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공지능(AI) 디지털교과서의 ‘교과서’ 지위를 교육자료로 바꾸는 초·중등교육법 일부개정안이 26일 국회 본회의를 통과했다. 학교 현장 도입을 3개월 앞두고 AI 교과서의 지위가 크게 강등된 것이다. 교육부는 곧바로 “재의요구를 하겠다”고 밝혔다.
이주호 교육부 장관은 이날 정부서울청사에서 브리핑을 열고 “AI 교과서를 교과서가 아닌 교육자료로 규정하는 초중등교육법 개정안이 가결된 것에 대해 깊은 유감을 표명한다”며 “재의요구를 해서 어떻게든 AI 교과서의 교과서 지위를 유지하는 것을 정책 목표로 매진하겠다”고 했다.
개정안은 교과서의 정의와 범위를 법률에 직접 명시하면서 도서 및 전자책으로 제한하고 AI교과서를 교육자료로 규정하는 내용을 담았다. 시행 시기는 공포 후 즉시다. 교육자료는 교과서와 달리 의무사용이 아닌 학교장 재량 선택으로 쓸 수 있다. 교육부는 교과서 지위를 유지해야 AI 교과서 품질을 담보하고 저렴한 가격을 유지할 수 있다고 주장한다. 현재 일부 시도교육청의 초·중·고에서는 AI 교과서 의무 사용을 전제로 학교운영위원회 등을 거쳐 교과서 선정 작업을 진행 중이다.
교육부는 야당과 시민사회 압박이 거세지자 지난 23일 국회를 찾아 “AI 교과서의 교과서 지위는 유지하되 2025년은 자율적으로 사용하며 효과성을 검증해보자”고 제안했다. 야당이 교육부 제안을 받아들이지 않았고, 이날 AI 교과서의 지위 변경을 담은 초중등교육법은 국회 본회의를 통과했다.
교육부는 내년 신학기부터 초등학교 3∼4학년, 중학교 1학년, 고등학교 1학년 영어·수학·정보 교과에 AI교과서를 일괄적으로 도입하려 했으나 계획에 상당한 차질이 생기게 됐다. 다만 교육부에겐 여전히 시도교육청에 AI 교과서 도입을 유도할 카드가 남아 있다. 교육부는 올해 10월 지방교육재정교부금법 시행령을 개정해 AI 교과서 구독 학생 수가 많은 시도 교육청에 예산(교부금)을 더 많이 내려보내도록 했다. 정부의 감세 탓에 재정이 부족해진 시도 교육청 입장에선 추가 예산을 받기 위해서라도 AI 교과서 구독 유인이 남아 있는 상황이다.
교육부는 이날 AI 교과서를 도입하는 시도교육청을 지원하겠다는 메시지를 내기도 했다. 이 장관은 “AI 교과서가 학교의 자율성을 바탕으로 희망하는 학교에서 안정적으로 활용될 수 있도록 교원 연수와 디지털 인프라 개선, 효과성 분석 등 행정적 지원 방안을 시도교육청과 마련해 나가겠다”고 했다.
다만 시도 교육청 사이에서도 AI 교과서 지위를 두고 의견이 엇갈리고 있다. 전국시도교육감협의회가 지난 24일 오후 7시 AI 교과서의 지위를 교육자료로 바꾸는 법안에 반대하는 입장문을 내자, 서울·울산 등 일부 시도교육청에서는 “동의하지 않았고 입장문 채택 기준을 갖추지 못했다”며 비판 의견을 밝혔다.
일부 교원단체는 AI 교과서 지위를 교육자료로 규정한 법안 통과에 환영 입장을 냈다. 전국교직원노동조합(전교조)는 이날 성명을 내고 “AI 교과서는 교육효과 검증 미비, 문해력·집중력 저하 우려, 일부 개발사의 독과점과 사교육 유발 가능성 등 여러 부작용이 예상되는 상황”이라며 “교육부는 학교에 AI 교과서 선정을 강제한 공문을 즉각 철회하고 공론화위원회 구성에 나서야 한다”고 했다.