수입해온 국가(2024년 러시아는 사우디를 제치고 중국의 원유수입국 1위로 부상)다. 푸틴은 최근 인터뷰에서 “너무 높거나 낮은 유가는 러시아와 미국 모두의 경제에 해롭다”며 “이에 대해 우리가 대화할 것이 있다”고 밝혔다.
“러시아 경제 사정이 굉장히 어렵다. 파탄까지는 아니더라도 전후 회복을 쉽게 기대하기 어려울 정도다. 트럼프는 대선 공약을 통해 유가를 절반으로 낮추겠다고 했는데 배럴당 60달러 혹은 40달러 이하로 떨어지면 푸틴은 전쟁비용 마련에 어려움을 겪을 것이다. 시 주석과의 통화에서 전략적 연대 강화를 강조했는데, 이는 중국이 지금처럼 ‘뒷문’을 열어 달라는 것이다. 그런데 유가가 낮아지면 중국은 당연히 더 낮은 가격에 러시아산을 사거나, 서방 제재를 무릅쓰고 지금처럼 러시아산을 구입할 동인이 약해질 수 있다.”(박 전 대사)
유럽 재무장 움직임도 푸틴에겐 부담
유럽의 본격적인 재무장 움직임도 푸틴에겐 중장기적으로 부담 요인이다. 유럽은 현재 러시아의 실존 안보위협에 맞서 방위비 증액을 추진 중이며, 이는 나토 유럽회원국의 안보 무임승차를 비판하면서 국내총생산(GDP)의 5% 수준으로 방위비를 끌어올리라는 트럼프의 요구와도 연동돼 있다.
유럽연합(EU) 27개국(나토 회원국 23개국 포함)은 3일(현지시간) 처음으로 이른바 ‘국방 정상회의’를 개최한다. 특히, 이번 회의엔 브렉시트(영국의 EU 탈퇴) 이후 처음으로 영국 키어 스타머 총리도 참석한다. 앞서 영국은 1월 18일 우크라이나와 안전보장을 위한 ‘100년 동반자 협정’을 맺기도 했다.
이와 관련해 안토니우 코스타 EU정상회의 상임의장은 회원국에 보낸 서한에서 “무기 재고 비축과 준비 태세 격상, 유럽 방산 기반 강화를 위해서는 막대한 양의 추가 투자가 필요하며 이에 대한 논의가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카야 칼라스 EU 외교·안보 고위대표도 지난 1일 BBC 인터뷰에서 “러시아는 GDP의 9%를 국방에 지출하는데 유럽은 1.9%에 불과하다”며 “트럼프 대통령이 유럽의 방위비 지출 부족을 비판한 건 타당하다”고 인정했다.
“2014년 민스크 협정 체결 당시 유럽은 유럽안보협력기구(OSCE)를 통해 상징적인 역할만 했는데 결국 전쟁 재발로 이어졌다. 현재 트럼프는 유럽 책임론으로 압박하고 있고, 유럽 내에서 상당한 공감대가 형성됐다. 문제는 재원인데 이는 예산의 우선순위를 변경하는 문제다. EU 회원국 중 이탈리아나 스페인 등 일부 국가는 눈도 안 왔는데 제설기를 사야 하느냐는 식의 입장인 반면, 스칸디나비아 국가나 러시아와 국경을 맞대고 있는 발트 3국은 이미 눈사태가 난 상황이라고 보고 있다. 결국 2월 총선을 마친 독일과 프랑스, 영국이 드라이브를 걸고 스칸디나비아국과 발트 3국이 적극 협력하는 방식으로 유럽의 재무장은 추진될 것이다. 대러 제재 강화와 맞물린다면 러시아 역시 부담을 느낄 수밖에 없다.”(박 전 대사)
트럼프는 ‘힘에 의한 평화’를 주창하고 있다. 푸틴 역시 마찬가지다. 과연 푸틴이 4년째를 맞은 이 전쟁을 계속하는 것보다 멈추는 것이 이익이라고 판단할 만큼 미국과 유럽은 우크라이나에 힘과 의지를 투사할 수 있을까. 그것이 향후 종전 협상 성패의 열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